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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달리는 여야…'준예산 사태' 현실화 될까


입력 2022.10.30 03:00 수정 2022.10.30 03:00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헌정 사상 한 번도 현실된 적 없는데

가능성 놓고 총리와 진지하게 문답

여당 원내대표도 "연말 갈 수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여야 간의 극한 대치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내달 4일부터 정기국회 예산심사가 시작되지만, 법정기한(12월 2일)내 처리는 물론 내년도 예산안이 올해 처리되지 못하는 준예산(準豫算)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아직 본격적인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시작되지조차 않았지만, 여야 곳곳에서 준예산 가능성에 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준예산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정부가 예산안을 냈기 때문에 국회에서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며 "여야 간에 합의가 나지 않으면 어떠한 상황이 전개될지 정치권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국회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준예산은 새해가 될 때까지 예산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지 못했을 경우 △헌법기관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승인사업의 계속을 위해 전년도 예산에 준하는 경비를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헌법 제54조 3항에 규정돼 있지만, 지금까지 헌정 사상 한 번도 현실화된 적이 없다. 한덕수 총리의 답변도 준예산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한 차례도 일어난 적이 없는 사태를 가정한 질문과 답변이 진지하게 오가는 것 자체가 준예산 사태가 현실화할 위험성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도 윤석열정부 예산안의 의결을 보장하지 못한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이 임박했을 때까지 예산안 심사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정부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그런데 여당이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다면 이렇게 자동 상정된 정부 예산안을 그대로 의결해버리겠다는 '으름장'으로 야당을 압박할 수가 있지만, 지금은 반대로 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예산안 본회의 자동상정 규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당에서는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기한인 12월 2일까지 처리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준예산 사태' 직전인 연말까지도 의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선 레이건 이래 15차례 현실화
여야, 서로 '상대가 더 손해' 계산 딴판
마주 오면서 핸들 안 꺾어 '충돌' 우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이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최근 의원총회에서 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 "올해는 예산이 12월 2일 통과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연말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부터 진짜 예산전쟁이라는 각오로 철저히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도 "헌정 사상 단 한 차례도 '준예산 사태'가 현실화된 적은 없지만, 현 정권 들어서 워낙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계속 일어나고 있어서 뭐라 앞날을 단언하기 어렵다"며 "당장 여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시정연설이 진행된 것도 헌정 사상 초유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준예산 사태'가 현실화할 경우 어느 진영이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것이냐를 놓고서도 서로 간의 계산이 엇갈리는 것도, '준예산 사태' 현실화의 우려를 더해준다는 관측이다. 마주 달리면서도 서로 '부딪히면 상대가 더 손해'라는 생각에서 핸들을 꺾지 않으리라는 우려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새 정부가 짜는 첫 예산안을 다수 의석을 점한 야당이 해가 바뀌도록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발목잡는 야당'을 곱게 보겠느냐"며 "'준예산 사태'가 현실화하면 당연히 야당에 부담이 쏠려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예산안을 통과시켜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협치를 내다버린 채 예산안 하나 제대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무능과 독주의 현 정권을 향한 국민들의 회의감이 더욱 깊어지실 것"이라며 "미국의 사례를 봐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해 연방정부 셧다운이 현실화하면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준예산 사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아직 한 차례도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광역자치단체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미 발생한 적이 있다.


또 제도적으로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발생할 여지가 없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래로만 따져도 15차례나 현실화했다. 레이건·부시·트럼프 등 공화당 행정부 뿐만 아니라 클린턴·오마바 등 민주당 행정부에서도 당적과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해외나 지방자치단체의 사례를 볼 때, 중앙정부의 '준예산 사태'도 빠르든 늦든 언젠가 한 번쯤은 터질 일"이라면서도 "우리나라의 준예산 규정은 미국의 '연방정부 셧다운'처럼 극단적으로 경비 집행을 제약하지는 않기 때문에, 실제 현실화됐을 경우 경제 현장에 파급될 여파와 대통령 및 여야 지지율에 미칠 영향은 미리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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