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비축유 100일 버티기 총력 [중동발 유(油)의사항①]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3.03 08:50  수정 2026.03.03 08:52

해협 통행량 70% 급감…세계 에너지 공급망 마비

중동발 물류 대란 현실화…국제 유가 150달러 전망

희망봉 우회 항로 선택…운송비 및 보험료 폭등 불가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유조선들이 밀집해 정체된 상황을 담았다. 해협 통행이 급감하면서 원유 수송이 사실상 멈춰 서고,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전반에 긴장감이 확산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챗지피티

세계 에너지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De Facto Closure) 국면에 접어들면서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에 전례 없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 1일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 ‘통행 불허’를 선언하고 실제 민간 유조선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면서, 머스크(Maersk)와 일본 3대 해운사 등 글로벌 선사들이 잇따라 운항 중단을 발표했다.


평시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이 좁은 해협의 통행량이 하루 만에 70% 이상 급감하며, 원유 도입의 특정 지역 편중에 따른 우리 경제의 근본적 취약성이 최악의 형태로 노출됐다.


중동 의존도 72%…에너지 생명선 ‘호르무즈의 침묵’


대한민국 경제의 주된 동력이 단 하나의 좁은 해협에 저당 잡혀 있다는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됐다. 관세청과 한국석유공사(Petronet)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원유 중 중동 지역 의존도는 72%에 달한다.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온다.


이란의 봉쇄 선언 이후 페르시아만 인근에는 한국행 원유를 실은 유조선을 포함해 약 150여 척의 선박이 발이 묶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협 폭이 33km에 불과한 지정학적 특성상 이란의 물리적 차단은 단순한 물류 지연을 넘어 공급 자체를 끊어버리는 ‘물량 쇼크’로 이어지고 있다.


정유업계와 해운업계는 즉각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유조선들이 호르무즈를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항로를 선택하면서 운송 기간이 평시 대비 15일 이상 늘어났다.


해상 보험료와 용선료는 하루 사이 50% 이상 폭증했다.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82달러를 돌파하며 수직 상승 중인 가운데,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국제 유가가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차가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오일 쇼크의 악몽이 2026년 한반도 실물 경제를 다시 정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흐름을 도식화했다. 중동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시장의 전망을 반영한 인포그래픽. ⓒ챗지피티
정부 비축유 1억 배럴 방출 검토…3단계 컨틴전시 플랜 가동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즉각적인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지난 1일 긴급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봉쇄 상황을 기정사실화한 최고 수준의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한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는 여수와 거제 등 9개 비축기지에 약 9600만 배럴(약 100일분)의 전략비축유를 확보한 상태다. 민간 재고까지 합치면 약 2억 배럴 수준이다. 정부는 수급 차질이 가시화되는 즉시 비축유 방출과 함께 민간 재고 스와프(Swap)를 통해 시장에 물량을 공급할 방침이다.


정부의 위기 대응 매뉴얼은 이미 3단계 ‘심각’ 수준에 근접했다. 1단계 모니터링과 2단계 비축유 일부 방출을 넘어,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산업용 에너지 배급제와 공공요금 강제 억제 등 초강수 대책이 포함된 3단계 조치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비축유는 단기 처방일 뿐, 호르무즈 리스크가 상수가 된 상황에서 미주나 북유럽 등 대체 수입선으로의 원유 도입을 강제하거나 물류비를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조기 시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 지역에서 균열이 발생한 글로벌 공급망을 형상화했다. 해협 봉쇄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한국이 LNG 도입 확대와 재생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등 대체 경로 구축에 나서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미나이
공급망 회복 탄력성과 국가자원안보법 실효성 시험대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번 호르무즈 봉쇄 사태가 한국 에너지 안보 체질을 바꾸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단순히 물량을 쌓아두는 ‘비축’의 개념에서 벗어나 공급망 전체의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2월 공포된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가 이번 사태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연구소(IFANS) 관계자는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호르무즈 해협은 국가 생명선과 같다”며 “단기 유가 대응을 넘어 특정 지역 편중을 탈피한 입체적인 에너지 포트폴리오 구축과 수급선 다변화가 국가적 최우선 과제”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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