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는 하와이에서 국힘에 악담
철학은 빈곤, 권력 욕구만 넘쳐흘러
포퓰리즘 정치가 독재자의 첫걸음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어제 시작돼 오늘까지 이어진다. 사전투표 첫날 전국 평균 투표율은 19.58%였다. 지난 20대 대선 때의 17.57%를 2.1%포인트 넘어섰다. 이 제도가 시행된 이래 첫날 투표율로는 가장 높은 수치다. 오늘까지 사전투표 최종 투표율은 지난 대선 때의 36.93%를 훌쩍 넘어 40%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율이 올라간 요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대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재임 중의 대통령이 헌재의 결정으로 파면당한 후에 급히 치러지는 선거다. 지난 대선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서 0.73%포인트 차로 석패했던 이재명 후보가 다시 나섰다. 거대 정당과 극렬 지지자 그룹,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좌파 세력의 간판스타이다. 그를 대적하고 있는 국민의힘에서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황망히 치러진 당내 경선을 거쳐 출마했다. 골수 노동자 출신에 강직한 이미지를 가진 투사형 정치인이다.
홍준표는 하와이에서 국힘에 악담
이 후보가 당선되면 다들 그러려니 할 것이다. 지난 대선 때도 그랬지만 이 후보로서는 도저히 질 수 없는 구도의 선거가 아닌가. 게다가 그는 강력한 권력(이렇게 표현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면 영향력으로 하든가)을 가지고 기세등등하게 민주당과 지지자들을 이끌어왔다. “여러분 손으로 무덤을 파자. 우리 손으로 그를 잡아 역사 속으로, 박정희의 유해 옆으로 보내주자”(2016년 12월 3일 6차 광화문 촛불집회)라는 등의 독한 언설로 ‘사이다’ 별명을 얻으며 일약 전국적 인물이 된 이력도 가졌다. 그런 그가 또 진다면 이야말로 정치사적인 망신이 되고 만다.
반면에 김 후보가 이기면 극적이고 역사적인 대역전극이 될 것이다. 후보의 자질과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너무 갑자기 대선 주자로 나섰다. 경선 과정도 말끔하지 못했다. 사생결단으로 뭉쳐 그의 승리를 이끌어내야 할 소속 정당은 지레 힘이 빠진데다 분열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도 않는다. 당 대표 두 번, 국회의원 5선, 광역지방자치단체장 두 번을 역임했으면서도 이번 대선의 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하자 “당이 나를 버렸다”며 탈당하고 미국으로 가버린 사람의 악담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미국 하와이에 머무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사전투표 첫날에도 악담과 저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준석을 모략으로 쫓아냈고, 자신은 시기 경선으로 밀어냈으니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글을 올려 국민의힘을 저주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되레 김 후보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여론 지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욕심이 커졌을 터이다. 물론 그가 김 후보에게 양보해야 할 까닭은 없지만 자유우파 정치세력 전체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그럴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였다. 이번엔 낙선하더라도 차기를 겨냥해 확실한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속셈일까? 유의미한 득표율을 기록하면 정치 리더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확보한다는 계산일 듯도 하다. ‘내’가 부풀어 올라 ‘우리’를 압도해버린 것이 오늘날의 가치관, 사조(思潮)인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빈곤, 권력 욕구만 넘쳐흘러
선거가 어떤 구도로 어떻게 진행되든 표를 많이 얻는 쪽이 이겨 대통령이 되고 전권을 장악한다. 대통령 선거야말로 승자독식 구조다. 이러니 사생결단식의 선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 중심제 권력구조를 포기하자고 나서는 사람이나 세력은 아주 소수에 그친다. 대안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대안인 의원내각제는 이미 2공화국 때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 의도도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요인은 우리 정당들의 구조다. 여전히 명망가, 유력자 정당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 이들은 자연스레 보스를 만들어낸다. 그 보스가 당의 대통령감이 된다. 강력하고 안정된 정당일수록 이런 사람은 미리 부상해 있게 마련이다. 대선 직전에 강력한 구심력을 가진 리더를 급조할 수 없는 정당(이를테면 국민의힘)은 의원내각제나 유사한 절충형 권력구조를 선호할 수도 있지만 그걸 소리 내서 주장하긴 어렵다. 다른 정당이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 정당의 대통령감으로 떠올라 있는 사람들의 경우, 다음에 바꾸든 어쩌든 하더라도 당장은 대통령제를 유지하고자 한다. 눈앞에 와 있는 것 같거나, 차지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대통령직을 포기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꼭 그런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유력정당의 중진급이 되면 그때부터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을 키우기 마련이다. 그 바람에 대통령제를 포기하는 개헌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대신 대통령 4년 중임제(혹은 연임제)가 대안으로 제시되곤 한다.
여전히 ‘선출 군주’의 위상과 이미지를 가진 대통령직은 모든 정치인에게 가장 매력적이고 전 인생을 걸어볼 만한 자리다. 실제로 그런 꿈을 꾸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어떻게 나라를 이끌 것인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비전과 현실적 청사진을 가진 사람은 없어 보인다. 과거에는 있었다. 그들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도덕성·정직성·희생과 봉사의 정신 등이 정치 리더의 기본 자질로 강조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대에 대통령직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치열한 도덕적 자기성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도덕 실천자로서의 대통령직은 그들의 뇌리에서 추방당해 버렸다. 지금은 권력동기만이 활활 불타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거창하게 국가 경영의 비전을 말하긴 한다. 그러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따위의 지극히 추상적이고, 그래서 현실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허언(虛言)이나 읊조릴 뿐이다.
포퓰리즘 정치가 독재자의 첫걸음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후보의 인간적 자질을 따지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많지도 않다. 그렇다고 정책 공약 같은 것을 면밀히 따져보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판단의 기준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다. 이른바 진영정치인데 포퓰리즘 정치는 이런 환경 속에서 배태되어 최고의 득표전략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대중이 주장하면 무조건 호응하고, 대중이 요구하면 무조건 약속하는 게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특징이다. 그 ‘대중’이 전체 유권자일 필요는 없다. ‘우리 편’을 확대하고 그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내면 된다. 상대편 대중들의 시선에 구애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민주당 이 후보의 경우 자신이 도덕성·정직성 결핍(?)에 대해 사회적 지탄을 받아온 데 더해 아들까지 같은 비난을 받게 된 분위기다. 개혁신당 이 후보가 민주당 이 후보 아들의 음란댓글, 도박 전력을 문제 삼자 민주당 측은 진위 규명과 유감 표명 대신 이준석 후보를 의원직에서 제명하겠다고 을러댔다. 민주당이 이렇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지지자들, 진영 내 유권자들의 충성심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가 독재자의 길을 가고 있다는 주장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반박하려는 열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인상을 줄수록 지지자들은 오히려 열광할 것이라고 믿어서가 아닐까?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했던 것처럼.
진영정치, 포퓰리즘 정치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의 선거는 진영 간 세력 경쟁이 되고 말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정치에 의존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독재자의 길을 밟아갈 위험성도 높다. 국민의 선택이 그런 결과를 낳는다면야 어쩌겠는가. 다만 어느 진영 유권자든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편’ 대통령이니까 무슨 일하든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고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는 사이에 자신들도 피통치자의 신세가 되고 말 것임을!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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