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우 잃은' SK…루저 아닌 이유
당장 손실 크지만 리빌딩 기회 잡아
커리어 로우 정근우 보다 새로운 인물 기대
비룡에서 독수리로 변신한 정근우(31·한화) 몸값은 86억 원이다.
이번 스토브리그의 ‘핵’ 한화가 정근우를 영입한 데 퍼부은 비용은 70억 원을 넘어 무려 86억 5000만 원에 이른다. 정근우와 4년 계약 70억 원(계약금 35억 원, 연봉 7억 원, 옵션 7억 원)에다 보상선수 대신 보상금을 받기로 한 SK 선택 때문이다.
정근우가 올 시즌 SK서 받았던 연봉 5억 5000만 원의 300%인 16억 5000만 원을 한화가 SK에 지급해야 한다. 한화가 정근우 한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86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다는 것은 정근우 기대치의 반증이다.
보상선수 대신 보상금을 선택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 보상선수로 데려올 만한 선수가 없는 경우, 두 번째 선수의 당해년도 연봉이 높은 경우다. 그래서 대어급 예비 FA를 보유한 구단들은 FA 당해년도 연봉을 급상승시킨 경우도 있다. 선수를 놓치더라도 돈으로 보상받자는 일종의 '보험 행위'를 택하는 것. 공교롭게도 SK는 둘 다 해당됐다. 작년 꼴찌 한화에서 받아올 즉시전력감도 없었고 보상금도 상당했다.
정근우는 2012시즌 커리어 로우나 다름없는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타율 0.266은 2005시즌 데뷔한 해를 제외하곤 가장 낮은 타율이다. 그럼에도 SK는 2012시즌 연봉 3억 1000만 원에서 5억 5000만 원으로 수직 상승시켰다. 무려 2억 4000만 원이나 얹어줬다. 연봉 인상률은 무려 77.4%에 이른다. 통산 커리어 로우나 다름 아닌 성적을 기록한 선수에게 과다한 연봉 인상이었다.
하지만 SK는 손해 본 게 아니다. 2억 4000만 원을 정근우에게 줬지만 1년 만에 4억 8000만 원을 벌어들였다. 연간 투자 수익률 200%의 고수익이다. SK는 FA 정근우가 이적할 가능성에 대해 1년 전부터 대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역대 통틀어 FA 시장에서 보상선수 대신 보상금을 택한 것은 정근우 포함 모두 6차례. 양준혁(2002년)-김민재(2002년)-조규제(2004년)-심정수(2005년)-정성훈(2009년), 마지막이 정근우(2013년)다. 보상금 사례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자금력이 약한 구단에서 부유한 구단으로 가거나 연봉이 높은 선수들인 경우다.
정근우에 대한 기대가 큰 반면 우려도 적지 않다. 2007년 이후 5년 연속 3할을 기록했던 정근우가 2년 연속 2할대 타율로 내려왔다는 사실과 도루 개수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수치가 그것.
정근우는 2009년 커리어 하이인 53도루를 기록한 후 3년 연속 20도루에 머물고 있다. 최근엔 잦은 부상으로 도루 시도 자체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2009시즌이 전성기였던 정근우가 현재는 하향 사이클에 접어든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정근우를 잡은 한화의 손익계산서만 따져봤다. 하향세에 있는 정근우를 잡지 않은 SK 손익계산서는 잘 따져보지 않았다. SK 입장에서 볼 때 정근우를 과연 잘 보낸 것일까. 아니면 70억+알파를 주고서라도 눌러 앉혀야 했을까.
SK 손익계산서를 따질 때 가장 우선 되는 것은 정근우의 공격 측면인 리드오프의 대체자 보유 여부다. 현재로선 올 시즌 초반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로 돌풍을 일으킨 이명기에게 관심에 쏠리고 있다. 이명기는 5월 8일 두산전에서 발목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기 전까지 타율 0.340의 고감도 타격 재능을 과시한 바 있다.
재활중인 이명기가 내년 정상 컨디션으로 복귀한다면, 정근우의 이적 공백은 최소화할 수 있다. 여기에 김강민과 조동화 등 기존의 리드오프감도 건재하다. 도루 면에서도 정근우보다는 젊은 이명기의 도루 능력이 더욱 기대된다. 1번타자는 우타보단 좌타가 적격이다. 1번 정근우보다 이명기 카드가 오히려 SK 공격 측면에선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역대 최고 2루수 중 하나로 꼽히던 정근우의 수비 공백은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우선 가장 유력한 조합은 나주환-김성현 조합이다. 나주환과 김성현 모두 유격수와 2루수를 번갈아 볼 수 있는 유틸리티 내야수들이다. 하지만 2루 포지션에서 발생하는 공격적 측면의 약화는 감내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내야 백업요원이던 최윤석의 2차 드래프트로 인한 손실이다. 넥센에서 신현철을 2차 드래프트에서 영입, 최윤석의 빈자리를 메울 계획이다. 올 시즌 1군 테스트를 거친 우투좌타 유망주 박승욱도 2루수 후보군에 포함된다.
SK는 현재로선 정근우의 이탈로 인한 아픔이 더 크게 보인다. 하지만 손실인지 아닌지는 시즌이 지나봐야 안다. 이명기가 리드오프로 정근우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주고 나주환이나 김성현이 2루수로 저인망 수비력을 보인다면 정근우의 공백은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이럴 경우 SK는 한화로부터 받은 보상금 16억 5000만 원에다가 정근우에게 베팅했던 70억, 모두 86억 5000만 원을 굳히는 셈이다. 게다가 이명기와 같은 차세대 리드오프를 주전으로 정착시키면 리빌딩도 덤으로 얻는다. 자연적인 리빌딩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한화는 FA를 샀지만 SK는 리빌딩을 벌었다. SK는 루저가 아니라 위너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