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을 보면서 극중인물 황경민에게, 배우 김성규에게, 강진아라는 캐릭터를 둘러싸고 작가(탁재영)와 연출자(김대진, 김상우) 그리고 이를 선택한 배우 채정안에게 품었던 물음표들이 있었다.
# 황경민의 메시지
황경민(김동욱 분)은 왜 첫 번째 살인부터 옛친구 정종석에게 메시지를 남길까. 우리 중학교 시절 같은 학교폭력 피해자였잖아, 나는 복수하기로 했어, 너도 같이 복수하자! 하는 청유의 뜻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다. 정종석은 형사다. 살인을 예방하고 살인자를 잡는 이에게 함께 살인하자는 건 상식적으로 합당치 않다.
내가 살인하는 이유를 너는 잘 알 테니 함께하진 못해도 적어도 방해는 말라, 눈 감으라는 암묵적 동조의 요청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공개적으로 강제할 이유는 없다. 같은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엔 종석이 학폭 가해자로 돌아섰고, 결국 종석 역시 경민의 복수 대상인가.
철이(최현진 분)가 못다 한 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분명한 것은 없지만, 경민과 종석이 과거사에 대해 적어도 철이에 대해 같은 입장은 아니라는 것에는 심증이 굳어진 채로 드라마를 따라갔다.
# 김성규의 연기
배우 김성규는 2017년 영화 ‘범죄도시’의 양태 역으로 눈도장을 찍었고, 드라마 ‘킹덤’에서 좀비보다 빠르게 달리고 영화 ‘악인전’으로 긴 머리 휘날리며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아 2019년 강력하게 부상했다. 해를 이어 ‘반의반’ ‘어느 날’에서도 호연을 펼쳤으나, 드라마 자체가 크게 화제가 되지 못했다. 드디어 제대로 주연을 맡은 ‘돼지의 왕’으로 2022년 우리를 찾아왔다.
그런데, 어, 이상했다. 가진 게 많아도, 더 크게 표현할 줄 알면서도, 절대 작품의 선과 결을 벗어나고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더 멋진 배우였던 김성규답지 않은 폭주가 계속됐다. 연기에 숨 고르기가 없고 표현에 강약 조절이 없다.
주인공은 매력이 중요하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시청자의 마음을 얻고 가야 하는데 자꾸 짜증만 내고 소리를 지르고 개성 없는 표면적 연기를 내지르며 자꾸만 멀어져 갔다.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도, 미워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 강진아의 캐릭터
강진아는 세 명의 주인공 중, 아니 드라마 전체에서 거의 유일하게 눈에 띄는 여성 캐릭터다. 그런데 조직 사회, 그것도 서로의 생명을 의지하며 일하기에 상명하복이 중요한 경찰조직에서 사설탐정인 양 홀로 수사하고 혼자 움직인다.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상관에게도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라는 말뿐이다. 심지어 우리의 주인공 정종석, 동료 형사 정종석을 대놓고 의심하고 그의 물건을 함부로 뒤진다.
왜 작가는 여성 캐릭터를 이렇게 썼고, 배우 채정안은 이런 캐릭터를 선택했고, 연출자들은 이런 모습으로 강진아를 그릴까.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 해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채정안은 1990년대 중성적 외모에 건강하고 힘찬 에너지를 발산하며 인기를 얻었다. 오랜만에 강진아의 외모에서 데뷔 시절의 이미지가 느껴져 반가웠고, 드라마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괜찮은 어른으로서의 출연이 짧아 아쉬웠던 터라 기대가 컸던 차였다. ‘돼지의 왕’ 강진아는 기대와 반대로 달렸다.
# 충격적 엔딩, 기막힌 반전
영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분)의 대사가 생각났다. ‘아들아,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홍종선의 배우발견⑳] ‘돼지의 왕’ 김동욱, 주연배우와 주제의식…에 이어 다시금. ‘돼지의 왕’ 제작진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돼지의 왕’ 10화 마지막 장면을 보니 황경민에 대한 궁금증과 김성규에 대한 실망과 강진아에 대한 오해가 모두 말끔히 풀렸다. 황경민은 유인하듯 그렇게 메시지를 남겨야 했고, 김성규는 그렇게 과한듯 뜨겁게 연기해야 했고, 강진아의 판단은 옳았다. 섣부른 필자가 잘못이었다. 역대 최고의 반전으로 불리는 영화 ‘식스센스’와 ‘유주얼 서스펙트’급 반전이 드라마 마지막 회도 아닌 10화에 펼쳐졌다. 이제 1화부터 정주행할 시청자도 있기에 적을 수 없지만, 그야말로 충격적 엔딩이었다.
이 충격이 반가운 이유가 있다. 시청자를 감쪽같이 속이다 갑작스레 던진 게 아니라 충분히 여러 밑밥과 추리 가능한 증거들을 제시해 오다 보여 준 반전이기에, ‘역시, 그랬어!’ 시청자를 배제하지 않은 반전이기에 더 짜릿하다. 늘 하는 얘기인데, 철저히 감추다 드러내는 반전은 되레 쉽다. 단서들을 흘리면서도 시청자가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비법, 반전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이 완전히 낯설지 않을 때 더 짜릿한 법이다.
실제로, 필적 전문가의 손가락이 황경민과 정종석과 박찬영(배유람 분)의 글씨 가운데 누구의 것을 가리킬지, 그즈음에는 시청자도 알고 있었다. 그 얘기는 10화의 엔딩을 짐작했다는 것이다. 강진아가 필적 감정을 통해 알고자 한 게 유서의 작성자였으니까. 철이가 어린 종석을 찾아가 옥상 계획을 말한 것을 비롯해 엔딩을 짐작할 단서들은 많았다. 그런데도 우리의 무의식은 애써 증거들을 모아는 두되 모른 척했고, 엔딩 장면이 화면에 떠올랐을 때 충분히 충격을 즐겼다.
오랜만에 큰 반전의 쾌감을 맛봤다. 이제 이틀 뒷면 마지막 11, 12화가 공개된다. 짜릿했던 10화의 끝 장면만큼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종영이라는 믿기 싫은 현실 앞에 벌써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아직은 이번 금요일을 기다려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