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도 유비도 아닌 '적토'의 생…말의 시선으로 다시 쓴 삼국지 [D:헬로스테이지]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3.23 11:34  수정 2026.03.23 11:40

대중가요처럼 귀에 들어오는 넘버가 강점

중국의 위·촉·오 시대는 소설 '삼국지'로 워낙 많이 다뤄진 서사다. 조조, 유비, 여포 같은 인물들의 이름은 익숙하고, 그들의 전쟁과 야망 역시 수없이 변주됐다. 그런데 창작 뮤지컬 '적토'는 이 익숙한 시대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다. 영웅이 아니라, 그들이 타고 전장을 누볐던 말의 생을 중심에 놓는다. 삼국지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좀처럼 조명하지 않았던 존재를 전면에 세운다는 점에서, '적토'의 시선은 그 자체로 신선하다.


토적토를 연기하는 신은총. ⓒ죽도록달린다

관객이 가장 관심 갖는 장면은 배우가 말을 연기한다는 설정이 과연 무대 위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구현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자칫 어색하거나 과장돼 보일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무대가 시작되면 이런 우려는 빠르게 옅어진다. 토적토 역의 신은총은 말의 움직임과 생리를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논밭에서 일하던 말이 전쟁에 뛰어들고 살아남으며 성장해가는 생의 궤적을 설득력 있게 쌓아 올린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배경에 두고도 작품이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소재의 특성상 자칫 인간 영웅들의 서사로 주객이 전도되기 쉽지만, '적토'는 끝까지 말의 삶과 시선에 집중한다. 전쟁은 배경으로 존재할 뿐, 그 안에서 토적토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버티고 성장하는 지가 극의 핵심이 된다.


그 중심에는 토적토의 성장 서사가 있다. 그는 진짜 적토라 불리던 존재와 비교당하며, 같은 붉은 말이지만 너는 적토가 아니라 토끼 같다는 놀림을 받으며 자라왔다. 이렇듯 처음에는 왜소하고 부족한 존재로 취급받던 말이, 전장을 거치며 자기만의 생과 이름을 획득해가는 과정이 그려내는데 인간의 성장담이었다면 익숙했을 흐름이, 말의 시선과 삶으로 옮겨지며 오히려 더 새롭게 다가온다.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적토'는 비교적 친절한 작품이다. 넘버의 결이 대중가요에 가까워 귀에 쉽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뮤지컬 특유의 선 굵은 감정선과 벅찬 고음은 유지하면서도, 보다 직관적인 멜로디와 리듬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비교적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고 작품의 밀도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넘버가 서사와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안무와 움직임 역시 흥미롭다. 말의 생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배우의 몸이 곧 서사의 일부가 되는데, 단순히 동물의 외형을 묘사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장의 역동성과 본능, 긴장을 몸의 리듬으로 표현한다. 힘 있고 직선적인 동작은 때때로 케이팝(K-POP) 퍼포먼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리듬감 있게 구성돼 있어 보는 재미를 준다.


커튼콜에서 드러난 객석의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비교적 뒤쪽 좌석에서도 신은총을 중심으로 카메라를 드는 관객들이 적지 않아, 토적토라는 역할과 배우를 향한 관심이 적지 않다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공연이 끝난 뒤까지 배우의 존재감이 객석에 남아 있다는 건, 그만큼 무대 위 설득력이 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적토'는 3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SH아트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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