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비난하면 친여 매체도 용서 못 해
“엿장수 마음이 노무현 정신 아니다”
본회의장서 축의금 반환 퍼포먼스
정치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피감기관과 국내 대기업 및 언론사, 일부 정치인들에게 받은 축의금을 돌려주는 정황이 담긴 메시지를보내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 제공) ⓒ서울신문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얘기다.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사랑재에서 딸의 결혼식을 가진 것 때문에 열흘이 넘도록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와중에, 그 딸이 작년에 결혼했었다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다. “최 위원장, 당신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게 하는 상황이다.
최 의원은 28일 페이스북에 뜬금없이 “노벨생리의학상과 노무현 정신, 그리고 깨시민!”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에 앞서 지난 20일 MBC의 비공개 업무 보고 중 최 의원은 자신에 대한 보도가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면서 MBC 보도본부장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그러면서 “이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언론보도다. 이를 감안하면 노벨생리화학상과 관련한 그의 페이스북 글이 이해가 된다.
날 비난하면 친여 매체도 용서 못 해
MBC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보인다. 그는 22일에도 페이스북에서 MBC를 을러댔다.
세상에 민주당 의원이자 국회 과방위원장인 최 의원이 MBC에 대해 ‘친국힘 편파 보도’라고 말하다니! 아무리 민주당에 우호적인 방송사라도 자신에 대한 비난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MBC 보도본부장은 비공개 국감에서의 ‘한 문장’ 지적조차 못 견디겠나”라는 말도 했다. 과방위원장의 말이라면 반항하기 전에 새겨듣고 반성하라는 뜻인가. 피아를 분명히 구분하라며 방송사를 윽박지르는 이 사람이 언론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국회 과방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언론인들은 전율을 금치 못할 것이다.
양자역학에다 노벨생리화학상 연구 주제까지 언급한 것은 지식의 과시일 수도 있다.
스스로 ‘문과 출신’임을 강조했던 그가 자연과학 쪽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좀 의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해박한 지식으로 상대를 압도하겠다는 결의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그의 지적 허풍이다. “상임위원장으로서 국정감사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고 말해도 될 것을 “양자역학 공부하느라 거의 밤잠을 못 잘 지경이었고, 딸 결혼식에 신경을 제대로 못 썼다”고 말해서 얻은 게 뭔가?
최 위원장 페이스북에 영문 모른 채 불려 나간 셈이 된 ‘노무현 정신’도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잖아도 감정의 앙금이 채 가시지 않았을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민주당 의원이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는가.
“엿장수 마음이 노무현 정신 아니다”
그는 아마도 “당신의 언어로 당신의 행위를 해명하라. 왜 노 전 대통령을 방패막이 삼으려 하느냐”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곽 의원은 지난달 7일 페이스북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민주당의 핵심 미디어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인용하며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특정인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민주적 결정’이라고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다음 날도 “만일 유튜브 방송이 ‘유튜브 권력자’라면 저는 그분들께 머리를 조아려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썼다.
이에 대해 최민희 의원은 바로 다음 날, 그러니까 지난달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 권력이 조선일보에 휘둘린 역사가 길다”면서 “이제는 그 대척점이 한겨레·경향이 아니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이라고 썼다. 그는 또 “구독자 223만명이 만들어낸 집단지성을 왜 외면하고 비난부터 하는가”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가만있어도 될 것을 최 의원은 김어준의 방패막이를 자임했다. 그의 ‘언론정상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이로써 분명해졌다. 철두철미 정파적 이익을 앞세우고 실력자에겐 무조건 충성한다는 전사의 결의를 강조한 것이다. 그랬던 최 의원이 ‘노무현 정신’ 운운했으니 노 전 대통령 사위인 곽 의원이 그냥 넘길 수 있었겠는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우기다 보면 무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국회 사랑재에서 예식 가능한 날짜가 10월 18일뿐이어서(그것도 예약한 사람이 취소한 덕분에) 불가피하게 그날로 정했다고 했으나,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은 11월에도 예약 가능한 날이 많았다며 자료까지 제시했다. 결혼 당사자 둘이 주도한 결혼식이었고 자신은 딸로부터 하루 전에 문자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그 자신의 ID로 사랑재 예식이 신청됐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본회의장서 축의금 반환 퍼포먼스
국정감사 기간에 결혼식 날짜를 잡은 것도, 하필이면 국회 사랑재를 선택한 것도 그 계산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국회 과방위원장이라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도덕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피했어야 했다. 게다가 당초 모바일 청첩장에 카드 결제 기능까지 있었다고 한다. 기업이나 피감기관에 청첩장을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의원실 명의로 부인했지만 하나 마나 한 말이다. 비밀 결혼식이 아닌 이상 상임위원장 딸의 결혼식이 안 알려질 리가 없다.
