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소송 안 한다' 합의서 썼어도 퇴직금 청구권 유효"

진현우 기자 (hwjin@dailian.co.kr)

입력 2026.03.11 17:25  수정 2026.03.11 17:25

1심, 미지급 퇴직금 530여만원 등 지급 명령

회사 측 항소…2심 재판부 받아들이지 않아

법률구조공단 "퇴직금 청구권 제한 관행에 제동 걸어"

ⓒ대한법률구조공단

"향후 고용·근로관계에 관한 어떠한 민사소송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퇴직금 정산 합의서에 서명했더라도 근로자가 해당 조항의 의미와 법적 효과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면 미지급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1일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 제3-3민사부(윤지숙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A씨가 B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B법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B법인이 A씨에게 미지급 퇴직금 약 53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A씨는 B법인에서 약 3년간 근무한 뒤 퇴직했으나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이후 A씨는 B법인이 작성한 퇴직금 정산 합의서에 서명했는데 "향후 고용·근로관계에 관한 어떠한 민사소송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A씨는 해당 조항의 의미와 법적 효과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이후 A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간이대지급금 700만원을 지급받았지만, 이는 전체 퇴직금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A씨는 나머지 퇴직금을 청구하기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를 신청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퇴직 후 작성된 합의서상의 '부제소합의' 조항이 유효한지, 그리고 해당 조항에 따라 나머지 퇴직금 청구권이 포기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부제소합의란 민·형사상 분쟁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들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계약을 말한다.


소송 과정에서 B법인은 이 사건 소송이 부제소합의를 위반하여 제기된 것으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설령 소송 제기가 적법하더라도 합의서 조항에 따라 A씨가 퇴직금 청구권을 포기했으므로 청구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A씨를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측은 "해당 합의 조항은 A씨가 처분할 수 있는 특정된 법률관계에 관한 명확한 합의로 보기 어렵고 합의서 작성 당시 간이대지급금만으로 퇴직금 전액을 충당되지 못할 것임을 A씨가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맞섰다.


이와 함께 "해당 조항은 A씨가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포괄적·추상적 합의에 해당한다"며 "합의서에 포기 대상과 범위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이를 근거로 나머지 퇴직금 청구권까지 명확히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측 주장을 받아들여 간이대지금금을 제외한 나머지 530여만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B법인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 역시 1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보아 항소를 기각했다.


이번 소송을 진행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심희정 변호사는 "사용자가 형식적 합의서를 통해 사실상 잔여 임금 및 퇴직금 청구권을 제한하려는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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