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남덕우 그리고 미네르바

입력 2009.01.15 10:54  수정

<네티즌 칼럼>일개 네티즌의 여죄 따지기에 정부-여당-법조계가 매달리다니...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05년 6월 10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주최 조찬모임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신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강연을 하고 있다.
요즘은 눈만 뜨면 ‘미네르바’가 화두다. 나라가 반쪽 난 듯 유·무죄를 주장하고 심지어는 그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바람에 미네르바는 가히 조선시대의 일지매나 홍길동 급의 전설적인 인물이 될 지경이다.

일개 네티즌의 글로 인해 정부는 몇 십억 달러의 외환 손해가 났다고 난리고 그 문제에 대한 부처 직원의 발언은 정부의 환율 개입 여부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권위 있는 학자도 아니고 전직 고위 경제 관료도 아닌 30대 백수가 이렇게 경제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에 없는 일이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 얼굴에 침을 뱉은 것과 마찬가지로 창피스러운 일이다.

이 문제의 본질은 미네르바의 교묘한 글 솜씨나 짜깁기 능력이 아니라 정부의 신뢰 부재다. 정치와 경제는 맞물려 있는 것이라 아무리 좋은 경제 정책을 펴나가도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국민은 언제 구조조정 대상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 소비를 줄이고 기업가는 정부를 신뢰하지 못해 설비투자를 외면하니 경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 환경 속에서 환률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수출·수입업자들은 미덥지 못한 정부의 환율 정책 때문에 점쟁이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판국에 미네르바 같은 네티즌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 환율이나 주가 동향 등을 족집게 같이 몇 번만 맞춘다면 솔깃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대통령이 직접 은행장들에게 기업에 대출을 해주라고 대여섯 번씩 강조를 해도 은행은 들은 척 만 척이고 하루에도 기업 수백 개씩이 도산하는 판에 몇 푼 안 남은 잔고까지 날리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은행,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정책의 일관성이 없는 정부를 믿지 못한 탓에 기인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신뢰 부재의 정부는 앞으로도 제2, 제3의 미네르바를 양산해 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법을 제정하여 재갈을 물려도 배고픈 국민의 입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니!

경우는 좀 다르지만 이런 현실이 전에 읽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남덕우 총리 기용 일화와 비교가 된다.

70년대 들어서 정부가 한창 중화학 공업 육성과 수출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무렵, 서강대학교 경제학 교수였던 남덕우는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맹렬히 비난했다고 한다.

연일 경제지에 칼럼을 쓰며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난하던 중 어느 날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한 눈에 보아도 수사기관에서 나온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동행을 요구하여 마음속으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비장한 심정으로 그들을 따라 검은 지프에 올랐다 한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중앙정보부가 있는 남산이나 검찰청이 있는 덕수궁 쪽으로 가겠거니 했는데 광화문에서 좌회전을 해서 바로 청와대로 들어가는 바람에 속으로 꽤나 놀랐다.

동승했던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노타이 셔츠 바람의 박정희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좌석에 앉으니 대통령이 “그래 임자가 요즘 내 경제 정책을 그렇게 반대한다지? 그래 다른 복안이 있으면 한 번 말해 보라고!” 하며 서두를 꺼내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정부 시책의 장단점을 피력했다고 한다.

긴 이야기가 끝난 후 박정희는 “경제 정책이란 이렇게 해도 욕을 먹고 저렇게 해도 욕을 먹게 마련이야! 당신은 경제학자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고 내게 욕을 해댔으니 이제부터는 임자가 내 대신 욕을 좀 먹어봐” 다음 날 자신을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했다는 연락이 오고 그 때부터 박정희 대통령과 자신의 길고 긴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후 자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더 열렬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신봉자가 되어 수출 대국 한국 경제의 주역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기업을 경영해본 경험도 없는 사람이다. 단지 가난에 허덕이는 국민이 불쌍해서 다 각도로 경제 살리기를 연구했고 그 결과 식량 자급자족과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민생에 도움이 되어 보이는 것이 있으면 직접 가서 확인해 본 다음 대대적으로 보급 시켰고 농번기가 되면 가까운 교외에라도 나가서 일손을 도왔다. 민초의 애로사항은 발로 뛰며 파악했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풀어주었다.

그런 신념과 의지는 선진국에서 경제학을 배운, 서강학파의 우두머리 급이었던 남덕우 전 총리 같은 분의 경제 철학마저 바꿀 만큼 강해 오늘 날 경제 대국을 만드는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정책 속에 인기나 얻고 자신의 업적이나 세우려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면 남덕우 교수 같은 사람을 청와대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랫사람들 시켜서 적당히 혼내 주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일개 학자의 의견도 밤늦은 시각까지 경청하고 반대 이론 중에서도 참작할 부분은 과감히 참작하는 중용의 묘를 택했다. 그 결과 수출은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신장되고 기아 수출에 가까운 정책을 쓰면서도 내수경제 침체라는 부작용을 최대한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작금의 미네르바 사태를 보면서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대한 강철 같은 신념을 가진 분이라면 정부, 여당, 법조계 할 것 없이 난리 법석을 떨면서 일개 네티즌의 유죄나 증명하게끔 방치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대통령 이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나라 경제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면 인터넷 들여다볼 시간도, 그런 일에 신경 쓸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밤늦게 일개 네티즌을 불러다 의견을 경청하는 아량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구의 경제 동향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어야 하고 관료는 서민 경제 현장을 발로 뛰어야 할 시간이다. 검·경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 들여다보고 유죄 입증이나 하려는 그 시간에 서민 경제 해치는 악덕 사채업자나 잡으러 다녀야 할 시점이다.

하긴 뭐! 현직 국정원 직원이 사채업자를 비호했다는 기사를 보니 해바라기 검찰이 감히 나설 수도 없겠지만, 대국은 보지 못하고 귀퉁이 집 차지에 사활을 거는 딱한 군상들을 보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글/산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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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터넷 토론마당 <데안토>에 실린 아이디 ‘산지기’님의 글입니다. ‘산지기’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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