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무쏘'의 현대적 재해석, 2천만원대 가격까지
가성비 SUV+길어진 대기수요 해결에 '안성맞춤'
중형 SUV 덩치에 1.5ℓ 터보 가솔린 엔진 조합은 한계
무쏘는 쌍용자동차의 전성기를 이끈 상징적인 차다. 마초 냄새 풀풀 풍기는 디자인과 탄탄한 차체, 메르세데스-벤츠 엔진과의 콜라보로 곧바로 국내 SUV '본좌'로 등극하며 1993년부터 10여 년간 쌍용차 리즈 시절을 이끈 장본인이었다. 17년 전 단종됐음에도 '그 때 그 무쏘'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줄 신차가 쌍용차에겐 절실하다. 특정 수요층에만 팔릴 고급 SUV 보다는 전 세대를 아우를 만한 '국민 SUV'가 가장 시급하다. 쌍용차는 무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토레스'로 답을 찾았다. 중형 차급에 2000만원대로 시작하는 토레스가 '리즈 시절'을 되살려 줄 첫번째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쌍용차는 굳게 믿고 있다.
쌍용차는 지난 5일 인천 중구에 위치한 네스트호텔에서 '미디어 쇼케이스'를 열고 토레스를 선보였다. 토레스는 오랜 공백 기간을 깨고 쌍용차가 내놓은 중형 SUV다. 완전변경 모델 기준으로 2019년 2월 4세대 코란도 이후 볼륨 차급 신차인 만큼 감회가 새롭다.
쌍용차가 이를 갈고 만든 토레스는 지난해 6월 디자인 공개 당시부터 "이대로만 나와달라"는 호평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1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토레스는 "디자인이 그대로 실물로 탄생했다"는 평가를 얻으며 사전계약 첫날에만 1만2000대라는 역대급 기록을 세웠다. 4일 기준 사전계약대수는 3만대를 넘어선다.
◆디자인=토레스 첫 인상은 쌍용차 답지않은 세련미다. 쌍용차 대부분 차종에 달려있는 3써클 로고가 사라졌다. 대신 세로격자 모양의 버티컬 타입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그 아래 스키드 플레이트 일체형 범퍼가 균형감 있게 어우러진다. 양옆에 자리한 LED 헤드램프는 북두칠성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은 손잡이가 긴 국자가 떠오른다. 노랗게 깜빡이면 더 그렇다.
고리 모양의 후드 가니쉬는 아웃도어 차량 분위기를 내려고 일부러 넣은 듯 하다. 오너 취향에 따라 야외 활동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측면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각지게 굴곡진 휠아치 가니쉬가 존재감을 발산한다.
C필러 한 켠에 불룩 튀어나온(다들 뭔지 궁금해했을) 사이드 스토리지 박스는 차키에 달린 열쇠로 여닫을 수 있는 데 개인 취향에 따라 구급상자, 램프 등을 넣으면 된다. 얼마나 잘 활용될지는 모르겠다.
후면은 스페어 타이어를 형상화한 핵사곤 타입의 리어 가니쉬가 리어 LED 램프와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램프 제동등은 태극기 건·곤·감·리 중 '리' 문양을 표현했다. 리어 가니쉬가 볼륨감 있게 자리해서 그런 지 후면도 전면 만큼 빼어나다. 우측면에 있는 도어 핸들은 정통 SUV 이미지를 살렸다고 하지만 번거로움을 감안하면 굳이 달지 않아도 됐을 것 같다.
실내 콘셉트는 슬림앤와이드(slim&wide)다. 운전석에 앉으면 시원하게 탁 트인 전방이 보인다. 그 아래 3분할 와이드 디지털 클러스터, 12.3인치 대화면 인포콘 AVN, 8인치 버튼리스 디지털 통합 컨트롤 패널이 'ㄱ'자 모양으로 구성돼 있다. 그 외에 별다른 물리 버튼을 없애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을 준다. 시야는 넓지만 가로로 일정하게 1열을 맞추다 보니 클러스터가 상대적으로 좁아 보인다. 다만 실제 주행할 때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
버튼리스 컨트롤 패널에는 공조장치, 시트 통풍 열선, 스티어링 휠 열선, 오토홀드 등이 모두 탑재돼있다. 시작적으로는 깔끔하지만 직관성은 떨어진다. 사용이 익숙하지 못한 운전자는 주행 전 충분히 숙지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할 것 같다. 주행 모드 찾느라 적잖은 시간을 허비했다.
코란도가 2열에 공조장치가 없어 원성이 컸는 데, 여름을 겨냥(?)해 출시해서 그런 것인지 다행히도 토레스에선 찾을 수 있었다. 1열에는 빌트인 공기청정기까지 달아 한층 쾌적한 실내를 유지할 수 있다. 트렁크를 보니 좀 무리했으면 3열을 끼워 넣고 7인승이라고 우겨도 될 뻔했다 싶을 정도로 공간이 넉넉했다. 2열을 폴딩하면 1662ℓ까지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폴딩 시 완전 평평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더할나위 없이 잘생긴 외모에 넉넉한 실내가 패밀리카로 안성맞춤이다. 짐도 가득 실을 수 있는 데다, 가족을 태우고 쓸 데 없이 150km, 200km 속력으로 달릴 이유가 없으니 안정적인 SUV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원은 전장 4700mm, 전폭 1890mm, 전고 1720mm, 축거 2680mm로 거론되는 경쟁차종과 비교해 충분히 넓고 높고 길다.
