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유혹에 또 뛰쳐나간 민주당 '집권? 그게 뭐야?"
<칼럼>촛불을 민심으로 착각 대선패배하고도 망각
수권정당으로서의 희망 있다면 국회로 돌아와야
민주당이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천막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동행명령과 고발을 요구했는데, 새누리당이 이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장외로 나왔다는 것이다.
서울광장에 민주당이 설치한 천막과 각종 시설물, 그리고 여기서 벌인 각종 집회는 모두 서울시 조례 위반이다.
최소한 5일 전에 서울광장 사용 신고를 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사전 신고 없이 천막을 치고 집회를 열었다. 대한민국의 제1 야당이자 공당(公黨)이 이처럼 무책임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다.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공방으로 한 달 이상 허비하던 정치권이 여야 대표회담을 통해 대화국면으로 전환하자고 했던 게 불과 지난 주말이었다. 경제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민생법안의 처리는 안중에도 없이 정쟁(政爭)만을 일삼다가 급기야 장외투쟁까지 벌이고 있으니 국민들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장외투쟁의 장소를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한 것에 더욱 참담함을 느낀다. 시청 앞 서울광장은 지난 6월 27일 이후 주말 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자들이 ‘국가정보원 시국회의’ 라는 단체를 구성하여 집회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민주당이 ‘국정조사 철저 실시와 국정원 개혁’을 장외투쟁의 명분으로 삼고는 있지만 민주당의 지금 이 같은 장외투쟁은 대선불복을 주장하는 전문시위꾼들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은근히 촛불이 다시 켜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실제로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장외투쟁을 선언한 기자회견문에 ‘수천 수만의 촛불’이라 쓰고 ‘수천 수만의 국민’으로 읽었다. 민주당의 속내가 짐작 가는 대목이다.
당장 첫날 저녁부터 모두가 우려했던 폭력적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촛불단체 회원들이 취재기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등 난동을 피우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민주당이 설치한 간이 천막 기자실에 급습하여 특정 방송국 기자들의 얼굴을 카메라로 찍고 갖은 욕설을 쏟아냈다. 정당이 국회의 회기 중에 의사당을 떠나 천막을 치고 장외투쟁을 한다는 것은 의회의 기능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 비상사태를 의미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회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완전히 마비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공당으로서의 직무를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왔다.
헌법이 정당의 존립을 보장하고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까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정당정치는 민주적 대의정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정당은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경쟁적인 정당 활동을 통하여 수렴하고 표출하여야 한다. 정당이 시민사회단체 또는 이익집단과 다른 점은 정치적 경쟁을 통하여 정책을 구현하고 그러한 정책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정치의 요체는 경쟁적 정당 활동에 있다. 협상과 타협, 때로는 비난과 정쟁을 통하여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정당의 본질적 활동이고 역할인 것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정당 활동을 접어버리고 거리로 나왔으며, 그것도 촛불을 다시 켜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세력들이 연일 집회를 벌이고 있는 광장으로 나와 장외투쟁을 한다는 것은 그 어떠한 명문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제1야당이라는 공당으로서의 지위를 망각한 무책임의 극치로밖에 볼 수 없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목적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국민들의 민생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민주당 안팎의 갈등을 해소하고 국면을 전환하고자 하는 정치적 꼼수 때문이라면 민주당은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할 수도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서울광장에 모여 있는 ‘촛불의 추억’ 세력들이 지금 국민들의 민심인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명분 없는 정치적 퍼포먼스로 보는 국민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솔직히 민주당의 갑작스런 장외투쟁 선언이 순수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며칠 전까지 정쟁 중단을 얘기하던 민주당이 돌연 국민운동 운운하며 “수천-수만 촛불이 함께할 것”이라며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과거 촛불사태로 정국이 마비된 때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2008년 100여 일 간의 ‘광우병 촛불’로 국내총생산(GDP)의 2%인 2조원의 국가적 손실을 봤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경제적 손실 못지않게 국론 갈등으로 인한 후유증은 더 컸다. 5년 만에 또다시 국력을 낭비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대선 불복 세력과 손을 잡는다면 그로 인한 책임은 분명히 감수하여야 한다. 민주당은 냉철한 선택을 해야 한다. 정당이 국회를 뛰쳐나와 거리에서 여론을 선동하고 국론을 분열시킨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과거 길거리 정치의 구태를 청산하지 못하고 강경파에 휘둘려 장외투쟁을 계속한다면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마저도 등을 돌릴 수 있음을 민주당 지도부는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민주당은 명분 없는 천막농성을 풀고 하루 빨리 국회로 복귀하여야 한다.
물론 새누리당도 국정원 국정조사를 하자고 민주당과 합의를 했으면 최소한 원세훈과 김용판 두 사람의 청문회 출석을 위해 협력하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새누리당도 국정조사의 파행에 따른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여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당장 9월 정기국회에서 국정운영의 기반이 되는 법안들과 시급한 현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
따라서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여야 모두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 하루 빨리 이러한 파국을 접는 것이 여야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으로 서울광장의 불법집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걷잡을 수 없는 국정 혼란이 초래될 경우 민주당은 자신들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는 변명만으로 국민들의 비난을 결코 면할 수 없다.
또한 민주당을 길거리 반정부 투쟁에만 매달리는 단체들과 같은 눈으로 보는 국민들이 많아질수록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창출에 있다는 교과서적인 설명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민주당이 수권정당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다수 국민들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당내 강격파와 국정혼란만을 획책하는 일부 전문시위꾼들에 포위되어 국민들로부터 멀어지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은 당장에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로 돌아가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의 직분과 역할을 다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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