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약 13년 만에 1300원 돌파
美 연준 긴축행보…“한은도 ‘빅스텝’ 해야”
일시적 현상 아냐…1300원 뉴노멀 될 수도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인 1300원의 지붕을 뚫고 그야말로 ‘고공행진’이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8.49p(1.22%) 내린 2314.32에 장을 마쳤다. 종가는 2020년 11월 2일 2300.16 이후 1년 7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본격적인 ‘고(高) 환율’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와 함께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거나 유가가 안정화될 때까지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를 중심으로 등락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각에선 1300원이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23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4.5원 오른 1301.8원에 마감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보다 1.7원 오른 1299.0원에 출발했다. 환율은 장 초 반 1300원을 넘어선 후 상승폭을 키우며 9시 29분경 1302.4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소폭 하락해 1299원대에서 등락하며 10시 10분경 1296.80원까지 떨어졌지만 다시 오름세를 보이며 1300원대에 올라섰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300원에 도달한 것은 2009년 7월 14일(고가 기준 1303원) 이후 처음이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정부도 구두 개입성 발언을 통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장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정부는 환율 상승에 따른 시장 불안 등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장안정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장 내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은 쉽사리 1300원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앞서 당국은 지난 3월 7일, 4월 25일에 이어 이달 14일과 20일에도 공식 개입을 한 바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환율 상승의 가장 강력한 요인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행보다. 시장은 제롬 파월 의장이 22일(현지 시간) 열린 청문회에서 기존보다 더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인 발언을 내놓으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금리 인상으로 금융 상황이 타이트해졌지만, 이는 적절하며 우리는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상은 물가 상승을 잡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고, 금리 인상의 폭은 물가 상승이 언제 꺾이기 시작하는지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연준은 지난 15일 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인상)’을 단행하고, 연내 2~3차례 추가 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율 상승이 끝이 아니라며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의견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 경제 펀더멘탈을 보면 금융 위기라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대외적 리스크의 영향으로 한동안 1300원 중심으로 등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 역시 “이날 처음 당국이 환율 상승과 관련해 ‘정책’을 언급한 점이 주목할 만 하다”며 “다만 환율 상승의 재료가 되는 유가가 안정화 될 때까지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에서 등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인상)’ 단행해야 하며, 외환보유액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 상승에 따른 자본유출이 가장 우려된다”며 “그 결과 환율과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한은이 기준금리를 충분히 올리거나 외환보유액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원·달러 환율 1300원을 돌파했던 2009년과 현재는 ‘달러인덱스 레벨’이 다르다는 의견도 나왔다. 달러인덱스는 미국과 교역량이 많은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달러화 대비 원화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1300원이 비이성적인 수준도 아닌 것 같다”며 “현재의 매크로 상황들과 그 전망 하에서는 1300원대의 환율이 결코 일시적으로 머물다가 내려갈 것 같지가 않다”고 덧붙였다.
안 연구원은 “외환 시장이야말로 주식시장과 채권시장보다 대외 요인의 결정력이 더 크다”며 “1300원이 뉴노멀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