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강경파 초선 의원모임 '처럼회'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폭주에 민심의 벼랑 끝으로 굴러떨어지던 더불어민주당을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이 멈춰세웠다.
강행처리를 계속하자니 민형배 의원 '위장탈당', 안건조정위원회 선제적 구성요구 등의 잇따른 '꼼수'로 민심의 비판을 받고, 그만두자니 지지층마저 잃게 되는 기호지세(騎虎之勢)의 위기에 몰려있던 민주당은 박 의장의 중재안을 '출구전략' 삼아 '검수완박' 정국의 막을 내리면서, 인사청문회 등 새 정부 공격에 화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관측이다.
민주당 '처럼회', 대체 뭐하는 조직일까
강경파 초선들로 구성돼…잇단 물의
'증발' '위장탈당'…다 '처럼회'서 나와
초선을 원내대표 2차 밀어서 세 과시
'처럼회'는 민주당내 강경파 초선 의원모임이다. 정식 명칭은 '행동하는 의원모임 처럼회'다. 김남국·김승원·김용민·민형배·유정주·윤영덕·이수진·이탄희·장경태·최강욱·최혜영·한준호·홍정민·황운하 의원이 속해 있다.
이들은 10명 이상의 의원이 법안을 공동발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그간 온갖 논란이 되는 법안들을 공동발의하는데 앞장서왔다. '처럼회' 소속 김용민·최강욱 의원 등은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제출 브리핑이나 박홍근 원내대표 기자간담회 등에 배석하며 이번 '검수완박' 사태에서 스피커 노릇을 했다.
각종 물의도 '처럼회'로부터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황운하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친전을 보내는 과정에서 6대 사건의 수사권이 '증발' 한다는 표현을 써서 논란을 자초했다. 꼼수 중의 꼼수라는 비판을 받은 '위장탈당'은 '처럼회' 소속 민형배 의원이 결행했는데, 그에 앞서 이수진 의원도 유사한 결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처럼회' 의원들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초선 최강욱 의원을 2차 투표에 진출시키는 비상식적인 모습으로 세를 과시했다"며 "최종적으로 이들의 표를 얻어 원내대표로 선출된 박홍근 원내대표도 빚이 있기 때문에 '처럼회'의 요구대로 '검수완박' 강행 추진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실리 잃을까 걱정" 박지현 말대로…
'위장탈당' 잇단 꼼수에 여론 십자포화
그만 접자니 지지층마저 잃을 위험성
'기호지세' 위기 속 출구도 없던 상황
'검수완박' 강행 추진 여부의 분수령이었던 지난 12일 정책의원총회에서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앞에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검수완박'은 질서 있게 철수하고 민생법안에 집중하는 길이고, 다른 길은 검찰개혁을 강행하는 길"이라며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기도 힘들지만 통과된다고 해도 지선에서 지고 실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날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 4월 중 처리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검찰개혁을 강행하는 길'을 열어젖힌 것이다. 이후 사태의 전개는 박 위원장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통과시키기 힘든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위장탈당' 등 온갖 무리수가 동원됐다.
게다가 '위장탈당' 이후로도 법안을 완전히 통과시킬 때까지는 무리수를 둬야할 일이 겹겹이 쌓여있는 판국이었다. 법사위는 '위장탈당'을 한 무소속 의원을 포함한 안건조정위로 돌파해야 하고, 본회의는 직권상정에 소수당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은 초단기 회기를 규정한 '살라미 국회'로 종결시켜야 하는 등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을 일이 단계마다 남아있었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박지현 위원장의 말대로 '질서 있는 철수'를 선택하지 않은 순간,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것이나 다름없게 됐던 것"이라며 "이미 욕은 욕대로 다 먹은 상황에서 '검수완박'을 도중에 그만두면 지지층마저 잃게 되니, 도중에 내리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형국처럼 됐다"고 탄식했다.
진퇴양난 속 박병석이 내려준 동앗줄
반나절만 합의문 서명까지 '일사천리'
"'코돌이'들이 벌인 '검수완박'서 탈출
이제 청문회 집중해서 새 정부 공격"
이런 상황에서 돌연 뜻밖의 출구가 열렸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검수완박' 관련 '최종 중재안'을 제안한 것이다. 박 의장은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수용한 정당의 입장을 반영해 국회운영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며 "양당 의원총회에서 의장 중재안을 수용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압박했다.
비교섭단체 의원 사·보임부터 본회의 직권상정·회기 조정까지 박 의장의 도움 없이는 '검수완박'의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 의장의 '최종 중재안' 자체도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대원칙으로 삼고 있는 등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못할 내용도 아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중재안을 이의없이 수용한데 이어, 이후 원내지도부가 합의문 서명식에까지 참석했다. 여야의 정면충돌과 파국의 긴장감이 높아가던 '검수완박' 정국이 반나절만에 갑자기 매듭 국면으로 전환된 것은 민주당 지도부와 다수 의원들도 내심 '출구전략'을 모색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처럼회' 초선 의원들은 2020년 총선 때 '코돌이(코로나19 정국 때 당선된 초선 의원들을 가리키는 비칭)'로 쉽게 원내에 들어와 2년 남짓 여당 생활만 해봤던터라 야당이 뭔지 모른다"며 "새로 집권할 세력이 내각 인선 실책을 벌이는 마당에 '검수완박'으로 국민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은 정무적으로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당 의원들이 열심히 후보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해도 기사화가 잘 되지 않고 '검수완박'만 도배되는 위기 국면에서 '박병석 중재안'이 당을 살렸다"며 "다음주부터 본격 시작될 인사청문회 전에 '검수완박'을 털고갈 수 있게 돼서 천만다행"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