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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추도식에 놓인 새빨간 조화, 북의 의도와 속셈은?


입력 2014.08.20 10:50 수정 2014.08.21 19:11        김소정 기자

"대남전략 새롭게 짜고 있다" 분석과 'DJ 향수'로 대북정책 흔들기

지난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추도식 식장 입구에 놓인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조화. ⓒ연합뉴스
최근 정부가 제안한 고위급 회담에 대해 열흘 가까이 무반응인 북한은 한미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을 ‘선제타격을 노린 핵전쟁 연습’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이산가족상봉 등 인도주의적인 사안부터 하나씩 실천하자고 제의한 것에 대해서도 북한은 오히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근본 문제를 외면했다’며 일언지하에 일축해버렸다.

그러던 북한이 17일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5주기 추모 조화를 보내고, 19일 오후에는 인천아시안게임의 축구경기 조추첨 대표단 8명을 파견했다.

이렇게 남과 북은 똑같이 ‘관계 개선’을 외치면서도 외줄타기 식 대화를 이어가는 형국이다.

남측이 신뢰 구축을 강조하며 근본적인 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것과 달리 북측은 현실 문제를 내세워 불신을 없애자고 한다.

이는 과거 김정일 시절 남북관계의 양상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이 대남 전략을 새롭게 짜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영수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장성택 숙청 이후 김정은 정권은 공고해진 것으로 보이고, 북한의 알곡 생산량도 4~8% 정도 증가하는 등 자신감을 얻은 김정은이 대남 전략을 새롭게 짜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김정은은 핵 보유를 천명하면서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2012년 5월 개정 헌법에 사망한 김정일의 주요 업적이라며 핵보유국을 명시했다. 또 이번에 김정은은 남한에 조화를 보내면서 ‘전제조건 없는 실천’을 언급하며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내부의 자신감에 오랫동안 통치할 것을 염두에 두고 체제를 공고히 할 목적으로 대남전략을 짜고 있다. 이런 김정은 시대에 달라진 점을 간파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임기응변식의 단기적 대응밖에 못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그동안 북한의 대남전략은 강경책을 쓸 때와 유화책을 쓸 때가 구분되는 단편적인 특징을 보였지만 지금은 강경책과 유화책을 섞어 상당히 탄력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이런 전략을 구사하니까 우리가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된 배경으로 북한이 남한 정세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남한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정책이 나와서 일관된 대북정책이 구사될 수 없다는 점이 잘 학습된 것은 물론이고, 지금 남한 정세도 얼마든지 활용하면 북한에 이롭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설명을 위해 최근 김정은이 박지원 의원 일행을 통해 전달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5주기 조화를 예를 들었다. 시기적으로 북한의 대남 위협 발언이 최고조를 이루던 와중에 생뚱맞게도 조화가 전달된 데다 김정은 명의의 조화 하나만으로도 남남갈등이 일었다.

김정은의 조화는 북측 인사의 방문이 아니라 남측 인사가 방북해서 실어오는 방식으로 전달됐다. 조화가 현충원으로 옮겨져서 박근혜 대통령의 조화가 나란한 위치, 전직 대통령의 조화보다 상석에 놓이자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남한 언론은 “붉은색의 ‘김정일화’가 아니라 흰꽃으로만 장식된 ‘김정은화’로 북한의 추모문화가 달라졌다”면서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북한이 보낸 조화 하나만으로도 큰 관심을 불러모으고 심지어 남남갈등까지 부추기니까 이렇게 경제적인 대남전략이 없는 셈”이라며 “이번 김정은 조화는 현 정권의 자존심을 손상시킨 데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을 부활시키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이번에 김양건 대남비서가 박 의원에 건넨 말을 하나하나 분석해보면 남측과의 대화 가능성의 여지가 전혀 안 보인다. 우선 지금 당장은 대화를 안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북한 측이 남측의 전직 대통령의 추모일에 조화를 보내온 사실 자체는 좋은 일에 속하나 이를 전달해오는 방식이나 그 과정이 남측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남한 현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하면서 자신들을 지원했던 이전 정부 관계자를 통해 속내를 드러낸 점도 저평가되고 있다.

이번에 전달된 김정은의 조화에는 이전과 달리 붉은꽃은 사용하지 않고 흰꽃만으로 꾸며져 언론의 시선을 끌었다. 또 특이한 것은 김씨 일가가 추도식에 보내는 조화에는 빨간 리본에 황금색으로 이름을 적어서 사용해왔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일반인들에 보내는 조화에는 통상 까만 리본에 흰글씨를 쓴다.

북한 내부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남측 인사가 직접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조화를 받아오고, 유난히 눈에 띄는 북한 조화를 현충원 상석에 세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실 북한의 의도가 있어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그동안 김정은이 구사해온 대남전략은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고, 북한 특유의 전략을 유지했다”면서 “다만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은 언론 등을 이용해 많이 노출했고, 이런 방법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주목받는데 성공해왔다”고 말했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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