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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그가 좌파와 선을 긋게 된 사연은?


입력 2014.08.09 10:00 수정 2014.08.09 10:02        하윤아 기자

<서평>친노 매체 논객에서 애국보수진영 깃발 들기까지...

‘변희재의 청춘투쟁’ 변희재 저 도전과미래 간
‘진중권’, ‘일베’, ‘수컷닷컴’, ‘미디어워치’...

국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치면 나오는 연관 검색어들이다. 흔히 보수논객이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변희재다. 최근 그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냈다. 41살의 젊은 나이. 그러나 그에게는 다소 이른 시기에 자전적 책을 펴낼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책 ‘변희재의 청춘투쟁’(도전과미래)은 칼럼니스트 변희재의 20대와 30대 중반까지의 기록을 담은 자서전이다. 변희재라는 인물의 세계관이 어떤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자신과 관련한 왜곡된 정보가 온라인 상에서 떠돌기 시작하며 갖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어 변희재는 자신의 삶과 사상에 대한 보다 정확한 기록을 남겨둘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저자 변희재는 1994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해 재학 중 웹진 ‘대자보’를 창간했다. 대자보에서 기자 및 편집장을 역임한 그는 이어 대중문화 비평서 ‘스타비평’ 시리즈를 출판하며 본격적인 글쓰기 활동을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에는 친노 매체였던 웹진 ‘서프라이즈’에서 활동했으나 열린우리당 창당과 노무현 탄핵 등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우파로 전향, 오늘날에 이르렀다.

저자는 특히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반노’의 길을 걷게 된 사연에 대해서 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친노 매체에서 몸을 담았던 그가 반노의 길을 걷자 일각에서는 ‘변절자’라는 말도 나왔다. 이 같은 비판에 그는 이 책을 빌려 좌파 세력과 선을 긋게 된 사연을 풀어내고 있다.

우선 그는 자신을 둘러싼 '변절 논란'에 대해 “억울함이 있다”며 “대학시절부터 내 사상은 존 스튜어트 밀과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노선이었고, 이후 사상이 바뀐 적은 한 번도 없다. 또 대학시절부터 좌파진영 내에서 치열한 내부투쟁을 거쳐 벽을 뚫고 나온 내 경력이 변절로 규정될 순 없다”고 항변했다.

그런 변희재가 친노세력에 비판의식을 갖게 된 결정적 사건은 2003년 후반기 민주당 내 친노세력들의 분당 및 신당 창당 움직임이 일면서 부터였다.

그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노무현은 민주당 후보로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게 당선돼놓고 정권을 잡자마자 당을 깨고 신당을 차린다면 그건 국민사기극이 된다.” 친노세력의 민주당 분당 계획이 정당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2003년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발언으로 촉발된 탄핵 사건을 거치며 좌파 언론운동세력과 정치적 결별을 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변희재는 “탄핵사건을 거치면서 안티조선 운동을 빌미삼아 조선일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거짓선동을 이어가고, 언론의 논리와 윤리를 팔아먹는 세력이란 점을 점차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 후 변희재는 안티조선세력, 좌파진영과 완전히 결별해 본격적인 우파 애국시민운동가이자 보수 정치논객으로서 다방면으로 활동하게 된다. 특히 저자는 진보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수차례 부딪히며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진중권 교수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렸던 일화를 언급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12년 11월 11일 변희재와 진중권은 북방한계선(NLL)을 두고 ‘사망유희’ 토론을 벌였다. 당시 진 교수는 초반부터 매섭게 몰아붙인 변희재에 “팩트에서 밀렸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NLL을 무력화하려는 친노세력의 실체를 국민에게 영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도 애국진영에도 큰 행운”이라며 “오직 팩트와 진실을 추구하는 애국진영과 수시로 거짓말해가며 국민을 현혹해온 친노종북진영과의 수준차이 덕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실제 그는 이 토론 이후 미디어워치 구독자가 급증해 2013년 한 해에만 4000여 명의 정기독자를 확보, 미디어사업의 새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를 발판으로 현재 변희재는 아시아 최고의 종합미디어그룹을 건설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언론벤처’에 도전하고 있다.

이렇듯 창업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변희재는 1971년생 이하 이른바 ‘실크로드 세대’의 벤처기업인들과 실크로드CEO 포럼을 구성해 세계에서 가장 창업하기 좋은 자유통일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지금도 변희재의 청춘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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