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전문점 ‘250m’만 넘기면 출점 가능…‘제로섬 상권’의 함정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6.03.04 06:47  수정 2026.03.04 06:47

저가 브랜드 속도전…상권은 과밀 국면

영세 점주 체력 고갈, 1위 ‘경쟁 심화’ 원인

규제 논의 재점화…“해법은 본사 책임 경영”

서울 시내 한 상가에 입점한 저가 커피 브랜드 매장들의 모습.ⓒ뉴시스

최근 몇 년 새 저가 커피 브랜드가 급증하면서 카페 시장이 과밀 임계점에 근접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상권은 커지지 않았는데 점포만 늘어나 같은 간판끼리 매출을 나눠 갖는 ‘제로섬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매출 잠식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권 붕괴 우려가 커지면서 규제 필요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카페 업종을 더 이상 ‘자율 경쟁 가능 업종’으로 보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커피전문점은 현재 자율 규약 말고는 정부가 강제로 출점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 2012년 ‘모범 거래 기준’을 설정해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대해 500m 출점 제한을 도입했다가 “기업 활동에 대한 과도한 제약”이라는 비판이 일면서 2년 만에 폐지했다.


대신 가맹사업법상 영업지역 침해 금지 규정과 각 가맹본부가 계약서에 명시한 ‘영업지역’, ‘영업보호 거리’ 조항에 따라 출점 기준이 정해진다. 통상 200~250m 안팎이 보호 거리로 설정되는데, 이 선만 넘기면 동일 브랜드 매장 추가 출점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저가커피의 대표 주자 메가커피는 2015년 첫 출점 이후 9년 만에 3000호점을 넘어선데 이어, 2년 뒤인 올해는 4000호점 달성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 컴포즈커피 역시 올해 3000호점을 돌파했으며, 빽다방도 1800호점대 매장을 운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를 두고 단순한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속도전 출점’이 본격화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상권 확장 없이 점포 수만 늘어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신규 매장이 기존 가맹점 매출을 잠식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서울 시내의 더벤티 매장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이 과정에서 중·프리미엄 브랜드의 설 자리가 급격히 줄고 있다. 저가커피는 가격 경쟁력으로, 스타벅스 등 상위 브랜드는 브랜드 충성도와 공간 경험으로 각각 차별화에 성공한 반면, 중간 가격대 브랜드는 소비자 선택지에서 밀려나는 구조가 됐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달리 개인 카페나 소규모 가맹점은 가격·마케팅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동일 상권에 저가 브랜드가 잇따라 들어서면 매출은 줄어들지만, 임대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는 그대로 남는다.


실제로 외식업계 경영 애로 조사에서도 이러한 구조적 압박이 드러난다. 서울시 소상공인의 체감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월간 지표에 따르면 경영 애로 1순위로 ‘경쟁 심화’가 51.2%를 차지해 가장 높았고, ‘원재료비 상승’(23.5%), ‘대출상환·이자부담’(7.0%)이 뒤를 이었다.


비용 부담보다도 과잉 경쟁으로 인한 매출 감소를 더 큰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상권 전체 소비 규모가 정체된 상황에서 점포 수만 늘어나는 구조가 영세 점주의 체력을 먼저 소진시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더욱이 매출이 줄어들어도 원두 가격과 우유 등 원재료비는 상승 압력을 받고 있고, 금리 인상 여파로 대출 상환 부담도 이어지고 있다. 경쟁이 심화된 상황에서 가격을 인상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마진은 줄어들고, 버티기 전략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상권이 성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출점만 늘어나면 결국 서로의 매출을 깎아 먹는 제로섬 경쟁이 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자본력이 약한 영세 점주일수록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출점 거리 수치를 조정하는 방식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밀 상권에 대한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기존 점포 매출 영향 평가를 바탕으로 한 본사의 자율적 출점 조절이 병행되지 않으면 구조적 문제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정치권에서도 제도 보완 논의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카페 업종을 더 이상 ‘자율 경쟁 가능 업종’으로 보기 어렵다며, 외식·카페 업종에 대한 적합업종 지정이나 출점 기준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일률적인 거리 규제 강화가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신중론도 함께 나온다. 상권 특성이 지역마다 다른 만큼 획일적 기준보다는 데이터에 기반한 본사의 책임 있는 출점 관리와 기존 가맹점 보호 장치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과밀 상권에 대한 우려는 공감하지만, 일률적인 거리 규제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며 “유동 인구와 소비 패턴이 지역마다 다른 만큼 단순히 몇 미터로 선을 긋는 방식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본사가 출점 단계에서 기존 점포 매출에 미칠 영향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근접 출점에 대한 내부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단기적인 점포 수 확대보다 장기적인 가맹점 수익 구조 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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