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 지은 집' 복고풍 롤모델 캠든 야즈의 위엄
[MLB 구장방문기③]볼티모어 홈구장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즈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이곳은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볼티모어 오리올스 홈구장이다.
정식명칭은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즈(Oriole Park at Camden Yards). 대부분 캠든 야즈로 부른다. 1992년 4월 6일 개장한 이 구장은 기존 메모리얼 스타디움을 대체했다. 4만 6000여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천연 잔디 구장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1990년대 찰리 쉰 주연의 영화 ‘메이저리그2’ 배경이 된 곳이라는 점이다(영화 속 배경이 된 팀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12-13 NFL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홈구장 M&T 뱅크 스타디움도 인근에 있다.
구장에 들어서기 위해 외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볼티모어 영구결번 기념비들이 눈에 띈다. 구단은 볼티모어를 빛낸 영광의 선수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들의 등번호를 조각했다. 기념비에는 각 선수의 이름, 포지션, 영구결번 연도가 새겨져 있다<재키 로빈슨(#42), 얼 위버(#4), 에디 머레이(#33), 프랭크 로빈슨(#20), 짐 팔머(#22), 브룩스 로빈슨(#5), 칼 립켄 주니어(#8)>.
기념비 우측으로 팬들의 발길을 더욱 끌어당기는 명물이 있다. 바로 베이브 루스 동상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데뷔한 루스는 뉴욕 양키스로 팔리며 그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루스는 연일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당시 메이저리그의 흐름을 바꾼 선수로 알려져 있다. 레너드 코페트는 자신의 야구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이를 ‘루스 혁명’으로 칭했다.
하지만 루스가 볼티모어 태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실제로 루스의 생가는 캠든 야즈에서 단 두 블록 떨어진 근거리에 있다. 구장 앞에서 안내를 맡은 구단 관계자는 생가의 위치를 가리켜 멀리서나마 불세출의 야구 영웅의 출생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실제 루스는 좌투좌타임에도 동상에는 우투용 글러브를 들고 있다. 이것이 옥에 티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동상 제작자는 베이브 루스 박물관에서 보낸 글러브를 당연히 루스가 사용하던 글러브로 생각하고 제작에 들어갔다. 반면 박물관 측에선 귀한 루스의 진짜 글러브를 빌려줄 수 없었다. 결국, 의사소통 과정의 실수로 생긴 해프닝이다.
구단관계자는 “가난한 루스가 당시 비싼 좌투용 글러브를 쓰긴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Baltimorean'이라는 선명한 문구에서 루스가 볼티모어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캠든 야즈는 '철인' 칼 립켄 주니어의 연속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역사적인 현장으로 더 유명하다.
지난 1995년 9월 6일 립켄은 루 게릭(2130경기)을 넘어 2131경기 연속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직접 구장을 방문할 정도로 이 기록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최종기록은 2632경기 연속출장). 1998년 9월20일 뉴욕 양키스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이제는 때가 됐다”란 말과 함께 본인 스스로 라인업 제외를 요청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칼 립켄 주니어는 메이저리그 연속경기 출장기록을 보유한 선수로 1981년 데뷔해 2001년 은퇴할 때까지 줄곧 볼티모어 유니폼만 입은 전설적인 선수다. 통산성적은 타율 0.276, 3184안타 431홈런 1695타점을 기록한 대표적인 공격형 유격수였다. 2007년에는 무려 98.53%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입성했다. 이는 톰 시버(98.84%), 놀란 라이언(98.79%)에 이은 역대 3위 기록이다. 포지션 플레이어로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
1983년부터 2001년까지 19년 연속 올스타전 출전(선발출전 17회)은 립켄이 팬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다. 구 양키스타디움이 베이브 루스가 지은 집(The House That Ruth Built)으로 불렸듯, 캠든 야즈는 칼이 지은 집(The House That Cal Built)이란 닉네임이 있는 것을 보면 위상을 실감케 한다. 볼티모어는 캠든 야즈 개장 20주년을 기념해 2012년 Center Field Picnic Area에 립켄을 비롯한 영구결번된 레전드 6명의 동상을 세웠다.
