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참담한 실패가 준 교훈
포퓰리스트 정치인들 대두의 배경
조직의 붕괴는 내부에서 시작된다
2011년 10월 26일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서울시장직을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에게 빼앗겼다. 자신의 주도로 당의 혼란을 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홍준표 당 대표가 결국 사퇴하고, 박근혜 의원이 12월 19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의 지휘권을 장악했다. 그는 이듬해 2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그해 4월의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다음 그 여세를 몰아 12월 대선에서 승리, 제18대 대통령이 되었다(‘26세 비대위원 이준석’이 바로 박 비대위원장의 작품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은 문재인, 그 전해의 재보궐선거 정국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안철수 등 스타정치인들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고 박 전 대통령은 최종적 승리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 성공은 바로 이듬해 4월의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대통령으로서의 그는 상황 판단과 인식에서 안이함을 드러냈다. 황천항해(荒天航海)에 몰린 선장이 선박 운항의 책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선원들과도 갈등‧불신의 관계를 노정했다. 그는 이 상황을 포용과 소통이 아닌 분노표시와 질책으로 극복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새누리당의 참담한 실패가 준 교훈
당내 분열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2016년 제20대 총선이 닥쳤다. 어쩌면 박 당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 신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확고한 자신감에 차 있었는지도 모른다. 160석은 쉽게 얻을 수 있고, 조금 욕심을 내자면 180석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당시 새누리당의 분위기였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민주당보다 당내 비박(비주류)계의 세력 확대가 더 신경 쓰였을 수 있다. 그 때문에 공천에 개입했고, 이로 인한 당 내홍이 패배를 초래했다. 보수 집권당으로서는 사상 최초의 총선 패배였다.
단지 1석 차이의 패배였지만 그건 보수정당의 대참사였다. 그 충격을 수습하려면 정치는 당에 일임하고 자신은 행정에만 전념하겠다는 대통령의 선언이 필요했다. 탈당은 진정성을 보인다는 측면에서나 퍼포먼스의 측면에서 선제적으로 내밀었어야 할 카드였다. 그런데 그는 권위의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위기감 때문이었는지 되레 여당에 대한 장악력 강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박 대통령은 그해 8월 9일의 전당대회에 참석해서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언명령이었다. 책임을 스스로 떠안는 것이 아니라 비판자들에게 미루는 식의 화법을 구사한 것이다. 그날 전당대회에서 친박 후보가 당 대표로 뽑혔다. 그리고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친박으로 채워졌다. 박 대통령의 진두지휘 하에 친박이 당 지도부 석권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는 친박이 당을 이끌겠다고 나설 계제가 아니었다. 비주류에게 기회를 양보하고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이 당의 분열을 막는 길임이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과 친박은 당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당내 화해와 재결속의 기회를 포기하고 말았다. 파국은 이렇게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지역경선에서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 확인됐다. 6일 강원·대구·경북, 7일 제주·인천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74.15%의 압도적 득표율을 올리며 기염을 토했다. 권리당원 투표의 결과일 뿐, 대의원 투표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대세는 결판 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딸’. ‘개아들’로 상징되는 그의 팬덤이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양상이라고 하겠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 대두의 배경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한국에서는 이재명이 보여주는 이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부상과 도약은 해괴하다고까지 할 정치의 이상(異常)현상이다. ①대중이, 판에 박힌 정석행마보다 스릴감 안겨주는 변칙행마에 더 열광하는 시대 분위기가 형성된 것일까? ②가식적인 선(善)보다 솔직한 악(惡)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탓일까? ③각자의 마음속이나 집단적 심리에 가득 찬 분노를 속 시원하게 대변해주는 말재간에 반했을까? ④그것도 아니라면 동질감을 갖게 된 대중이, 상반되는 이해나 생각을 가진 다른 대중에 대한 반감을 표하는 집단화된 태도일까?
어쨌든 이 후보는 갖가지 의혹 사건의 중심에 놓인 데다 관련사건 연루자3명의 잇따른 의문사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당선자를 0.73%포인트 차로 육박해 갔었다. 대선에서 낙선하고도 바로 민주당 상임고문‧지방선거 총괄선대위원장에다 인천 계양을 선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직까지 차지했다. 연고지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 갑 선거구를 피해 인천까지 갔다. 그 지역은 5선 의원인 송영길 전 당 대표가 뜬금없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면서 비운 곳이었다.
일단 국회 진입에 성공한 그는 8월 28일의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직까지 갖겠다면서 경선 판에 뛰어들었다. 일전에 ‘법카 유용 의혹’과 관련, 경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김 모 씨가 사망(자살로 추정)했지만 이 후보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 마디로 잘랐다. 정황이나 물증으로 미루어 도저히 모를 수 없는 사이인 것 같은데도 그는 간단명료하게 부인했다. 이게 그의 ‘부인(否認) 화법’이다. 짧고 분명하게, 표정 변화 없이 ”모른다“ ”아니다“로 일축해 버린다.
그의 당 대표직 차지가 ‘떼어 놓은 당상’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에 편승, 지지자들의 당헌 개정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당직자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될 경우 바로 그 직무를 정지시키기로 된 당헌 제80조를 고쳐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을 ‘이재명의 당헌’으로 완성하겠다는 뜻인 듯하다. 사당(私黨) 체제로의 복귀 요구이다. 당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으나 ‘개딸’ ‘개아들’의 목소리에 압도 당하고 있다.
조직의 붕괴는 내부에서 시작된다
그가 정말로 결백하다면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후보에게 ‘수용하라’고 다그치던 그 ‘대장동 특검’을 앞장서 추진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언하고 당헌 개정 움직임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야 옳다. 그러는 것이 정치리더가 되려는 사람의 당연한 도덕적 의무다. 그 걸 요리조리 요령껏 피해가며 딴 소리나 늘어놓는 것은 시정잡배의 장기자랑에 불과하다.
이 후보는 ‘0.73%의 덫’에 걸려들었다. 차기 대선 출마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심리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장 사법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 자칫 유죄판결이라도 받게 되면 ‘차기의 꿈’은 흩어지고 만다. 국회의원직에 더해 거대 원내 제1당의 대표직까지 꿰차면 수사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그 자신과 지지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지금처럼 심각한 상황에서 절대다수 의석의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사법처리는 시도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의 기도와 기대가 충족될 개연성은 아주 높다. 그래서 당 대표가 되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차기 대선의 길을 닦는 공병대 역할을 한다고 치자. 단언컨대 그렇게 한다 해도 그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대통령 꿈’은 멀어진다. 대중의 환호성은 마음이 아니라 입술에서 나온다. 쉽게 대상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교묘한 말솜씨와 꾸며진 표정으로 언제까지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다.
자신의 힘이 강력하다고 여겨질 무렵이 멈춰서고 물러설 때이다. 더 밀어붙이면 그만큼 반작용의 힘도 커진다. 어떤 집단이나 조직도 붕괴의 조짐은 내부의 불신과 반발이라는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후보도 그 이치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차기 대권의 유혹과 의혹사건 수사의 압박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든 앞으로 그가 그려갈 궤적, 벌써부터 흥미롭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