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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보호하는 법? 갑질금지법 시행으로 경비원 일만 더 늘었다


입력 2021.10.24 06:25 수정 2021.10.22 14:20        김수민 기자 (sum@dailian.co.kr)

경비원들 "자발적으로 하던 일 법으로 명시화해 업무만 가중…수당·근로시간 규정 개편 안 돼"

전문가들 "경비 노동자 보호가 자율적인 해결에 초점…확실히 보호하기 어려워"

"금지 규정만 있고 과태료 규정 불명확해 실효성 의심…경비원 스스로 부당함 신고 어려운 고용 형태"

"지자체 등이 선제적으로 모니터링·관리·감독 강화해야…정기 실태조사 및 보고도 필요"

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시행된 2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경비원도 우리의 이웃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시행된 2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경비원도 우리의 이웃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아파트 경비원의 갑질 피해를 막기 위해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이 21일부터 시행됐지만 여전히 그들을 보호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비 외 업무가 법으로 아예 명시화되면서 업무가 가중됐고, 수당 체계 개편이나 근로시간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주기적으로 실태 조사를 하는 등 보완을 통해 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21일부터 시행된 새 '공동주택관리법'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근무하는 경비원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구체화했다.


개정 시행령은 경비원이 고유의 경비 업무 외에 할 수 있는 일로 낙엽 청소, 제설작업,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감시, 위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차량 이동조치와 택배·우편물 보관 등의 업무로 한정했다. 반면 개인차량 주차대행(대리주차), 택배물품 개별 세대 배달, 개별 세대 대형폐기물 수거·운반, 관리사무소 일반 업무 보조는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시행 첫날 현장에서 만난 경비원 A씨는 "이번에 경비원의 업무로 명시된 일들은 원래 우리가 해왔던 일"이라며 "법이 개정되면서 예전에는 입주민의 편의를 위해 우리가 자발적으로 또는 서비스로 하던 일이 법으로 명시화되면서 업무가 가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수당 체계 개편이나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은 마련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9년 동안 경비원으로 일한 B씨는 "개정안을 통해 경비원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경비원에게 시키면 안 되는 일이 규정됐는데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본다"며 "하지만 예초 작업과 전기 작업은 전문가가 해야 하는 전문적인 일이고, 비전문가가 하면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추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돈을 아끼기 위해 경비원에게 시키는 곳이 많은데 거절하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거절하지도 못하지만 다칠까봐 더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서울 서대문구 한 아파트에서 11년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C씨는 "휴식시간에도 입주민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받아야 하고 요청하는 일은 무조건 해야 해서 오롯이 쉴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게 힘들다"며 "경비원 대부분은 3개월에서 6개월 등 짧은 고용 형태의 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부당함을 주장하는 등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뭐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고 털어놨다.


이어 "경비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비원들이 겪는 갑질과 부당함에 대한 모니터링을 정부나 지자체가 주기적으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9일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실 ⓒ연합뉴스 19일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경비 노동자는 부당함을 당해도 스스로 신고하기 어려운 고용 형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지자체가 먼저 선제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혜인 노무사는 "개정 시행령에 경비 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추가되긴 했지만 자율적인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이 법만을 통해서는 경비 노동자들을 확실히 보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대부분의 경비 노동자들은 직접 고용되지 않고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되면서 짧으면 3개월씩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부당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법적인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한계점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노무사는 "입주민과 경비 노동자는 지역 안에 있는 공동주택에서 함께 밀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자체는 이를 관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지자체 자체적으로 모니터링을 통해 감시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권고했다.


권호현 변호사는 "법이 실효성 있으려면 의무를 적용받는 주체와 과태료 등 처벌 규정이 확실해야 하는데 현재 개정안에는 금지 규정만 있을 뿐 과태료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실효성이 의심된다"며 "예를 들어, '제65조 제5항을 위반해 관리사무소장을 해임하거나 해임하도록 주택관리업자에게 요구한 자에게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는 부당한 지시를 했을 때 처벌하는 내용이 아니라 단순히 위반사항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관리사무소장을 해임했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경우라서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당한 일을 당한 경비원이 이를 신고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입주자대표회의나 지자체가 정기 실태조사 및 보고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수민 기자 (su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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