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함께 기소된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는 각각 징역 5년, 징역 4년 구형
"재판 과정서 당사자 아닌 사법부의 조직적 이해관계까지 고려되는 건 어떠한 명분으로도 허용 안 돼"
"특정 판결 요구해 법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 철저히 무시…당사자들,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 침해"
"사법행정권 최고 책임자들이 재판 개입…사법부 스스로 법적 책임져야만 정상화"
검찰이 일명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하며 "사법행정권의 최고 책임자인 피고인들이 재판에 개입하여 법관의 도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초유의 사건"이라며 "사법부 스스로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만 사법부가 다시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5일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의 결심 공판에서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는 징역 5년,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가 아닌 사법부의 조직적 이해관계까지 고려된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며 "그런데도 재판독립을 파괴하고 특정 판결을 요구해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는 철저히 무시됐고 당사자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사법행정권의 최고 책임자인 피고인들이 재판에 개입하여 법관의 도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초유의 사건"이라며 "사법부 스스로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만 사법부가 다시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은 범행의 동기로 본 당시 사법부 대내외적 환경에 대해 "법관 인사 일원화 시행으로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최대 역점사업인 상고법원 입법안이 대내외적 비판으로 폐기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법원행정처는 재판을 로비의 수단으로 활용했으며 비판 세력 압박 방안 마련과 실행, 법관 비위 사실 은폐 등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피고인들의 공모관계에 대해서는 "피고인들이 기본방침·대응 기조를 승인한 이상 개별 범행에 대한 별도의 의사 연락이 없더라도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심의관은 법원행정처에 근무하게 되면 의사 결정권의 피라미드 속에서 상급자의 의사가 하급자의 의사를 지배한다고 진술했다'며 "이를 통해서도 당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잘 알 수 있고 피고인들의 지시나 승인 없이는 진행되기 어려운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사법행정과 재판 영역이 분리돼 관여할 수 없다는 주장에 따르더라도 행정상 명분을 내세워 법원행정처 내부 보고와 승인 등 의사 결정을 거쳐 협조 요청을 했기에 월권적 남용을 했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앞서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다른 법관들에게 법원이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어 죄가 성립되지 못한다'며 잇따라 무죄로 선고한 판결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은 "재판 개입을 위한 중간단계로서의 위법한 지시는 죄가 성립한다고 봤지만 외려 궁극적 목적이나 불법성이 더욱 큰 재판개입에 대해선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라며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 재고되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날 1심 결심 공판은 검찰의 기소 후 277차례의 공판을 거쳐 약 4년7개월 만에 열렸다. 검찰은 구형 의견에도 1시간40여분을 할애했다. 오후에는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사건은 장기간 재판이 진행돼 내용이 방대한 만큼 선고 결과는 올해 연말에야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반적인 재판은 결심공판 후 약 한 달 뒤 선고가 잡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1년 9월부터 임기 6년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고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로 2019년 2월11일 구속기소 됐다.
그는 역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 등을 도모하려고 청와대·행정부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 등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