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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마지막 구조자 "아이들이 많았는데..." 눈물


입력 2014.04.17 11:04 수정 2014.04.17 11:12        김지영 기자

17일 CBS 라디오서 "선원으로 보이는 분들 옥상으로 올라가더라"

16일 전남 진도해역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서 해양경찰이 헬기를 이용해 승객을 구조하고 있다. (뉴스Y 화면 캡처)

세월호가 침몰되는 순간에도 30~40명의 학생들이 선실 홀에 남아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왔다고 밝힌 김성묵 씨는 17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홀에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바닷물(이 들어와) 그 아이들 다 못 구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 씨에 따르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3층과 4층 선실에 몰려 있었다. 배가 45도 이상 급격하게 기울어지면서 학생들이 자력으로 구조가 진행되는 5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에 4층 난간을 붙잡고 구조를 기다리던 김 씨는 구조대원들과 함께 학생들을 5층으로 올려보내는 작업을 도왔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 씨는 “옮기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까 빠르게 안 돼서 하나씩 하나씩 올려보냈다”며 “(침몰 순간까지) 홀에 있던 아이들이 난간을 잡을 데도 없고, (배는) 벌써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 바닥을 붙잡고 올라와야 되는데, 거기가 미끄러져서 잡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이어 “그래서 소화기 줄을 호스를 이용해서 끌어당기는데, 몇 명 못 구했는데 (배가) 너무 90도 가량 기울어지다 보니까 아이들 힘이 부족해서인지 (호스를) 잡고 있지 못했다”며 “내 눈에 보이는 아이들만 한 30~40명 정도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 씨는 “빠져나오지 못했던 아이들이 그곳(3~4층 사이)에 몰려 있었던 것 같고, 큰 방 안에 더 많은 인원이 많이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3층 인원들은 3층 인원들대로 빠져나왔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4층 홀에 있던 인원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이 3층 선실에 갇혀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씨는 자신이 4층의 학생들을 미처 다 구조하지 못하고 구조정에 올라타는 순간, 배가 가라앉아버렸다고 전했다.

반면, 선원들은 이미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김 씨는 전했다. 김 씨는 “기울어진 상태라서 홀로 들어가면 붙잡을 데도 없고 버틸 데가 없어서 난간 쪽으로 나와서 서있었는데, 조금 이따가 선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옥상으로 올라가더라”며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헬기가 왔다”고 말했다.

선내 안내방송도 “위험한 순간이니까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 한 차례뿐이었다고 김 씨는 증언했다.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도, 배에서 빠져나가라는 방송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게 안타까운 것이다. 왜 구명조끼도 누가 입으라고 해서 입은 게 아니라 아이들끼리 나눠 가진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그 아이들 쳐다보고도 구할 수가 없어서...”라며 다시금 눈물을 보였다.

한편, 전날 오후 늦게 사고 해역에서 발견된 여성 시신 2구는 안산 단원고 여교사 최혜정 씨(25), 단원고 학생 박성빈 양(18)인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오전 사망자 1명이 추가 발견되면서 11시 현재 탑승자 475명 중 생존자는 179명, 사망자는 9명, 실종자는 287명으로 파악됐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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