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부동산 투기꾼은 대체 누구인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 (2020년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부동산 정책 핵심은 ‘투기세력 철폐’라고 요약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은 지난 4년 내내 끊임없이 투기와의 전쟁을 강조했고, 스무 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을 통해 이를 실현했다.
2017년 5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약 한 달 뒤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된 김현미 전 장관은 취임식에서 “최근 집값 급등은 실수요자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세력”이라며 다주택자를 투기의 주체로 특정했다.
약 두 달 뒤 정부는 8·2 부동산대책을 통해 투기세력에 대한 본격적인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역시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김동연 전 부총리는 8·2대책을 발표하며 “서민과 실수요자는 충분히 보호하고 투기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현 홍남기 부총리도 부동산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실수요자 보호 및 투기적 수요 근절 등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는 매우 확고하다”고 반복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9일 취임식에서 “과도한 투기수요를 차단하고 개발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공급 물량이 실수요자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집은 투자 대상으로 용납할 수 없으니 1가구 1주택 실거주만 허용하며, 그 외는 모두 투기수요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대책의 칼날은 다주택자와 갭투자자를 향했다. 이들을 잡아야 서민 주거안정과 실수요자가 보호된다는 논리다.
정부 의도대로라면 부동산 대책의 결과는 ‘집값 안정’으로 나타났어야 한다. 그러나 문 정부 출범 이후 대한민국 집값 상승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가 그토록 보호하고싶다는 서민 실수요자들은 집값폭등·전세대란에 신음하며 ‘영끌’·‘패닉바잉’이라는 혼돈에 갇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주택토지공사(LH)발 투기 사태가 터졌다. 국민들은 분노한다. 정부가 진짜 투기꾼은 공공에서 양성하면서, 애꿎은 민간 투기꾼만 몰아내고 있었으니 집값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라고 한탄한다.
정부는 LH 투기의혹 정부합동조사단을 통해 3기 신도시 투기에 연루된 것은 LH 직원 2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를 온전히 믿는 국민은 없는 것 같다. LH를 넘어 지자체·국토부·청와대·국회의원까지 연루됐을 것이라며 정치권을 의심하는 눈길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제 민심은 부동산 투기세력의 주체는 범 정부, 범 정치권이라고 특정한다. LH발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가자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 회의에서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사과했다. 대통령이 말하는 적폐는 누구일까. 민간인지 LH인지 아니면 공직자 전체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적폐 청산에 앞서 정부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진짜 투기꾼을 인정하는 것이다. 민간의 투기세력이 핵심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그동안 강행했던 부동산 규제를 남은 일 년 동안만이라도 유연하게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부동산 대출규제와 세금규제, 재건축재개발 규제, 임대차보호 3법까지. 이러한 규제들은 투기세력을 잡았는가, 아니면 보통의 국민을 잡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