김종인 위원장, 보수분열의 촉매제 역할을 자임
제1야당 대표, 모두 겁내고 꺼리는 대통령 감당해야
문재인정권 탄생 장본인으로서 사과하는 것이 먼저
요즘 뜬금없이 정치권에는 ‘사과’가 화제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사과 요구가 아니다. 야당 지도부의 자멸적 논란이다. 국회에서는 ‘무데뽀’ 여당이 야당의 비토권을 약탈하는 공수처법 개정을 밀어붙이는데, 이 와중에 야당은 다시 내분양상으로 돌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번에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말겠다고 한다. 여타 지도부와 의원들은 한사코 말리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초점을 흐린다’며 이 주제에 대한 언론 인터뷰를 피했고, 다른 의원들은 진영과 관계없이 반대했다. ‘친박’, ‘비박’으로 나뉘어 사생결단으로 싸우다가 맞이한 궤멸적 결과를 상기시킨다. 혼란수습을 위해 적진에서 활약하던 장수를 모셔왔는데, 그분이 다시 보수분열의 촉매제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명백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며 실정에 실정을 얹고 있는 모습과 대비된다.
김종인 위원장은 취임하고 ‘두 가지 사과를 하겠다’고 천명했다. 첫째는 5.18영령에 대한 사과다. 이는 얼마 전 실천해 옮겨졌다. 지난 8월 19일 광주 5.18묘역을 참배하며 무릎을 꿇고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고 사죄했다. 보수진영에서 약간의 잡음이 있었다. 지만원 박사는 “김종인, 5.18역사가 니꺼냐, 니 출세 위해 팔아먹게”라며 성토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언론들도 긍정적이었다. 진보진영 언론들에서도 ‘진정성 논란’은 조금 있었지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두 번째 사과가 문제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고 7일 밝혔다. 그러면서 대국민 사과와 비대위원장직을 연계하는 배수진까지 쳤다. 아무리 내부 반발이 거세도, 결심을 돌이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두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한 뒤 비대위원장 임기를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벌집 쑤실 필요가 없다’는 내부 의견을 받아들여 이를 유보했다. 그러다가 지금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강행의지를 밝힌 것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우리가 바뀌었다는 것을 증명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대국민 사과는 그것을 증명해 중도층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당은 대부분 반대 입장이다. 이번에도 일부를 제외하고 탄핵을 주도했던 세력이나 막았던 세력이 모두 한목소리다.
한 친박계 중진은 ‘당의 단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비박계 중진은 김종인 위원장의 정통성을 들고 나오며 ‘명백한 월권’이라고 했다. 원내대변인인 초선 배현진 의원은 “굳이 뜬금포 사과를 하겠다면 문재인정권 탄생 그 자체부터 사과해주셔야 맞지 않는가”라고 반발했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민주당대표(전)의 부탁을 수용해 비대위원장으로 민주당을 이끌었던 전력을 끄집어낸 것이다.
이처럼 당내 반발이 엄청난 상황에서 굳이 사과를 강행하려는 김종인 위원장의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다. 전직 두 대통령은 모두 투옥중이다. 보수진영의 최대 트라우마다. 그 상처를 다시 들쑤셔 덧나게 하려는 것인가? 이렇게 단순히 당내나 진영문제에 머물 문제도 아니다. 지금 국민은 엄청나게 화가 나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공개적으로 분출을 못하고 있다. 여권은 수많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방역’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있다. 그래서 야당에게 더욱 강력한 대여공세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지금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다. 사과를 하고 안하고는 국민의 관심이 아니다. 일부 친문세력이 원하는 ‘항복선언’일 뿐이다.
대여투쟁에서 제1야당의 대표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모두가 겁내고 꺼리는 대상인 대통령을 감당해 내는 것이다. 지금 국민은 정부에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그 중심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절대권력자’가 된 문 대통령은 아무 반성 없이 ‘천상의 세상’에서 게임하듯 나라는 좌지우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국가의 중추인 삼부(三府) 구성원은 모두 ‘장기판 졸’이다. 국정난맥에 기인한 연속되는 경고음을 고려해 볼 때, 나라가 벼랑 끝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야당 대표까지 문 대통령을 피한다면 국민은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 자포자기(自暴自棄) 하거나 ‘국민의힘’ 외의 다른 대안이 찾게 될 것이다. 내년 4월 보궐선거가 ‘물 건너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정권은 ‘국민이 신임을 거두지 않았다’며 끝까지 폭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반면 야권은 다시 지리멸렬 분열될 것이다. 2022년 대선도 필패다. 지금 김종인 비대위체제는 ‘야권 자멸의 길’로 달려가는 중이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은 아직 재판중이다. 죄가 확정되지 않았는데 사과를 한다면, 확정되는 순간 다시 사과를 하거나, 다시 사과를 거두어들여야 할 것이다. 왜 그런 번거롭고 무익한 행위에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알 수가 없다. 거대한 적에 맞서는 큰 전투를 앞두고 내부분열을 감내하면서 말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중도확장’을 명분으로 삼았다. 내년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서 시급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먼저 대답해야 할 것이 있다. 지난 총선 전에 사과를 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단 말인가? 오히려 통합이 불가능해 져 더 사분오열(四分五裂)됐을 것이고, 지금의 ‘국민의힘’이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의 국민들은 현재의 고통이 더욱 아프고 당장의 해법이 더욱 급하다. 그 증거가 서울대 게시판 ‘스누라이프’의 게시물이다.
얼마 전 한 익명의 게시자는 ‘박근혜 대통령님. 미안합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스누라이프’에 올렸다. 현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 글은 사이트 내 ‘베스트 게시물’에 올랐고, 언론의 주목을 받아 대대적으로 기사화됐다. 문재인정권이 박근혜정부보다 더 나쁜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욕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채동욱을 잘랐을 때’와 ‘윤석열 찍어내기’를 비교했다. 조국 딸을 거론하며 최순실 딸의 금메달 획득을 재평가했다. K스포츠를 라임·옵티머스 펀드와 비교하며 얼마나 소박했는지 지적했다. 문체부 공무원 좌천을 산업부장관의 ‘너 죽을래’ 발언과 연계하여 정상적인 인사권의 범위라고 평가했다. ‘메르스 대처를 욕했었는데 코로나를 보니 무난한 대처였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런 예시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가 최악의 정부라고 욕해서 미안합니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고 끝맺었다. 이게 중도의 민심이다.
야당과 보수진영 내에서는 김종인 위원장이 ‘국민의힘’ 대표자격으로 하는 사과에 앞서, 문재인정권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스스로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일의 경중을 볼 때,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하기 싫다면 당연히 보수진영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도 아직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현 정부의 ‘막무가내식 질주’를 막아내려는 노력과 내년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대여투쟁 선봉’이란 스스로의 임무에 충실해 주시기 바란다. 지금은 공수처 대응 등 대여투쟁에 ‘국민의힘’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한다.
글/김우석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