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 한미회담 큰 성과로 앞세운 李대통령
'미북 대화 재시동'에 방점…한미훈련도 고민
동북아 정세속 韓외교 취해야할 '균형점' 제시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롭게 선 민주주의, 그 1년'외신 초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내년 외교·안보의 핵심 축을 '비핵화는 절제, 평화협정은 가속'으로 조정하는 기류가 뚜렷해졌다.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한 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밝힌 대북 메시지는 북핵 문제는 감정적 대응을 피하고 구조적 안정 장치부터 복원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이 잡힌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올해 두 차례의 한미 정상회담 성과로 한국이 핵추진잠수함(핵잠)을 확보하게 된 것에 대해 이 대통령은 전략적 유연성과 자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결정적 진전이라고 평가하며 내년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축을 사실상 제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3일 '새롭게 선 민주주의, 그 1년'이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신 기자회견에서 "지난 1년이 무너진 민주주의와 국격을 회복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성장의 새로운 표준을 선보일 도약의 시간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정상이 합의한 우리나라의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재처리 또는 우라늄 농축을 한국이 자체 생산하고, 5대5로 동업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 성과로 핵(원자력)추진잠수함 확보를 꼽으며 "핵추진잠수함을 군사 용도로 쓰이지만 핵무기는 아니기 때문에 역시 비확산 논란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우라늄 농축 권한 등을 갖게 될 경우 일각의 핵확산 우려에 대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 역시 비확산 원칙과는 무관하다"며 "전 세계에 우리가 핵무장을 할 필요도, 의사도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우라늄 등 핵연료를 어디서 주로 수입하느냐 물어 러시아에서 30% 수입한다고 하자 '자체 생산하면 많이 남겠네'라고 했다며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에게 그(동업) 역할을 맡겼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였다"며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편하게 얘기된 것이다. 러트닉이 맡아서 한번 해보시라고 얘기했다"며 "보안 (사항)이 아닌 것 같아서 말씀드린다. 얘기 잘됐다"고 거듭 밝혔다.
농축·재처리 시설이 우리나라 내에 설치·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농축·재처리 문제는 우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 장소는 큰 문제는 아닐 것 같다"며 "2차적인 문제 같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의 자율적 권한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며 "어디서 할 것이냐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 같은데 가급적이면 국내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핵추진잠수함의 건조 장소 문제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께서는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하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가진 관점으로는 거기에서 생산하는 게 매우 어렵다"며 "(미국의) 건조 역량에도 한계가 있어 현실적 측면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핵잠 설계·건조 주도권을 국내로 가져오려는 의지"라며 "내년 중 구체적 로드맵 초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언급은 최소화했다. 그동안 한미 정상 간 공동성명에서도 반복돼 온 '북한 비핵화' 표현을 피하고 한국도 핵확산금지에 전적 공감한다는 우회적 표현을 사용했다. 이같은 발언은 북한이 '비핵화'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직접적 비핵화 압박을 자제함으로써 향후 대화 여지를 확보하려는 신중한 조율"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과의 긴장 완화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북한에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라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선 "(북한에)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자칫 소위 '종북몰이'나 정치적 이념대결의 소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들어서 차마 말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이 계엄 선포의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어떻게 내 마음을 속을 들여다보고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속을 들켰나 싶은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냥 이 정도로 (답변을) 끝내겠다"며 대답을 길게 이어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남측 대화 제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북한의 체제 보장을 담보할 수 있는 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게 북한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내년 우리의 대북정책은 '중재자'보다 '촉진자'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또 그는 미북 대화 여건 조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한미 연합훈련 조정 논의도 가능하다고 말해, 상황에 따라 유연한 조정 카드가 테이블 위에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시기의 '훈련 확대·강경 억제'와는 온도 차가 있는 접근이다.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드러냈다. 강대국 간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 외교가 취해야 할 '균형점'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최근 불거진 일중 간 갈등에 대해서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속담이 있다. 한쪽 편을 든다면 갈등이 더 격해질 것"이라며 "중재나 조정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미 공조를 유지하되, 주변 강대국과의 갈등 구조에 휘말리지 않는 '다층적 외교'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한편 외교·안보 라인에서는 내년부터 북핵 문제의 직접 해결보다는 '분쟁 관리'와 '구조 안정'에 정책의 무게 중심을 두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비핵화는 장기전이므로 무리한 접근보다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실질적 해법에 집중할 것"이라며 "당장 협상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현실 인식이 정부 내에 공유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새 외교·안보 전략은 ‘대결의 볼륨은 낮추고, 안정의 볼륨은 높이는’ 방향으로 정리된다. 12·3 사태 1년을 기점으로, 격화된 한반도 긴장을 어떻게 완화하고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가동할 것인지가 내년 정부 외교의 최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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