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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의 1만배? 건국이래 최대 갈등 초읽기


입력 2013.11.17 10:11 수정 2013.11.18 11:04        이충재 기자

<원전 이것이 시급하다 ①-원전폐기물 저장고>

환경단체 공론화위 출범도 전에 결사반대 준비

지난 2003년 12월 13일 오후 전북 부안군의 원전센터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부안수협 앞에서 대규모집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지금도 시간이 부족하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부지 선정에만 10년 넘게 걸렸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연소되어 나온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이 뜨거운 감자다. 전문가들은 “건국 이래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원자력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보관하는 공간은 70%가량 찬 상태로 당장 임시저장시설을 확충하지 않으면 원전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원전 23기에서 해마다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의 양은 약 700t에 이른다. 가장 오래된 고리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2016년부터 차례로 임시저장시설이 꽉 차게 된다. 임시방편으로 시설 확충 등을 통해 포화상태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이 역시 2024년에 이르면 한계에 달한다.

‘사용후핵연료’란 원자력발전소에서 연소되어 나오는 물질로, 화덕을 피운 뒤 발생하는 ‘숯’과 비슷한 개념이다. 타고 남은 ‘숯’은 열과 방사능을 발산하고 있어서 위험물질로 분류된다. 이를 어디에,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하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사용후핵연료가 뭐기에..."'부안사태'보다 더한 진통 겪게 될 것"

원자력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은 방사능의 농도에 따라서 ‘중저준위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고준위 폐기물의 처리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화덕을 피우는 과정에서 사용된 작업복이나 장갑 등 중저준위 폐기물보다 직접 땔감으로 타고 남은 숯을 처리하는 문제는 더욱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송명재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방사성 폐기물은 고준위든 중저준위든 방사선이 나오는데, 통상 비저준위의 경우 관리기간이 300년 정도 걸리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만 년 이상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특별이 많은 신뢰감을 쌓아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사회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선정을 두고 2003년 주민 반발로 ‘부안 사태’를 겪는 등 극심한 진통 끝에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에 방폐장 부지를 선정했다.

경주방폐장 공사가 진행되면서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 문제는 한시름 놓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고준위 폐기물을 어디에,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는 아직까지 논의조차 시작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원전 관련 한 전문가는 “중저준위 폐기물처리장 선정에 10년이 넘게 걸렸는데, 고준위폐기물 선정에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예측할 수 없다”며 “신속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경종을 울렸는데도 방관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공론화를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민들의 원전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과거와 다르게 커졌다”며 “정부차원의 설득작업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선 지난번 부안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진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론화 위원회 출범 전부터 파열음 "환경단체 결사반대 준비하는 듯"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30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하고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 작업을 시작했다. 2004년 노무현정부가 국민적 공감대 하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찾겠다는 정책방향을 잡은 지 9년 만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건국 이래 최대 지역갈등을 조정해야할 국책사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밀양 송전탑, 부안사태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력이 큰 사안이다.

그동안 원자력계에서 꾸준한 문제제기가 있어 왔지만, 후쿠시마 사태 등 반(反)원전 여론과 맞물려 쉽게 공론화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지난 정부가 다음정부로 폭탄돌리기를 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파열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론화위원회는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인문사회-기술공학분야 전문가 6명, 원전지역 주민대표 5명, 시민사회단체대표 1명 등 13명으로 구성됐다.

당초 15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려 했지만 시민사회단체 추천 위원으로 선정된 두 명의 인사가 위원회 구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불참을 선언했다. 머리를 맞대기도 전부터 결론의 편파성과 일부 위원의 성향을 문제 삼아 흔들기를 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원자력업계 한 관계자는 “환경단체에서 논의를 해보지도 않고 결사반대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하는 게 아닌가”라며 “논란과 갈등을 줄이기 위해 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인데, 아예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미 오랫동안 ‘원전반대 장외투쟁’을 벌여온 환경단체가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꾸는 것은 단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열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공론화를 거쳐 투명하게 해왔어야 했는데, 이런 점에서 많이 부족했다”며 “지금부터 해도 역부족”이라고 우려했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해서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다.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방폐장을 유치하려 했다가 유혈사태를 초래한 부안사태나 지금까지 진통이 이어지고 있는 밀양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들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국민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할 경우 민란(民亂) 수준의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이에 홍두승 공론화위원장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갈등의 도화선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고, 미래 세대를 위한 현 세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타고 남은 숯 쌓일 대로 쌓여 '원전 중단 위기'

시간은 촉박하다. 현재 화덕에서 타고남은 숯은 쌓일 대로 쌓였다. 숯은 많은 열과 방사능을 발산하기 때문에 특수한 용기에 담아 보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준위 폐기물을 특수 밀폐용기에 담아 각 발전소 마당에 저장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열과 강한 방사선을 내뿜는 위험물질로 반감기를 거듭해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까지 안정화되는 데는 최소 10만년이 걸리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를 처리하는 방법은 크게 임시저장과 중간저장, 최종처분 세 가지로 나뉜다.

임시저장은 각 원전 임시저장시설에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것이다. 숯에서 나오는 강한 열기를 식히기 위해선 5년 이상 원전 수조 내 습식냉각이 필요하다.

중간저장은 수조에서 냉각된 사용후핵연료를 밀폐시설에 보관하는 것이다. 이 역시 최종처분 이전까지 보관하는 일종의 임시창고의 개념이다.

최종처분은 사용후핵연료를 인간생활과 영구 격리하는 방식으로 지하 500m 이상 심지층에 파묻는 것이다. 인간생활과 10만년 이상 분리해야하기 때문에 “이 전제를 장담할 순 없다”는 게 원자력 학계의 반응이다. 때문에 최종처분 처리장을 건설한 국가는 현재까지 없다.

현재 부산 기장 고리원전을 비롯해 경북 경주 월성, 경북 울진 한울, 전남 영광 한빛 등 4개 원전 본부에 모두 1만8000t을 저장할 수 있는데, 지난해 기준으로 이미 72%인 1만3000t이 찬 상태다.

당장 고리원전은 3년 뒤면 다른 임시저장소를 찾아야 한다. 월성원전은 2018년, 한빛원전은 2019년, 한울원전은 2021년 순으로 창고가 가득 차오르게 된다. 창고를 새로 짓지 않으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형편인 셈이다.<계속>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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