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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핵무기 쓰겠다는 김정은


입력 2022.04.27 04:00 수정 2022.04.26 22:58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핵무력 기본사명은 전쟁억제"

"바라지 않은 상황에선

의외의 둘째 사명 행할 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개최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조선중앙TV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핵독트린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방어적 사용'을 못 박았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사실상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 모양새다.


26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된 인민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 억제에 있다"면서도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화국의 핵무력은 언제든지 자기의 책임적인 사명과 특유의 억제력을 가동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핵독트린의 기본 전제를 '전쟁 억제'로 규정하면서도 '국가 근본 이익이 침해받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문턱'을 낮춘 모양새다.


무엇보다 '북한의 근본 이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운신 폭을 최대한 넓히려 했다는 평가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언급한 '근본 이익'이 "모호한 개념"이라며 "얼마든지 확장 가능하다. 북한은 사실상 자신들의 자의적 판단으로 군사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핵을 선제 사용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측이 지난 2013년 4월 '핵보유국 지위에 관한 법령'을 마련한 이후 핵무기 사용을 "'억제'와 '보복타격용'으로 한정했다"며 "이번 연설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공격·침략 받을 때만이 아니라 이익 침탈 등 보다 폭넓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밝혔다.


홍 실장은 지난 3월 미국이 요약본을 공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가 '극단적 상황에서의 핵 선제 사용 가능성'을 열어 둔 만큼 "맞대응 의도가 강해 보인다"고도 했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강대강 선대선'이라는 상호주의를 천명해왔다는 점에서 핵독트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손을 봤을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25일 개최된 북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노동신문
"韓 볼모 삼아 핵보유국 지위 확보 노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남측에 대한 핵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한국·미국 등 특정국을 거론하지 않고 "어떤 세력"을 겨냥해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전쟁 주적론'과 궤를 같이하는 만큼, 북한의 '포장된 언어'가 아닌 '실질적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이 한국·미국을 특정하지 않은 것은 지난해 10월 국방발전전람회에서 언급한 '한미는 주적이 아니다' '주적은 전쟁 그 자체' 논리의 연장선상"이라며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핵무력이) 자위력 차원임을 주창하지만, 북한이 완성한 핵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밝힌 '어떤 세력'은 사실상 한국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미사일 발사 현장을 참관한 모습(자료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4일 담화에서 "핵무력의 사명은 우선 전쟁에 말려들지 않자는 것이 기본"이라면서도 "일단 전쟁 상황에서라면 그 사명은 타방의 군사력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으로 바뀐다"고 밝힌 바 있기도 하다.


김 부부장은 "남조선군이 우리 국가를 반대하는 그 어떤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격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전쟁 발발 시 △초기 주도권 장악 △타방(남측)의 전쟁의지 소각 △장기전 방지 △북한 군사력 보존 등을 위해 "핵전투 무력이 동원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까지 간다면 무서운 공격이 가해질 것이고 남조선군은 괴멸·전멸에 가까운 참담한 운명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결국 북한의 핵독트린 표명은 한국을 볼모 삼아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노림수로 해석된다.


박 교수는 "북한은 상대적 목표가 아닌 절대적 목표를 추구한다"며 "한국을 볼모로 잡는 완벽한 핵보유국이 절대적 목표"라고 밝혔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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