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실종' NBA 진출 어불성설 구조
야구·축구·배구와 달리 스타부재 시달리는 농구
대형 스타 발굴 지지부진, 구조적 문제?
야구의 박찬호-류현진, 축구의 차범근-박지성, 배구의 김연경 등은 한국이 배출한 월드스타다.
과거에는 동양인이나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나 프리미어리그 같은 '꿈의 무대'를 누비는 것이 말 그대로 꿈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종목을 막론하고 해외진출이 보편화됐다. 수많은 한국 선수들이 세계무대로 나아가 최고의 선수들과도 당당히 자웅을 겨루는 시대다.
하지만 유독 농구만큼은 아직은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월드스타'를 배출해내지 못했다. 해외에 진출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세계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NBA(미국 프로농구)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하승진(전주 KCC)뿐이다. 그나마 하승진은 NBA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초라하게 돌아왔다. 이후 한국 선수 중 NBA 무대에 근접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국내 무대에서 정상급의 기량을 발휘하는 유망주들이 나올 때마다 단골로 회자되는 레퍼토리가 'NBA에 도전한다면 통할 수 있을까' 같은 궁금증이다.
최근에는 KCC 김민구가 NBA 출신인 소속팀 척 퍼슨 코치로부터 "제레미 린(휴스턴)보다 낫다"는 칭찬을 받아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퍼슨 코치는 현역 시절 NBA에서 3점슈터로 명성을 떨쳤고, 선수와 지도자를 거치며 미국농구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그런 인물이 한국 선수를 높게 평가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퍼슨 코치의 칭찬이 곧 "김민구가 NBA에서 통한다"는 보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NBA급'이라는 립 서비스를 받은 경우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가 있었다. 서장훈이나 김주성, 김승현 같은 선수들은 전성기에 외국인 선수나 코치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 NBA에 도전하거나 구체적인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은 아니다. 개인의 평가와 구체적인 공식평가는 또 다른 법이고, NBA 수준이라고 해서 그것이 곧 NBA에서도 주전으로 뛸 수 있을만한 실력이냐, 몇몇 능력치가 NBA에서도 통할 만 하느냐는 또 다른 차원이다.
사실 실제로 NBA로부터 관심을 받았던 선수는 이충희(동부 감독)와 허재(KCC 감독) 정도다. 두 선수는 국제무대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펼치며 NBA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잡았고 실제로 계약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이충희는 댈러스 매버릭스와 스페인 리그에서 이적 제의를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으며, 허재 역시 밴쿠버 그리즐리스의 관심을 받았지만 저마다 복잡한 해외진출 조건과 병역문제 등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이 겹쳐 성사되지 않았다. 성공여부와는 별개로 이들이 해외무대에 20~30년 전 일찍 진출했다면 한국농구의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가장 최근에는 김주성이 2007년 토론토 랩터스의 FA 캠프 초청을 받았지만 부상과 대표팀 합류 등의 문제로 인해 포기하고 중도 귀국한 바 있다. 실제 NBA로 목표로 도전했던 것은 방성윤(은퇴)이 NBA의 하부리그인 D리그에서 잠시 활약했던 것이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중도 귀국했다.
이충희나 허재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농구의 레전드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현역으로 뛴 것은 벌써 10~20년 전의 일이다. 아직도 슈퍼스타를 거론할 때마다 기존 현역들을 제치고 이들의 이름이 먼저 거론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농구가 새로운 대형스타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한국 선수의 NBA 가능성을 거론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비교대상이 바로 제레미 린이다. 일부 농구인들은 린을 예로 들며 한국 선수들도 충분히 NBA에 진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린은 한국에서는 오히려 같은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 과소평가 당한 케이스에 가깝다.
분명한 것은 린의 체격조건이나 기술은 그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웬만한 선수들과 동급으로 비교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야오밍이나 하다디 같이 특출한 신체조건을 지닌 빅맨을 제외하고, 가드 포지션이던 린이 NBA에서 통할 수 있던 것은 탈아시아급의 운동능력과 농구에 대한 이해도를 겸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린조차도 휴스턴로 이적한 이후에는 상대의 집중견제와 잔부상, 플레이스타일의 약점이 노출되며 고전했다. KBL에서 지금 린과 동포지션에서 체격이나 기술로 견줄만한 선수를 찾으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프로농구가 출범한지도 어느덧 16년이 넘었는데 오히려 농구계에서는 요즘 선수들의 기술 수준이 오히려 과거만 못하다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KBL이 최근 몇 년간 수비농구 득세와 득점력 저하로 고전하는 이유도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공격력 면에서 확실한 개인능력을 지닌 선수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비는 조직력과 열정으로 상쇄가 가능하지만, 공격은 타고난 재능과 개인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허재나 이충희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이 혼자 힘으로 얼마든지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이고, 승부처에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유형의 슈퍼스타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허재나 이충희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특출한 테크니션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김민구나 김선형같은 젊은 선수들이 농구팬들의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주고 있지만 이들도 아직은 성장이 더 필요한 선수들이다.
한국농구가 학원농구부터 성적 위주의 플레이에만 길들여지면서 선수들의 기본기나 기술적 성장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왔다. 이는 프로도 다르지 않다. 선수들은 비시즌에 기술을 키우기보다는 장기레이스에서 버틸 수 있는 체력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 수비 조직력 훈련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현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NBA를 운운할 정도의 천재급 선수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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