한편, 볼티모어와 필라델피아를 연결하는 95번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립켄 스타디움(Ripken Stadium)도 볼 수 있다. 립켄 스타디움는 립켄의 고향인 메릴랜드주 애버딘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볼티모어 싱글A 애버딘 아이언버즈(Iron Birds)의 홈구장.
B&O 웨어하우스 건물은 사진상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야구장 우측 바깥쪽으로 보이는 만큼의 건물이 더 있다. 캠든 야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명물은 바로 우측 펜스 너머로 보이는 연갈색 건물이다.
홈 플레이트부터 거리는 439피트(약133.8m)가량. 100년이 훌쩍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건물로 볼티모어-오하이오 철도(Baltimore and Ohio Railroad)에서 지어 B&O웨어하우스라 불린다. 1970년대 이후로 거의 빈 건물이던 이곳은 캠든 야즈가 생겨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현재는 구단 사무실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1층엔 공식 팀 스토어도 위치하고 있다. 센디에이고 펫코파크 좌측담장 뒤 서부금속회사(Western Metal Supply Co.) 건물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필드와 B&O 웨어하우스 사이에는 '유타 스트릿'이 있다. 경기가 없는 날은 누구에게나 개방된다. 샌프란시스코 AT&T파크에 스플래쉬 히츠(Splash Hits)가 있다면 캠든 야즈엔 유타 스트릿 홈런이 있다. 타자들에게 우측 구장 너머 유타 스트릿에 떨어지는 홈런을 친다는 것은 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볼티모어 구단이 유타 스트릿에 떨어진 홈런볼의 바로 그 위치에 팀, 선수이름, 날짜, 홈런 비거리가 적힌 야구공 모양의 동판을 새기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원정팀이 기록한 홈런도 동판을 제작한다는 것. 개장 이래 유타 스트릿에 떨어진 홈런은 77개. 가장 최근 홈런(2013.9.25)은 라이언 플래허티의 투런 홈런이다.
가장 많은 유타스트릿 홈런을 기록한 타자는 바로 SK 와이번스가 최근 영입한 루크 스캇으로 그는 6개의 홈런을 유타 스트릿 위에 떨어뜨렸다. 또 NC가 영입한 에릭 테임즈도 2012시에 유타스트릿 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캠든 야즈를 홈구장으로 쓰는 슬러거 크리스 데이비스(5개)가 이 부문 1위로 올라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한편, 유타 스트릿을 넘어 B&O웨어하우스 건물을 맞힌 유일한 타자는 켄 그리피 주니어로 1993년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그의 타구가 이 건물을 직접 강타했다.
캠든 야즈의 전 좌석은 녹색이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외야 2개의 오렌지색 좌석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좌측담장 바로 너머에 있는 오렌지 좌석은 립켄의 278호 홈런볼이 떨어진 지점이다. 이 홈런으로 립켄은 어니 뱅크스를 제치고 유격수 최다홈런을 기록했다. 우중간 펜스 뒤쪽에 또 하나의 오렌지 좌석은 '스위치히터' 에디 머레이의 500호 홈런볼이 떨어진 곳이다.
캠든 야즈는 립켄의 역사적인 연속경기출장의 발자취부터 올 시즌 데이비스의 가공할 홈런행진까지 볼티모어 시민들의 과거와 현재의 추억이 공존하는 곳이다. 물론 안방에서 노모 히데오(당시 보스턴)에게 캠든 야즈 역사상 유일한 노히트(2001년 4월 4일) 치욕의 과거도 있다.
캠든 야즈는 내외관에서 웅장하고 전통적인 느낌을 주는 복고풍 양식 스타일의 야구장이다. 1992년 캠든 야즈 건립 이후로 레이저스 볼파크 인 알링턴(텍사스, 1994년), 쿠어스 필드(콜로라도, 1995년) AT&T파크(샌프란시스코, 2000년) 부시 스타디움(세인트루이스, 2006년), 뉴 양키스타디움(뉴욕, 2009년)까지 이른바 복고풍 야구장들의 건립이 이어졌다. 캠든 야즈는 복고풍 스타일 야구장의 롤모델이라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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