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19세기 영국의 국익중심 실용외교
20세기 영국의 외교 정책 전환
한국, ‘실용외교’할 실력 되는가?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MOU 체결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영원한 규칙도 없다, 국제질서는 냉혹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8일 청와대 수석 회의를 이렇게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국익중심 실용외교’에 달려 있다.” 옳은 진단이요 옳은 처방이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외무장관 파머스턴경의 1848년 하원 연설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말이다. 파머스턴은 전후 3차례에 걸쳐 15년 동안 외무장관을 지냈고, 두 차례 총리를 지내며 영국의 전성기를 구가한 정치인이다. 영국 외교정책이 원칙 없이 너무 변덕스럽다는 비판론이 제기되자 파머스턴경은 장장 5시간에 걸친 연설로 영국의 외교 정책 방향을 정리했다. 참고로 영국 의회는 우리 국회와는 달리 원고를 읽을 수 없다. 간단한 메모나 통계 정도는 참고할 수 있지만, 머리 처박고 줄줄 읽을 수는 없다. 원고 없는 즉흥 연설, 그렇지 않으면 바로 퇴장이다. 그런데 5시간 연설이라니, 대단한 명연설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영원한 동맹이란 없으며,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무궁하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이재명 대통령의 말과 거의 판박이다. 귀국하는 비행기내에서 수행기자들과 환담하면서, “검찰 운운”할 때만 해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세계 양강과의 3박 4일 정상회담을 비교적 무난하게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니 얼마나 할 말이 많고 자랑할 일이 많았겠는가? 그런 자리에서 굳이 검찰 이야기를 꺼낸 것 보고는 정말 걱정이 태산이었다. ‘우리 대통령 머릿속에는 국내 정쟁밖에 없구나’ 그렇게 걱정하던 우리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외교를 언급하고 외교의 중요성을 눈뜬 자체로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19세기 영국의 국익중심 실용외교
19세기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 치세로, ‘해가 지지 않는 세계 최강대국’이었다. 문자 그대로 대영제국(大英帝國, Great Britain)이었다. 세계 최강의 군대로 제해권을 장악한 군사력 1강에, 세계 최고의 금융과 최대의 산업생산력을 갖춘 경제력 1강, 거기에 학문과 기술력 1강이었다. 자국 영토와 인구보다 몇 배 몇 십 배 큰 인도, 동서 파키스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이집트, 남아공 모두 영국 식민지였으니 영토 1강에 인구 1강이었다. 지금의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을 합한 정도의 막강한 대국이었다. 지브롤터 해협과 수에즈 해협을 틀어쥐고 유럽 국가들의 목젖을 꽉 잡았으니, 영국에 의한 평화,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의 전성시대였다.
그 영국은 나폴레옹 시절에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과 함께 프랑스를 견제했다. 이후 러시아가 득세하자 프랑스, 튀르키예와 손잡고 러시아와 크림 전쟁을 벌이며 남진을 봉쇄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독일이 통일하고 세력이 커지자 프랑스, 러시아와 손잡고 프로이센을 견제한다. 영국은 19세기 내내 철저한 고립외교로 이익을 극대화했다. 동맹 없이 2인자의 등장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외교 정책으로 독점적인 이익을 누렸다.
20세기 영국의 외교 정책 전환
영국의 외교 정책은 20세기 접어들면서 조금씩 바뀐다. 1902년 영일 동맹을 시작으로, 앙숙 프랑스, 러시아와 협상을 맺는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동맹과 상대국은, 일본만 바뀌었을 뿐, 대체로 비슷했다. 그리고 수에즈 운하 사건이 터졌다.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해국의 해상 운송에 치명적인 손실이 예상되면서, 영국은 프랑스,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집트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영국은 처절한 좌절을 맛봤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편을 들면 아랍 국가들이 친 소련으로 기울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미국은 영국에 대한 경제원조를 중단하고, 영국의 파운드화를 대량 매도해 영국 경제를 파탄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혼자서는 경제도 전쟁도 꾸려나갈 수 없었다. 서방질서의 주재자는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그래도 영국은 여전히 강대국이었다. 중국은 아직 국제사회에 등장하지도 못했다. 독일이나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영국과 발언권이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한 마디에 찍 소리 못했다. 결국 영국은 ‘대영제국의 허영심’을 완전히 버렸다. 절대 1강일 때의 고립주의, ‘국익중심 실용외교’를 포기했다. 대신 철저하게 2인자로 처신했다. 영미 동맹을 최우선으로, 자유민주주의 동맹을 원칙으로 하는 가치 외교로 대전환했다.
한국, ‘실용외교’할 실력 되는가?
부자 망해도 3대 간다고, 여전히 영국은 강대국이다. 핵보유국이고, 핵추진 잠수함과 항공모함도 보유하고 있고, 전투기를 개발해 생산한지도 오래 됐다. 여전히 런던은 세계금융의 중심지며, 파운드화는 기축 통화다. 노벨상 수상자 숫자도 미국의 1/4 수준이지만, 여전히 130명 수준으로 세계 2위다. 최근 20년 동안의 노벨상 수상자가 30명가량이다. 세계의 지도자와 유능한 관료, 학자, 기업인들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고 돌아간다. 4만 명 옥스브리지 학생 가운데 외국인이 학부는 1/4, 대학원은 거의 1/2이다. 이들은 자국 내 최고위층으로서, 친영 여론을 주도한다. 그런 막강한 인프라를 갖고도 영국은 미국과의 동맹 외교, 가치 외교로 일관한다.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의 국력이 힘차게 뻗어간다는데 이론은 없다. 반도체 세계 1, 2위,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몇 가지 냉정하게 자문해보자. 먼저 군사력. 50만 군대, 머리 숫자는 많지만, 핵이 있나, 핵추진 잠수함이 있나, 항공모함이 있나? 이제 겨우 전투기 개발해 생산 시작한 수준 아닌가? 다음 경제 권력. 원화가 세계 기축통화인가? 원화로 석유 대금 결제할 수 있나? 대한민국 금융기관 가운데 세계 10위 이내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나아가 우리가 영국 정도의 지한파 인맥을 세계 각국에 보유하고 있는가? 노벨상 수상자가 수십 명 되나?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Yes 할 수 없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국익중심 실용외교’는 위험천만한 외교노선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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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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