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자 “의무화 필요”…정치권도 도입 시기 앞당기기
제조업 66.7% “유예 필요”…공급망 데이터 확보 난관
금융위, 일정만 제시…측정 기준·가이드라인은 아직
영국 런던정경대 산하 연구기관 TPI(Global Climate Transition Centre)는 금융위원회의 스코프3 유예 방안을 사실상 ‘속도 조절 중심 설계’로 보고 장기적으로는 의무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Global Climate Transition Centre 홈페이지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 도입 일정을 제시했지만, 공급망 온실가스 배출(Scope3) 공시를 둘러싼 구체적인 측정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면서 정책 공백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기준과 정치권은 도입 속도를 앞당기고 있는 반면, 기업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유예를 요구하면서 이해관계 간 충돌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ESG 공시 제도화 방안을 통해 2028년부터 자산 30조원 이상 상장사를 시작으로 공시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스코프3는 3년 유예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산업계와 환경단체 의견을 수렴 중이며, 4월 중 공시 로드맵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다만 측정 방식이나 산업별 적용 기준, 데이터 수집 체계 등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공시 시점만 제시된 채 실행 기준은 공백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투자자 기준은 보다 강경하다.
영국 런던정경대 산하 연구기관 TPI(Global Climate Transition Centre)는 금융위의 스코프3 유예 방안에 대해 기업 부담을 고려한 ‘속도 조절 중심 설계’로 평가하면서, 투자자 기준에서는 공시 정보의 완결성을 떨어뜨리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코프3는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아닌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을 의미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전체 탄소 배출 구조와 전환 리스크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로, 이를 제외할 경우 공시 정보의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도입 시기 단축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스코프3 유예기간을 기존 3년에서 2년 또는 1년 수준으로 줄여 시행 시점을 앞당기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위가 기업 부담을 고려해 도입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을 제시한 반면, 정치권은 국제 기준 정합성을 앞세워 시행 시점 단축을 추진하면서 정부와 여당 간 정책 방향이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다.
반면 기업들은 현실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스코프3 공시에 대해 전체 응답 기업의 51.9%가 2033년 이후에야 대응이 가능하다고 밝혔고, 제조업의 경우 66.7%가 유예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협력사의 측정 역량 부족과 데이터 신뢰성 문제, 영업비밀 유출 우려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스코프3 공시는 개별 기업이 아닌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는 정책 설계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구조는 글로벌 투자자 기준에도 못 미치고, 기업 입장에서도 실행이 어려운 중간 단계”라며 “결과적으로 누구도 만족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코프3 공시는 맞는 방향이지만 협력사까지 포함한 데이터를 수집·검증하려면 인프라와 예산이 전제돼야 한다”며 “기준 없이 시기만 앞당기면 형식적인 수치 맞추기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부처 간 역할 분산 역시 문제로 거론된다.
금융위원회가 공시 제도를 총괄하고 있지만 실제 배출량 데이터와 산업별 기준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과 얽혀 있어 컨트롤타워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부처 간 협의 구조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시 일정만 먼저 제시되면서 정책 실행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코프3 공시는 단순히 공시 하나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전체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고 표준화할지의 문제”라며 “지금은 도입 시기를 당기는 논의보다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고 공시할지에 대한 설계가 먼저 필요한 단계”라고 제언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