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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①] “팬데믹 직후 판매량 74% 증가”…동화로 위로 받는 어른들


입력 2022.03.25 08:23 수정 2022.03.25 08:23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어린왕자' '연어' 등 스테디셀러 인기 여전

#직장인 김은혜(34) 씨는 최근 동화책 읽기에 빠졌다. 얼마 전 이사한 서울 성동구 한 골목에 자리한 조그마한 그림책방을 발견하면서 부터다. 김씨는 “우연히 찾은 그림책방에서 ‘나미타는 길을 찾고 있어요’라는 그림책을 발견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며 “그 이후로 그림책·동화책에 관심이 생겼고 어른을 위한 동화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어른이 읽기엔 유치할 거란 편견이 있었지만 실제로 접한 이후엔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은 날, 위로 받고 싶은 날 먼저 꺼내게 되는 게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 됐다”고 덧붙였다.


ⓒ예스24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동화책=어린이의 전유물’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이 인식이 깨지고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등장에 ‘어른’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이 ‘특별한 동화’는 출판계에서도 각광받는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어른 동화’는 어린이 동화와는 별개의 도서 분야로 분류된다. 전 세대에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동화, 우화 등을 해당 카테고리에 분류한다. 소설·시·희곡의 하위 장르로 편성되지만 기존 에세이, 소설과 달리 책 속에 그림이 많다. 시처럼 간결하고 서정적 표현을 이용하지만 형식면에서는 시와는 또 다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어린왕자’가 어른 동화에 속한다.


예스24에 따르면 2020년 ‘어른들을 위한 동화/우화’ 카테고리 도서 판매량은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15%로 소폭 하락했으나, 2020년 상승 폭이 워낙 컸던 것에 대한 영향으로, 전체적인 판매 추이를 봤을 때 최근 2~3년 동안 오름세에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9년에도 전년 대비 13%가량 성장률을 보였다.


해당 데이터에서 ‘어른’ ‘동화’ 키워드가 포함된 도서의 검색 결과에서도 마찬가지로 전년의 높은 성장률 탓에 지난해에는 -12.1%의 성장률을 나타냈지만 2019년엔 10.3%, 2020년엔 67.2% 성장했다.


지난 2020년 급격한 ‘어른 동화’의 성장은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여주인공이 극중 그림동화 작가로 그려지면서다. 당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그린 동화 중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좀비 아이’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 ‘봄날의 개’ ‘손 아귀’ 등은 실제로 출간되면서 당시 종합 베스트셀러 TOP10에 모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책’ 관련 베스트셀러 순위로는 ‘어린 왕자’(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눈사람 자살 사건’(최승호) ‘있으려나 서점’(요시타케 신스케) ‘애린 왕자’(최현애) ‘연어’(안도현) ‘오늘 상회’(한라경) ‘시를 읽는다’(박완서)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류시화) ‘피터래빗 시리즈 전집’(베아트릭스 포터)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케이트 디카밀로) 등이 이름을 올렸다.


ⓒ예스24

해당 순위를 살펴보면, 새로운 어른 동화 관련 도서들의 출간이 늘고 있음에도 ‘어린 왕자’ ‘연어’ ‘피터래빗 시리즈’ 등 대부분 시대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스테디셀러가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스테디셀러들이 오랜 기간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읽을수록 더 많은 내용이 보여 ‘새롭게’ 읽힌다는 점이다.


‘어린 왕자’ 독자들의 한줄평만 살펴봐도 그렇다. “어린 왕자는 몇 번을 읽어도 새롭고 느낌이 다른 것 같다”(s******3) “초등학생 시절에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너무 심오하고 알쏭달쏭한 내용이라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 했다. 성인이 되어 읽어보니 이 책은 성인을 위한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사***h) “‘어린 왕자’는 어릴 때에도 필독도서쯤 되던 책이라 이미 읽었던 책이었지만 어른이 되서 다시 찾아 읽으니 느낌이 전혀 다른 작품이다. 여기 나오는 어른들이 하는 말들을 나도 어릴 적에 그대로 듣고 자랐는데, 그런 내가 어느새 똑같은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 읽는 동안 부끄럽고 슬퍼졌다”(v******k)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인상적인 분석 결과가 있다. 2020년 급격히 ‘어른을 위한 동화’ 판매량이 증가했을 당시 도서의 성별 연령별 구매자를 분석한 결과 30대가 32.5%로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뒤를 이어 40대(28.8%), 20대(23.5%) 순으로 나타났다.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20대는 16%, 30대는 12% 가량 판매율이 증가한 셈이다. 이는 어린이 곁에서 생활하지 않는 비양육자 어른들, 즉 젊은 층의 어른들에게서 동화읽기가 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동화에 대한 성인들의 수요가 커지면서 ‘코로나 블루’를 겪는 성인들을 위한 맞춤형 동화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실제 동화책은 아니지만, 지치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성인들이 꿈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뭉클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읽으며 웃고 울었다는 후기들이 이어지면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조명 받고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지난해 서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경상도 버전으로 바꿔놓은 ‘애린왕자’도 성인동화라는 콘셉트에 힘입어 주목받고 있다. 읽는 재미는 물론 지역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반응이 많다. 포항 지역 출판사인 ‘이팝’이 실험적 성격으로 초판 300부만 출간했던 이 책은 증쇄 요청이 이어지면서 ‘어른을 위한 동화책’ 베스트셀러 TOP10에 이름을 올렸다.


한 출판 관계자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물론, 사회에 막 진입한 2030 사회 초년생 및 사회인들을 중심으로 ‘어른들의 동화 읽기’라는 접근의 한계가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동화를 읽으면서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고, 위로를 얻기도 한다”면서 “특히 팬데믹 이후 동화를 읽는 어른들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시대가 어려울수록 동화의 힘을 빌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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