◆주행 퍼포먼스=매력적인 외관에 흠뻑 빠진 뒤 두근거리며 시승 차량에 올라탔다. 이날 코스는 네스트호텔에서 출발해 인천 연수구 소재 카페 포레스트 아웃팅스를 도착한 뒤 회차하는 총 86km 거리였다. 시승 차량은 'T7' 스페이스 블랙이다.
60km 이하 정속 주행에서는 무리없이 부드럽게 잘 달렸다. 덩치 답지 않은 편안함이 잘 느껴졌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속력을 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을 때 마다 응답성이 더뎠다. 주행 모드를 노멀에서 스포츠 모드로 바꿔도 소리만 웅장해질 뿐 응답성은 여전했다.
토레스 파워트레인은 최대토크 28.6kg·m, 최고출력 170마력의 1.5ℓ 터보 가솔린 엔진(e-XGDi150T)과 3세대 아이신 6단 자동변속기 조합이다. 아무래도 중형 SUV 사이즈에 티볼리 코란도와 같은 사이즈의 엔진을 탑재해서 그런지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감속 응답성도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힘을 주어 브레이크를 꽉 밟지 않으면 어지간해선 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회사측에선 '운행구간(60~120km)의 가속성능을 5% 향상시켰다'고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느끼기 어려운 부분이다. 주행모드를 노멀-스포츠로 자주 바꾸고, 가속페달을 여러 번 밟아 본 소감이다.
토레스를 타면 갑자기 바로 제깍 차를 세워야 하는 일이 적어야 하겠고, 급하게 가속페달을 밟고 외출하는 일도 적어야 하겠다. 홍보자료에는 '다운사이징 트렌드에 맞게 1.5ℓ 터보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다'고 표현했다. 그 트렌드 꼭 바뀌었으면 한다.
◆2.5레벨 자율주행=주행 퍼포먼스는 그만 경험하기로 하고 인천대교에서 능동형 주행안전 보조기술인 인텔리전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IACC)을 써보기로 했다. 구간 속도를 100km로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에 100km로 설정한 후 손과 발을 뗐다. 99km 속도를 유지하며 스스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체감 시간 10초 정도 지나니 핸들을 잡으라는 신호가 울렸다. 차선이탈경고, 안전속도제어 등도 적절하게 반응하며 안전 운전을 도왔다. 예상 보다 반응 좋은 IACC가 있으니 지루한 구간에는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3레벨도 개발중이라고 하니 내년 나올 신차에 적용될 지 궁금해진다.
◆가격=잘생긴 외모지만 살짝 아쉬운 주행 퍼포먼스.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토레스를 선택하는 이들은 적을 것이다. 중형 SUV라는 차급임에도 쌍용차는 2000만원부터 시작하는 가격을 책정해 대놓고 생태계 교란종(?)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대주주없는 2년간 신차 없이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던 쌍용차로선 1대가 아쉬운 상황이니 토레스 가격 경쟁력도 고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트림은 T5 2740만원, T7 3020만원으로 중형 SUV 신차를 2000만원 후반에 구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어필하고 있다. 시작 가격은 군침이 돌지만 따져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다. 사륜구동 시스템(200만원)은 옵션이다.
세이프티 선루프(50만원), 무릎 에어백(20만원), 투톤 익스테리어 패키지(40만원), 사이드 스토리지 박스(30만원)도 추가해야 한다. IACC를 경험할딥 컨트롤 패키지는 100만원이다. 시승 차량은 이런 옵션들을 더한 3585만원 짜리 차량이었다.
1열 통풍 시트는 하위 트림인 T5에는 그나마 적용되지도 않는다.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은 당연히 상위 트림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한 자율주행, 4륜 구동 시스템 등을 적용하면 이래저래 3000만원이 넘어간다.
그래도 경쟁차종과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은 여전하다. 어쩌면 인플레이션 시대, 마지막 2000만원대 중형 SUV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요즘처럼 출고 대기가 1년 넘게 걸리는 상황에서 따끈따끈한 신차를 연내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은 놓치기 어려울 만한 대목이다. 쌍용차는 다음주부터 2교대로 전환하고 주말 특근도 활용해 사전계약 대수 85% 이상을 소화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 대주주를 찾은 쌍용차는 경영정상화 신호탄이 될 토레스를 어렵게 내놨다. 오랜 공백만큼 디자인, 가격 장점을 내세워 SUV 명가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파워트레인이 좀 아쉽지만 준중형~중형 SUV를 아우르겠다고 밝힌 만큼 현재 엔진 라인업으로선 최선이었겠다는 생각이다.
매일 출퇴근 하는 직장인, 가성비 좋은 패밀리카, 신차가 급한 고객, 국산차를 응원하는 애국자 모두에게 모두 어울린다. 역대급 기록인 사전계약 3만대는 쌍용차 부활의 기분 좋은 시그널이다. 토레스 성공이 발판이 돼 토레스 전기차 모델, KR10, 전기픽업 출시 일정을 앞당겼다는 소식을 듣길 기대한다.
▲타깃
-잘생긴 외관에 넉넉한 실내, 근데 가격 앞자리가 2라고? 심쿵했다면 당신은 잠재 소비자.
▲주의할 점
-토레스로 '분노의 질주'하려다 강제 안전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