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난다”…마침표조차 예술이 된 세 거장의 ‘라스트 콘서트’ [D:가요 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1.07 08:35  수정 2026.01.07 08:36

한국 대중음악계의 상징적인 인물 세 명이 차례로 은퇴를 선언했다. 2024년 초 나훈아의 은퇴 선언으로 시작된 거장들의 퇴장은 2025년 이미자를 거쳐, 2026년 1월 임재범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은퇴는 단순히 활동의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점에서 스스로 마이크를 내려놓는 ‘예고된 이별’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품격을 지키고 대중음악사에 새로운 은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왼쪽부터) 나훈아, 이미자, 임재범 ⓒ예아라 예소리, 데일리안DB

거장들의 은퇴 물꼬를 튼 것은 ‘가황’ 나훈아였다. 그는 2024년 2월, ‘고마웠습니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통해 전격 은퇴를 발표했다. 58년의 가수 인생을 뒤로한 채 그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를 따르려 한다”고 밝혔다.


나훈아는 2025년 1월 12일 서울 공연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무대 인생을 마쳤다. 그는 마지막 투어 입장문에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면서도 콘서트 내내 “후회 없이 떠난다. 여러분의 박수 소리가 귓가에 맴돌 때,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것이 내가 나 자신과 팬들에게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은퇴는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다. 1년여에 걸친 전국 투어는 팬들에게 그와의 추억을 정리할 시간이었고, 나훈아는 매 공연 최상의 가창력을 선보이며 ‘전설’의 이미지를 스스로 공고히 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역시 2025년 3월, 데뷔 66주년을 기해 무대를 떠났다. 그는 평생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가장 좋을 때 마지막 인사를 전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왔다.


지난해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을 끝으로 공식 활동을 종료하면서 그는 “은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마지막’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많은 분이 저를 ‘한국의 전통가요의 맥을 이어간 가수’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미자의 퇴장은 한국 전통 가요의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한다. 그는 장기 공연을 통해 후배 가수들과 무대를 공유하며 자신의 음악적 자산을 자연스럽게 전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 4일, 임재범이 은퇴 행렬에 합류했다.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그는 JTBC ‘뉴스룸’ 인터뷰와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은퇴를 공식화했다. 6일 발표되는 신곡 ‘라이프 이즈 어 드라마’(Life is a Drama)는 그의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메시지다.


임재범은 은퇴 선언문에서 예술가로서의 결벽에 가까운 자존심을 드러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노래할 수 있는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내려오는 것이 관객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아름다운 날들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이 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고 감사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재범은 현재 진행 중인 전국 투어 ‘나는 임재범이다’를 끝으로 모든 공식 활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특히 5월까지 이어질 앙코르 공연은 그와 팬들이 나누는 마지막 교감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세 거장의 공통점은 ‘비자발적 퇴장’이 아닌 ‘자발적 완결’을 택했다는 점이다. 과거 대중음악계에서 스타들의 은퇴가 갑작스러운 잠적이나 건강 악화, 인기 하락에 따른 도태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은 장기 투어, 혹은 콘서트라는 형식을 통해 팬들에게 ‘충분한 애도’와 ‘작별의 시간’을 제공했다. 이는 단순히 가수가 사라지는 과정을 넘어, 그들의 음악적 성취를 신화의 영역으로 밀어 올리는 예술적 마침표다. 대중은 그들의 쇠락을 목격하는 대신, 가장 빛나는 순간의 뒷모습을 기억에 새기게 된다.


이러한 은퇴 방식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질적 성장을 시사한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커리어를 스스로 통제하고 매듭짓는 품격을 보여줌으로써, ‘국민 가수’ 시대의 마지막 페이지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다. 세 거장이 남긴 음악적 자산은 이제 무대 위가 아닌, 대중의 일상과 후배들의 음악 속에 ‘신화’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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