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항소의지만 강조했을 뿐이다
변화 기미 전혀 없는 386의 이중성
초거대정당이 거리에서 시위라니
정의와 불의, 선과 악에 대해 온갖 표현의 경구를 생산해 냈다. 얼마나 많았으면 ‘조만대장경’으로까지 불렸겠는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너무 많은 말과 글을 쏟아냈다는 뜻에서 비판자들이 붙인 조롱성 조어(造語)다. 또 한편으로는 구구절절 옳고 거창한 말들로 가득 채워져, ‘역설적이지만’ 가히 경전에 필적할 만하다는 의미의 비유어이기도 하다.
그가 한사코 부인했던 자신과 가족의 범법사실이 법원의 판결로 확인됐다. 부인 정경심 전 교수는 일찌감치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자신 또한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에 의해 징역 2년의 실형(부인도 1년형 추가)을 선고받았다. 자녀들의 경우 부모의 범법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범죄의 혜택을 받았으니 최소한 그 만큼의 책임은 지고 있는 셈이다.
조국, 항소의지만 강조했을 뿐이다
조 전 장관은 서울 대학교 법학교수로 형법을 가르쳤다. 그 분야에서는 남다른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강남좌파인 그는 그 전문성을 배경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해당분야 코치 역할을 했음직하다. 대선 후보 적부터 문 전 대통령의 지낭(智囊) 또는 이념 교사로 전폭적인 신임을 받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들의 세계와 인간관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다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또 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시킨 것은 대통령 자신보다 조 당시 민정수석의 강력한 조력자로서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듯하다. 자기들 이상사회의 길라잡이로 조국, 그 길을 열고 정비하는 선봉장으로 윤석열.)
그 조 전 장관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좌파들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평균적인 국민에게도 소견이 멀쩡한 지식인으로 여겨질 만한 언급을 당당히 한 바가 있다(물론 조만대장경 내용도 그랬지만).
그의 이중성이 이 정도에서 그쳤더라도 온 나라가 이른바 ‘조국현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그토록 험한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는 명백히 법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386의 이중성’을 실천(?)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에다 법무부장관직까지 차지했다. 그게 죄질이 나쁜 범법행위임을 법학자가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버젓이 고위 공직을 꿰찼다. 문 대통령(당시)은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궤변으로, 다른 자리도 아닌 법무장관직을 범법자에게 맡김으로써 정말 ‘나쁜 선례’를 남겼다.
‘개싸움국민운동본부’, ‘조국수호대’ 등 괴상하고 거창한 이름의 단체들이 나서서 검찰에 대해 온갖 패악을 부렸다. 부패한 정치검찰이 결백한 조국에게 없는 죄를 씌운다며 서초동을 촛불로 붉게 물들였다. 더불어민주당도 거들었다.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로 일관했다.
변화 기미 전혀 없는 386의 이중성
이후 조 전 장관 일가의 비리가 하나하나 법의 이름으로 확인되었지만 아무도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 전 장관이 재판 출석을 위해 법원에 가면 지지자들은 물티슈로 차를 닦으면서 ‘의인(義人) 가족’운운했다. 그들에겐 문재인·조국이 법 위의 존재였다. 그런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독점한 양하는 참으로 희한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2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날도 조 전 장관은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소의지만 강조했을 뿐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대법원의 2년 징역형 확정판결에 따라 구치소에 들어가면서도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다발을 들고 들어가던 장면을 조 전 장관이 심리적으로 재연했다. 그는 검찰에 입건되고 압수수색을 당한이래 1심판결이 날 때까지 내내 결백을 주장하면서 검찰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번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차례다. 이처럼 또렷한 데자뷰도 달리 없을 것이다. ‘개싸움국민운동본부’라더니 이 대표의 경우는 ‘개딸’들이 그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개’자(字)를 붙여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것도 좌파의 트렌드인 것 같다. ‘개혁’의 준말이라고 하지만 일부러 그런 글자를 앞세워 이름을 지은 것은 “혐의가 사실이라 해도 뭐 어쩔 건데?”라는 반발 심리의 발로로 읽힌다. 남이 뭐라 하건, 어떤 증거가 드러나든 말든 “우리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는 집단 협박이다.
조 전 장관이 지적했던 ‘386의 이중성’은 그들이 586으로 불리게 된 지금도 달라진 바 없다. 이 대표의 혐의가 (추미애 식 표현으로) 차고 넘치는데도 되레 검찰을 공격한다. 훗날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 대표와 ‘개딸’로 상징되는 그 지지자들의 언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 전 총리가 2015년 8월 24일 서울구치소로 들어가면서 했던 이 말을 이 대표가 흉내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의 지지자들은 목소리 높여 호응할 것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로 맞설지도 모른다.
이 대표는 검찰의 추가 소환조사 요구를 받은 것과 관련, 지난달 30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말했다.
초거대정당이 거리에서 시위라니
이에 대해 한동훈 법무장관이 다음날 적절한 코멘트를 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의 민주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다.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를 신조로 삼고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자신이 당선됐더라면 대장동·백현동 개발,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선거법 위반, 대북사업, 법인카드 유용 등과 관련된 비리의혹은 바로 그 자리에서 덮어버렸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이런 생각을 제1야당의 대표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
이 말을 신호삼아 초거대 민주당은 4일 서울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2만명, 민주당 자체 추산 30만명이 참가했다. 소수 야당이 다수 여당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장외집회를 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거대 정당이 군중을 동원해 정부를 압박하는 광경은 보고 듣느니 처음이다. 이 대표를 필두로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에다 ‘개딸’ 등 지지자들이 총동원된 인상을 줬다.
민생안정을 위해 궐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메시지는 다르다.
“이재명의 결백을 인정하라, 수사를 포기하라.”
이런 말 아닌가?
“우기고 윽박질러 우리 식의 진실을 만들자!”
이렇게도 들린다.
입법자들이 정부와 검찰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겠다고 군중시위를 주도하는 나라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건재하다는 사실은 정치사적 기적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지금은 세계가 함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와중이다. 당 대표 한 사람의 범죄혐의를 벗겨내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린 이런 정당을 정상이라고 볼 사람이, 자기들 말고는 있을 것 같지 않다. 좀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섬뜩하다.
언제 이들에게서 단 한 마디라도 ‘대국민 사과’를 들을 수 있을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