최 의원이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텔레그램으로 대기업 관계자, 언론사 관계자 등의 축의금 내역을 보좌진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그는 반환을 지시하는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기자들에게 들키기를 기대하면서 벌인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셈이다. 100만원 50만원 30만원 등은 통상적 축의금의 액수를 크게 넘어선다. 이러니 국회의원들은 결혼식, 저서출판회 등을 목돈 챙기기 기회로 이용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김민석 국무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사실상 이를 시인하는 답변도 했다). 화환도 100여개나 됐다고 한다. 최 의원 자신이 챙기지 못한 딸 결혼식이 이 정도로 성대했다니 관심을 갖고 혼주로서 주도했다면 온 나라가 들썩일 판이 됐겠다.
혹 잊어버렸나 해서 상기시키는데 국회의원 보좌진은 개인의 사노비(私奴婢)가 아니다. 국가공무원들로서 국회의원의 업무를 보좌하는 사람들을 개인 비서 취급하는 것은 국법과 제도를 우롱하는 처사다. 공사 구분이 불분명한 사람이 고위 공직을 차지하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 증세다.
황당한 일은 이뿐이 아니다. 최 의원 딸이 SNS상으로는 작년 8월에 이미 결혼했다. 그다음 달 같은 계정에 웨딩사진도 올라와 있었다는 언론보도다. 사실이라면 이 무슨 조화인가. 작년의 결혼은 뭐고 올해 결혼은 또 뭔지 방탄과 대변을 잘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설명 좀 해주면 좋겠다. 물론 그때 못 올렸던 식을 이번에 했을 수 있다. 그런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들어올 축의금을 감안해 굳이 식을 갖기로 했다면 세상의 조롱을 자청하는 격인데 설마 그러기야 했을까.
정치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최 의원은 물론이려니와 민주당 내의 실력자 유력자들 모두 도덕 재무장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지 묻고 싶다. 축의금‧출판기념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입만 열면 ‘국민’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정말로 국민을 염두에 두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묻는데 당신들의 ‘국민’은 누구인가? 국민 개개인을 말하는 것이라면 반대자들의 존재도 분명히 말해줘야 한다. 모두가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의 지지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으로 기본권을 보장‧보호받는 실체적 국민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악의적·정파적 선동의 대상으로 삼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국민을 자기들의 이익확보와 증대에 동원하는 것은 민주 반역 행위임을 기억해야 한다. 집합체로서의 국민을 말하는 것일 때는 집단주의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그게 집단민주주의·민중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로 안내하는 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추상적 존재로서의 국민을 두고 하는 말일 경우, 이제 국민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는 그만둬야 한다. ‘국민’을 내세우면서 국민의 비판을 잠재우려하는 자들의 수법에 이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시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권력은 순환하게 되어 있다. 밤낮이 바뀌는 것이나 같은 이치다. 한 나라 안에서 적을 만들고 그들을 모질게 대하면 언젠가 그걸 갚아야 할 상황과 맞닥뜨린다. 핍박받은 상대는 말 한마디 손짓 하나도 덜 갚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원망과 증오의 감정은 상승한다. 되로 받으면 말로 갚으려 할 게 뻔하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나라를 선의로 경영하려는 의지에 찬 사람들이라면 내면의 덕을 키워야 한다. 너무 오래된 말이지만 정치는 선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지금 위세를 떨치는 정치적 실력자들은 선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정치를 포기하시라. 그게 국민과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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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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