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홈페이지로 경제위기 극복?…대통령실 '긴급입찰' 절차 적절성 논란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5.09.29 00:01  수정 2025.09.29 00:01

요건 충족에도 '경제위기' 지침 동원

형식은 '합법' 내수진작 취지는 '부족'

구체적 사유 든 헌재…대통령실 '한줄'

"신속집행이 기재부 지침…문제없어"

청와대 업무표장 ⓒ대통령실

대통령실이 '대통령실 홈페이지 구축 사업'과 '대통령 SNS채널 제작 용역' 계약 절차를 앞당겨 추진하기 위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계약지침'을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지침은 내수·민생 어려움 완화를 위해 신속한 공공구매 집행을 위해 마련됐다.


다만 사업 예산상 기간 단축 요건을 충족함에도 행정적 안전장치를 위해 사유서를 제출하거나, 타 정부 기관과 달리 구체적인 설명을 명시하지 않았다. 지침의 취지인 '내수진작·민생사업 지원'이 아닌, 홈페이지 오픈 계획 시기를 맞추기 위해 활용했다는 문제와 함께 행정적 투명성에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데일리안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비서실은 지난 8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대통령실 홈페이지 구축 사업'(현재는 임시 홈페이지)과 '대통령 SNS채널 영상 콘텐츠 및 라이브 제작 용역' 사전규격을 공개했다. 입찰공고 이전에 규격서를 미리 공개해 사업자 간 투명한 경쟁을 유도하는 제도지만, 긴급 사유를 제출하면 입찰공고 시기를 단축할 수 있다.


대통령실은 두 사업의 계약 절차를 단축하기 위해 '긴급입찰 사유서'를 제출했다. 사유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계약지침'이다.


해당 지침은 기획재정부가 경제위기에 따른 내수·민생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신속한 공공구매 집행 및 조달기업 지원을 위해 한시적으로 마련한 제도다. 이 목적이 충족되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국가계약법) 35조 4항 1의2호에 따라, 국가 재정정책상 예산의 조기집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긴급입찰'로 발주가 가능하다.


대통령실이 지난 8월 25일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제출한 '대통령실 홈페이지 구축 사업' 긴급입찰 사유서 ⓒ나라장터

현행 국가계약법 35조 4항에는 △국가 재정정책상 예산 조기집행 필요 △다른 국가사업과 연계돼 일정조정이 불가피 △긴급한 행사 또는 재해예방·복구 필요 등 상황을 긴급입찰 사유로 보고 있다.


긴급에 부친 결과 '홈페이지 구축' 사업은 최소 한 달의 시간이 단축됐다. 대통령실이 당초 계획한 12월 초 정식 서비스 오픈에 시한을 맞추기 위해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의 청와대 이전은 올해 말로 점쳐지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 지침을 활용한 이유가 당초 취지인 '내수진작·민생사업 지원'이 아닌, 홈페이지 오픈 계획 시기를 맞추기 위해 활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재부 지침을 따랐다고 해도 다른 정부 기관이 제출한 '긴급입찰 사유서'와 비교하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구축 사업은 '협상에 의한 계약'이다. 사업 추정가격이 고시금액(2억1000만원) 미만이거나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 해당하면, 입찰 절차는 기존 40일에서 10일까지 단축된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구축 사업의 예산은 1억9000여만원이다.


사업 추정금액이 고시금액 미만으로 시행령에 따라 공고 단축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해당 사유를 들지 않고 '경제위기 극복' 지침만 사유로 제출했다. 8300여만원 예산이 들어가는 '대통령 SNS채널 영상 콘텐츠 및 라이브 제작 용역'도 마찬가지다.


타 기관과 비교해도 '긴급입찰 사유서'의 내용은 미흡하다. 기재부 지침이 있더라도 해당 사업이 긴급입찰이 이뤄져야 하는 '근거와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


실제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2025년도 헌재 외국헌법재판자료 번역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긴급입찰 사유서를 제출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사업과 마찬가지로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진행됐다. 다만 헌재는 해당 사업이 '추정가격이 고시금액 미만'이라는 근거와 함께, '번역수행(약 4~5개월) 이후, 외부감수(2개월) 및 편집·발간(2개월)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해 긴급입찰로 진행하고자 함'이라는 구체적인 사유를 제시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국가계약법 35조 4항,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계약지침'이라는 내용의 사유만 제출했다.


대통령실은 업체들에 '제안서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허위·과장된 사실이 발견될 경우 입찰은 무효로 처리'라는 엄격한 잣대를 제시했지만, 정작 국가 예산을 활용하는 사업의 긴급성과 필요성 설명은 미흡해 정부 최고 기관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제출한 '외국헌법재판자료 번역사업' 긴급입찰 사유서 ⓒ나라장터

해당 공고를 담당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계약의 어떤 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 지침에 따라서 우리는 한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지침(내수·민생 어려움 완화)과 홈페이지 구축이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라는 물음에 "홈페이지나 건설이나 어떤 사업이든 경쟁입찰의 경우 예산을 빨리 조기 집행하라는 것"이라며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긴급입찰이 가능한 사업 예산임에도 추가로 사유서를 제출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긴급입찰 대상이긴 하지만, 혹시 몰라서 사유서를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감사 문제 발생을 염두에 둔 조치인지에 대해선 "아니다"라면서 "두 개(기재부 지침·고시금액 미만) 모두 적용해도 큰 문제가 없고, 홈페이지든 건물이든 경쟁입찰이 된다면 빨리 집행하라는 것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이전 계획에 맞춰 서두른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부인하면서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실질적으로 홈페이지 구축이 안 된 측면이 있어서 조금 긴급하게 한 것"이라며 "긴급입찰 사유는 기재부 고시와 명백하게 맞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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