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강렬했지만..' 다시 헝그리 손정오…록키2 재연?


입력 2013.11.23 09:39 수정 2013.11.23 11:11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 칼럼니스트

부와 명예 쥔 챔피언 앞에서 '예정된 패배?'

영화 '록키2'처럼 재대결서 챔피언 등극 기대

손정오가 록키와 비교되는 이유는 침체에 빠진 한국 복싱계에서 대중들에게 무명에 가까운 헝그리 복서인 데다 이번 타이틀전의 성격도 록키가 치른 타이틀전 성격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

미국 필라델피아 빈민촌에 살면서 때로는 ‘4회전짜리’ 무명 복서로, 때로는 주먹으로 사채업자의 돈을 대신 받아 주는 ‘해결사’로 근근이 연명하는 청년 록키 발보아(실베스터 스탤론)가 헤비급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의 독립기념일 이벤트로 '기획된' 세계타이틀전에 나설 무명의 복서로 ‘간택’ 받아 일생일대의 명승부를 펼친다는 내용의 영화 ‘록키’는 1976년 개봉 당시 작품성과 흥행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영화 ‘록키’가 개봉한 지 40여 년이 지난 2013년 11월, 한국의 제주도에서 록키 스토리와 무척이나 흡사한 복싱경기가 펼쳐졌다. 그 주인공은 메이저 프로복싱 기구인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세계챔피언에 도전할 기회를 얻은 무명의 한국인 복서 손정오(32). 지난 19일 일본의 복싱 영웅 가메다 고키를 상대로 WBA 밴텀급 세계타이틀 도전에 나섰지만 경기 내내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1-2 판정패 했다.

손정오가 록키와 비교되는 이유는 침체에 빠진 한국 복싱계에서 대중들에게 무명에 가까운 헝그리 복서인 데다 이번 타이틀전의 성격도 록키가 치른 타이틀전 성격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2000년 데뷔한 손정오는 이듬해 신인왕전을 석권하며 주목 받았고 이후 플라이급, 슈퍼플라이급, 밴텀급 등에서 한국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2007년 9월 로델 테하레스(필리핀)를 KO로 꺾은 뒤 돌연 링을 떠났다. 복싱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길이 막막했기 때문. 복서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고향인 충남 천안으로 내려간 손정오는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나중에는 체육관에서 복싱을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다시 복싱에 대한 열정이 살아났고, 다시 글러브를 끼게 됐다.

링을 떠난 지 2년 만인 2009년 11월, 링에 복귀한 손정오는 이후 가메다와의 타이틀전을 치르기까지 7승 1무(통산전적 20승 2무 4패)로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WBA 밴텀급 세계랭킹 14위에 랭크 됐다.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세계랭킹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손정오는 ‘헝그리 복서’라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챔피언 가메다(31승1패)는 그 자신이 프로복싱에서 3체급을 석권했으며 장남인 그뿐만 아니라 동생 다이키가 국제복싱연맹(IBF) 슈퍼플라이급, 도모키가 세계복싱기구(WBO) 밴텀급 챔피언에 등극해 기네스북에도 등재될 만큼, 일본에서는 알아주는 복싱 가문의 아들이자 일본의 복싱 영웅이다. 대전료가 한 경기에 20억 원을 상회할 정도로 부와 인기를 거머쥔 선수다.

가메다와 손정오의 이번 타이틀전은 최근 가메다가 펼친 일본에서의 방어전에 대한 불공정 판정 시비와 가메다를 둘러싼 '안방 챔피언'이라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동급 14'위 손정오를 8차 방어전 상대로 선택해 치른 원정 방어전 이벤트였다. 가메다의 일본 내 위상이나 타이틀전 성격이 록키라는 무명의 복서를 ‘이탈리아의 종마’로 포장, 자신의 독립기념일 이벤트로 기획한 타이틀전을 치른 챔피언 아폴로의 경우와 흡사하다.

경기내용도 ‘록키’와 손정오의 경우가 흡사했다. 챔피언이 얕잡아 본 도전자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전을 펼치며 챔피언을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판정에서 ‘예정된 패배’를 당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손정오와 가메다의 타이틀전은 가메다가 KO를 당하지 않는 이상 가메다가 이겨야 하는 경기였음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경기를 주최한 프로모터는 챔피언 가메다 집안에서 운영하는 가메다 프로모션. 가메다 프로모션은 경기장소 섭외는 물론 스폰서 유치, 관중 동원까지 경기 흥행을 위한 모든 과정을 담당했다.

예정된 결과는 가메다의 8차 원정 방어전 승리로 ‘안방 챔피언’의 비판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일본 언론들까지 나서 손정오가 이긴 경기라는 비판을 제기했고, 상당수 일본 복싱팬들도 이 같은 시각에 동조하고 있다. 이 대목도 록키가 아폴로를 KO 직전까지 몰아붙였고, 감동의 선전을 펼친 결과 판정에서는 아폴로가 ‘예정대로’ 승리했지만 언론과 팬들이 록키가 승자라고 인정한 영화의 내용과 흡사하다.

경기는 끝이 났고, 부와 인기를 한 몸에 안고 있는 가메다는 원래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고, 손정오 역시 다시 ‘헝그리 복서’로 돌아갔다. 이후 손정오가 언제 다시 링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 링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대전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제로’에 가깝다. 손정오에게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라면 가메다와의 재대결을 통해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 실제로 손정오 측은 현재 WBA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록키’의 경우는 어땠을까. ‘록키’의 큰 성공을 등에 업고 1979년 개봉한 ‘록키2’에서는 록키와의 경기에 굴욕을 느낀 아폴로가 록키와의 재대결을 통해 최고의 챔피언으로서 인정받기를 희망하면서 다시 록키와 타이틀전을 가졌다. 의도와 달리 록키가 극적인 KO승을 거두고 챔피언이 된다.

‘한국의 작은 록키’ 손정오에게도 ‘록키2’ 스토리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가메다도 이런 경기로 정당한 방어에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창피한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메다 스스로 손정오와의 재대결을 추진할 지는 미지수다. 결국, 손정오와 가메다의 재대결 여부는 WBA 제소와 제소 결과 WBA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경기로 무명의 딱지를 떼어버렸지만 여전히 헝그리 복서인 손정오가 ‘록키2’와 같은 감동의 챔피언 스토리를 써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임재훈 기자
기사 모아 보기 >
0
0
임재훈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