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이 사건기사가 되는 희한한 나라

이상휘 선임기자

입력 2013.11.19 11:33  수정 2013.11.19 11:39

<칼럼>누가 앉았는지 누가 때렸는지 국민은 궁금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뒤 강창희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말이 있다. 가식적 웃음이 아니라는 전제에서다.

웃는다는 거, 미소짓는다는 거, 참으로 정겨운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웃고 산다는 거 만큼 소중한 게 있을까 싶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흔히 웃음은 삶의 윤활유라고 한다. 대인관계나 비지니스에서도 웃음은 성공의 반이다. 상대방이 미소를 보낼 때 관계는 부드러워 진다. 적당한 유머감각을 의미하는 것이다. 때로는 어떠한 지식과 능력보다도 훨씬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긴장을 풀기도 하고, 꼬인 실타래를 푸는 동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는 심각한 냉각기다. 웃음이라고는 애당초 찾아볼 수 없다. 이미 그런지 오래다.

여권과 야권은 눈을 부라리며 서로를 헐뜯고 있다. 작은 약점만 보여도 험하게 달려든다. 웃음과 유머가 있는 정치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국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다. 뉴스를 통해 나오는 그들의 표정과 행동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유머에 능했다. 분명히 그런 유전자가 우리에게도 있다는 방증이다.

선조 때 이항복의 정치유머는 유명하다. 임진왜란으로 피난을 가서도 동서당인들의 정쟁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조정에서 양측은 심각하게 언쟁을 벌였다. 이때 조용히 듣고 있던 이항복이 일어서며 말했다.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이토록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조정에 있을 줄 몰랐습니다. 만약 알았더라면 동인들이 동해를 막고, 서인들이 서해를 막았다면 왜놈이 어떻게 조선을 넘볼 수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싸움을 잘 하는 줄 뒤늦게 알았으니 그게 참으로 원통합니다.”

촌철살인으로 동인과 서인의 당쟁을 비꼬는 한수였던 것이다. 소득이 없는 당쟁을 풍자한 일화도 있다.

이항복이 조정에 지각을 한 날이 있었다. 왜 늦었느냐는 질문에 이항복은 이렇게 답했다.

“싸움 구경을 했소. 조정으로 오는 길에 스님과 신낭이 없는 환관이 서로 싸우는데, 스님은 신환관의 신낭을 쥐고, 환관은 스님의 머리를 쥐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이득이 없는 정쟁을 풍자한 유머였다. 당연히 정쟁을 일삼던 조정대신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 정치사에도 유머에 가까운 명언들은 있다. 고 김윤환 의원은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을 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한마디는 아직도 회자된다. 여야의 폭로정국을 두고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해 정치권을 힐난했다. 극한으로 치닫던 정치권이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끝났다.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예상한 대로 여권은 환영이요, 야권은 비난이었다.

시정연설에 대한 정치권의 웃음은 없었다. 치열한 공방만이 재연되고 있을 뿐이다. 냉기류가 한파처럼 불고 있는 것이다.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들과 같이 ‘으르렁’거리기만 한다. 어느쪽이든, 누구든 간에 양념같은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 그것으로 해학과 웃음을 던질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다

냉기류가 도는 정치권을 녹이고 사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과연, 정치권의 웃음, 불가능한 기대일까. 한가한 얘기일수도 있다.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여유를 갖자는 의미다. 한발 물러설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한치의 틈도 들어갈 수 없는 게 요즘의 정치권이기 때문이다. 웃음만큼 좋은 여유는 없다.

우리에게 촌철살인으로 정치권을 녹이는 유머를 가진 정치인은 없을까. 무릎을 ‘탁’칠 수 있는 감각으로 꽉 막힌 정국을 풀 수 있는 그런 정치인 말이다.

뒷통수로 경호원 입술이나 깨고, 멱살잡이나 하고, 대통령이 악수를 건네는데 거만하게 자리에 앉아 손만 내미는 그런 정치인들로는 어렵다. 정국을 순화시키고 실타래를 풀어가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작금의 정치권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힘들어 하고 있다. 화가 나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시원한 웃음 한번 웃고 갈 수는 없는지, 그런 역할을 해줄 세련된 정치인은 우리에게 없는지, 그런 생각이나 할 수 있는지, 한번쯤은 돌아봐야 할 때다.

실망만 주지 말고 가끔은 웃는 재미라도 던져야 되지 않겠나 싶다. 한치의 여유도 없이 치고받는 정치권을 보며 하도 답답해서 던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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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휘 기자 (shon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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