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중국산 공습이 던진 숙제 [기자수첩-ICT]

이주은 기자 (jnjes6@dailian.co.kr)

입력 2026.01.27 07:00  수정 2026.01.27 08:01

中 '명일방주: 엔드필드'와 韓 '드래곤소드'

엇갈린 기대감…中 게임에 신뢰자본 쌓여

'원신·명조·오공' 등 흥행 사례 다수 축적

韓 게임, 과거 성공 방정식 의존 탈피해야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게임업계에서 중국 게임의 약진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중국산 게임들이 해외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 온지 이미 여러 해다. 천문학적 제작비를 기반으로 고도화된 기술력과 공격적인 글로벌 진출 전략은 업계 안팎에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요즘 들어 이 흐름이 다시 마음에 걸리는 건, 중국 게임업계의 성과나 물량 공세보다 더 위협적인 요인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산 게임을 바라보는 게이머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게 크게 체감되는 것이다.


최근 출시된 중국 게임 '명일방주: 엔드필드'와 국내 게임 '드래곤소드'를 둘러싼 반응은 달라진 게이머들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작품은 모두 서브컬처 스타일의 오픈월드 RPG라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출발선의 분위기는 달랐다. 마치 게임을 까보기 전부터 결론이라도 난듯 명일방주: 엔드필드에는 '잘 만들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된 반면, 드래곤소드에는 '또 비슷한 게임 아니냐'는 선입견이 따라붙었다.


여기에는 기존 중국산 오픈월드 RPG들이 서사 설계와 연출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온 경험이 누적된 영향이 컸다. 드래곤소드는 완성도가 뒤쳐질 것이라는 평가보다 '예상 가능한 범위에 머무를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시선 변화의 출발점으로는 2020년 출시된 중국 게임사 호요버스의 '원신'이 거론된다. 오픈월드 RPG의 지평을 한 단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 게임은 '중국산'이라는 전제를 깨며 국적 프레임을 무력화시켰다. 업계에서는 이를 중국 게임에 대한 '신뢰 자본'이 처음으로 형성된 사례로 평가한다.


이후 '명일방주', '명조: 위더링 웨이브', '검은 신화: 오공' 등 성공 사례가 이어지며 중국 게임의 개발 역량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개별 작품의 흥행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발 대작들은 기본적으로 잘 만들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국내 게임사들의 글로벌 성과를 돌아보면 대비는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 몇 년간 해외 시장에서 유의미한 반향을 일으킨 작품으로는 'P의 거짓', '아크 레이더스', '스텔라 블레이드' 정도가 전부다.


이들 모두 PC·콘솔 기반 게임으로, 장르 역시 소울라이크·익스트랙션 슈터·액션 어드벤처 등 비교적 실험성이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국내 게임사들이 강점을 가져온 RPG 장르에서는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수익 모델과 유사한 게임 설계가 반복되며 이용자들의 기대가 점차 낮아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물론, 지난 수 년간 국내 게임사들이 중국 경쟁사들과 동등한 환경에서 경쟁했다고 볼 수는 없다. 중국 게임 산업은 국가 차원의 정책 기조 아래 중앙과 지방정부가 역할을 분담하며, 장기적 도전과 축적이 가능한 환경을 구축해왔다. 게임을 자국 문화 확산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부 전략 속에서 실패와 재도전이 반복될 수 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개발력 강화로 이어졌다.


반면 국내 게임 산업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여부와 같이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소모적 논쟁이 반복되며 인재 육성이나 세제 지원 등의 이슈는 뒷전으로 밀려왔다. 그 결과 국내 게임사 중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내는 곳은 넥슨, 크래프톤 외에 더 찾기 힘들다. 빈약한 자본력으로 인해 업황 둔화 속에서도 꾸준히 투자를 이어갈 여력을 갖춘 곳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환경적 한계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과 한국 게임 산업 간 자본력 격차는 단기간에 좁히기 어렵다. 제작비 규모, 투입 인력, 내수 시장 크기에서 정면 승부를 택하는 전략은 현실적이지 않다.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겠다는 접근은 오히려 한국 게임 산업의 한계를 더 선명하게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정책적 변화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국내 게임 생태계의 자생력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과거 20~30대 창업가들이 한 프로젝트를 발판 삼아 중견·대형사로 성장하던 경로를 최근 들어 찾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으로 이어졌던 창업 서사는 점차 과거형이 되고 있다.


검증된 흥행 공식에 대한 의존이 굳어질수록 새로운 서사 실험이나 과감한 기획은 설 자리를 잃는다. 같은 장르, 비슷한 외형의 게임 앞에서 국산 게임이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으로 인식되는 순간, 경쟁의 출발선은 이미 뒤로 밀린다.


왜 게이머들이 중국 게임에는 기대를 먼저 보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수년간 검증된 흥행 공식에 안주하느라, 신선한 서사와 기획을 축적하고 게임사 스스로 작은 성공이 반복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낼 능력이 퇴화한 건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의 육성 정책 고도화는 ‘외부 요인’일 뿐이다. 산업 내부에서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와 다양한 시도가 함께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획일화된 성공 공식만으로는 다음 10년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대가 사라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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