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시끄러워지는 곳이 바로 국회의원 회관이다. 대개 이곳에서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열리기 때문.
정치권에서 출판기념회란, 오래전부터 자기 홍보를 위해 의례적으로 여는 가장 기본적인 행사였다. 대개 선거를 비롯해 정치권 입문 전후를 그린 에세이나 상임위 및 국감 등에서 활약한 내용, 지역구 민원 해결 사례 등을 엮어 책 한권을 완성한다.
시기와 횟수도 다양하다.
회기 중 1회에 그치는 경우부터 해마다 한 번씩 하거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는 의원도 있다. 실제로 송영길 인천시장은 지난해 11월에 출판행사를 연 데 이어 넉 달 만인 다음달 1일 또다시 출판기념회를 준비 중이다.
비슷한 내용의 책으로 냈다가 역풍을 맞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새누리당 소속 이승훈 청원군 당협위원장은 3년전 출간했던 책의 제목만 바꿔 ‘재탕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한 같은 당 류성걸 의원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를 코앞에 두고 출판기념회를 열어 ‘전형적인 갑의 횡포’라는 지적을 받았다. 게다가 이미 선보였던 책으로 올해 1월 또다시 출판 행사를 강행하면서 언론과 여론의 빈축을 샀다.
이처럼 뭇매를 감수하고 재탕까지 강행할 만큼 출판기념회가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출판기념회를 열면 의원의 개인적 친분 관계 외에도 해당 지역구와 상임위 의원들은 물론 국감을 앞둔 경우 정부 부처와 기업 관계자들까지 몰린다. 의원으로서는 얼굴 알리기에 제격인 자리다.
여기에 출판기념회 한 번에 초선 의원은 1억원, 중진은 기본 2억에서 5억원 정도가 들어온다고 알려져 있다. 선거를 앞둔 정권 실세의 경우 최대 수익이 10억원이라는 소문도 있으니, 출판기념회야말로 가장 쉬운 홍보는 물론 정치자금 모금의 합법적 루트가 되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초선 의원까지 관행처럼 책을 내는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을 막론하고 출판기념회 경력이 없는 의원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책 내는 것 어렵지 않지만…” 출판기념회 안 한 이유 들어보니
이러한 상황에서 재선 이상을 지낸 여야 의원들이 출판 기념회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아 눈길을 모으고 있다.
경남 하동 출신의 여상규 새누리당 재선 의원은 6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그런 책을 낼 자신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왜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들이 읽을 책을 낸다는 게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다. 초선 때는 시간이 많아 2년차 때 다 써놓기도 했다”면서도 “그런 글을 사람들에게 읽게 한다는 게 도저히 자신 없고 양심상 허락도 안됐다”라고 멋쩍게 말했다. 원고는 이미 완성됐지만 아직 출판은 안하고 있다는 것.
그는 이어 “국민들이 관심 가질 정치나 경제 쪽을 쓰기엔 내 전공 분야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감이나 의정활동을 쓰는 건 국민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본다”라며 “그런 걸 읽어달라고 내미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내 개인에 관한 자서전 등을 깔짝거리기도 했지만, 의원이름으로 그런 걸 국민들 읽으라고 내기가 두렵다”고 덧붙였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진행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같은 당 소속의 또 다른 의원은 “출판기념회에 나오는 적지 않은 책들이 보좌진이나 대필작가 등에 의해 쓰인다”고도 귀띔했다.
보좌관에게 자신의 의정활동을 정리해 묶게 하고, 의원이 마지막으로 훑어본 후 출간하거나 대필작가에게 비용을 지급하고 집필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경제 관련 서적의 경우, 자신이 전문가도 아니면서 제목은 마치 대한민국 경제를 주무르는 듯 거창하게 붙여놓고 정작 내용은 자기 상임위 활동으로 엮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또한 임기 1년도 안 된 초선의원들이 종종 출판기념회를 하는 것과 관련, 책 집필이 그리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 확보가 보장되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대전에서 3선을 지낸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출판기념회 자체가 나쁘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에 소위 후원금 모집 행사로 변질된 탈법적 행태가 많이 보인다”라며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짐을 지우는 것이 나로서는 불편하고 좋아 보이지 않더라. 민폐를 주는 게 아닌가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위해 약 1천만~2천만원을 들여 대필 작가를 고용하며, 그 분야에서 실력과 유명세가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3천만원 이상의 원고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이어 “지난번에는 한 초선 의원이 임기 시작한지 6개월도 안돼서 출판기념회를 하더라”면서 “글쎄, 과연 그것이 적절한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출판기념회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자, 최근 여야 지도부 모두 팔을 걷고 나섰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출판기념회에서 정치자금법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선언했고,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지난 3일 정치 혁신안에 ‘출판기념회의 비용과 수익을 정치자금에 준하게 관리하여 회계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발표했다.
한편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책 없는 출판기념회’가 열릴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지 않는 대신 책 내용을 소개하는 팸플릿과 동영상만 공개하는 것이다.
오는 13일 출판기념회를 앞둔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그동안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회계처리 불투명, 정가보다 높은 대금 수수 등의 관행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면서 “이를 타파하고자 참석자들이 부담 없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행사로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지 않는 이색 출판기념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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