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응답하라, 국회'에 민주당 '어떡하지?'
"야당 제기한 모든 문제 합의점 찾으면 존중" 제안
민주 "특검도 수용하라" 겉으론 반발 속내는 혼돈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얼어붙은 정국을 타개코자 야당에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국회 정기회 시정연설을 통해 “최근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 합의점을 찾아준다면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라면서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해준다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특별위원회, 특별검사 등 특정 의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여야 합의를 전제로 야당의 요구사항에 대해 일정 부분 수용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역시 박 대통령의 연설에 단서를 달긴 했지만, 기존과 비교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끝난 뒤 국회 본청에서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전체적인 연설 내용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박 대통령이 최근 야당이 제기한 문제를 포함해서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합의점을 찾는다면 충분히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것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다만 “대선 관련 의혹 일체를 특검에,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혁을 국정원 개혁 특위에 맡기고 여야는 민생 살리기를 위한 법안과 예산심의에 전념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제안에 대통령이 응답한 것이라는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여야를 존중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새누리당이 먼저 화답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말처럼 여야 합의로 쟁점을 해결하겠다는 의중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정부는 내년 지방선거를 비롯해서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도 정치개입의 의혹을 추호도 받는 일이 없도록 공직기강을 엄정하게 세워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문재인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야권이 대선불복 논란을 부정하며 수차례 주장했던 민주주의 수호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앞으로 정부는 모든 선거에서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공무원 단체나 개별 공무원이 혹시라도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엄중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날 발언 역시 이 같은 기조의 연장선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과거 발언과 비교해도 한층 진전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앞서 “야당이 정기국회가 시작됐는데도 장외투쟁을 계속 하면서 민생법안 심의를 거부한다면 그것을 결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닐 것(9월 17일)”, “여전히 과거의 정치적 이슈에 묶여 시급한 국정현안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다(10월 31일)” 등 야당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증세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박 대통령은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신들이 법과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민생을 말하는 것이 공허한 것처럼, 할 도리를 다 하지 않고 증세 얘기부터 꺼내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도 도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정치권에 쓴 소리를 던졌다.
하지만 이날 연설에선 야당을 비판하거나 훈계하는 듯한 문장은 단 한 줄도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나는 국회를 존중하기 위해 앞으로 매년 정기국회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며 의원 여러분의 협조를 구하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겠다”면서 의회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지난 일에 묶일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협력해하자”며 야당에 손을 내밀었다.
가장 큰 변화는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자는 기존 입장에서 여야 간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으로 논의의 폭을 확장한 점이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넓게 해석하면 국정원 개혁특위 구성 등 야당의 요구사항 일부분도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면 동의할 수 있단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와 관련, 신율 명지대 교수는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분명 여야 간 협상의 여지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신 교수는 “전체적으론 한 번 검토해보라는 식이다. 민주당의 요구는 국정원 특검과 특위 구성인데, 특위는 가능성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여야가 특위를 만들어 국정원 개혁안을 만든다는 건 야당의 입장에서 절충안이 될 수 있다. 민주당에 더 이상의 카드가 없기 때문에 반발의 여지가 적다”고 말했다.
실제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요구한 특위 신설을 수용키로 결정했다. 민주당 측은 특검을 포함한 ‘양특’ 요구를 고수하고 있지만, 여당의 제안을 받는 것 외에 마땅한 전략이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당장은 볼멘소리를 내뱉지만, 결국 협상테이블에 나설 거란 추측이 팽배하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도 박 대통령이 여야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밝힌 것이 국회선진화법 개정 논란에서 야당의 손을 들어줘 결과적으론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박 교수는 “연설 자체는 너무 교과서적이다. 정치적 해법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됐는데, 국무총리가 하는 수준에 그친 것 같다”면서 “국회 존중의 의미를 좀 더 확대해 대화조로 나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여당에 대해서도 정치적 재량권을 주지 않겠다는 걸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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