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중심제상에서 책임총리는 대통령 의지에 달려
박근혜정부의 '총리 수난시대'는 정권 초기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총리로 지목됐다 낙마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초유의 총리 낙마가 이어지면서 정 총리는 결국 유임됐다.
'인사가 만사'라는 명언이 있듯이 적절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이다. 역대 정권은 어떤 인물을 총리에 기용하면서 정권을 유지시켜 왔는지 살펴보는 것도 현 정부의 인사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하고,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평가에서 알 수 있듯 국무총리는 대통령 밑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동안 많은 총리들이 ‘대독총리’, ‘의전총리’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나타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직언과 함께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려던 ‘실세 총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실세 총리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제26대 이회창 전 국무총리와 36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꼽힌다. 이 둘은 진영은 반대편이었지만 헌법에 주어진 총리 역할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관계가 서로 다르게 설정되면서 결과는 판이하게 갈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회창 전 총리는 ‘대쪽 총리’로 불리며 4개월만에 사퇴했고, 이해찬 전 총리는 ‘책임 총리’로 끝까지 권한을 마무리 했다는 평가다.
특히 이회창 전 총리는 책임 총리 권한을 행사하려 했다가 청와대와의 마찰로 사퇴했다는 점에서 책임 총리 구현을 위해서는 청와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먼저 1993년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서해 훼리호 참사에 쌀 개방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궁지에 몰리자 감사원장이던 이회창 전 대법관을 총리로 불러들였다. 과거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며 국민적 인기를 모았던 이회창 전 총리는 헌법의 총리 권한을 행사하려 했지만 헌법상 위임된 총리 권한 행사 문제를 놓고 김 전 대통령과 마찰을 빚고 4개월만에 사퇴했다.
당시 이회창 전 총리는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한다”며 사표를 냈고 이 때문에 오히려 국민들에게는 ‘대쪽’ 이미지가 각인돼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하기까지 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으로 참여정부 2대 총리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책임총리 권한을 행사하며 ‘실세총리’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책임총리를 구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탄핵정국’에서 복귀한 노 전 대통령은 이해찬 의원을 총리로 발탁하면서 명시적으로 책임총리 지위를 부여하며 일상적 국정운영을 위임했다.
특히 당시 총리실은 부총리·책임장관회의를 비롯해 국정운영 방향을 협의·조정하는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실제로 행정수도 건설, 방폐장 문제 등 국가현안을 주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탄핵정국' 이후 노 전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한 동력을 상실하면서 모든 권한을 총리가 행사할 수밖에 없어 실세 총리가 나타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에서 정운찬 총리가 나오면서 실세총리에 이어 ‘총대총리’라는 것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정 전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 총대총리’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총리는 총리 지명 이후 곧바로 세종시 건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 전 대통령과 발을 맞추며 ‘세종시 수정안 전도사’ 역할을 자임했다. 세종시가 세워지고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지금까지 충남 공주 출신이라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정 전 총리는 이에 대해 후회를 언급한 적은 없다.
정 전 총리가 ‘세종시 총리’, ‘총대 총리’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즉 총리에게 국정 전반의 통할권을 부여하기보다 현안 중심으로 사람을 쓴다는 것. 특히 자신의 대선 공약 파기를 위해 국무총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정 전 총리가 '총대총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을 잘 보좌하면서 국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여기에 과학벨트 문제로 충청권 인사들의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김황식 전 총리도 법조인 출신으로 안정감있는 국정수행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정부 인수위 시절 김 전 총리가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총리가 아니었다면 박근혜정부의 초대 총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김 전 총리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국정 적응력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역대 총리 가운데 국회 답변을 가장 잘 한 총리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만큼 정부 부처 업무를 꿰뚫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뛰어난 국정 적응력 등으로 정권의 방패막이 역할만 했다는 것은 김 전 총리의 분명한 한계로 남아 있다. 대통령에게 직언을 못하고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 입맛에 맞추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는 그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지난해부터 제42대 국무총리를 지내고 있는 정홍원 총리는 전형적인 ‘안정형 총리’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박 대통령은 한번 써봤던 인물 가운데 자신과 호흡이 잘 맞는 인물을 끝까지 중용하는 인사스타일로 유명하다.
정 총리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선정한 뒤 국무총리로 다시 활용한 경우다. 공천심사위원장 당시 정 총리는 ‘의중을 잘 반영해 튀지 않고 무난하게 공천심사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정 총리는 2번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다시 총리로 유임되는 헌정 사상 최초의 ‘유임총리’가 됐다. 박 대통령은 정 총리 유임을 통해 자신의 인사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도 현 정부에서 낙마한 2명의 총리 후보자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이회창과 이해찬 전 총리에 이어 책임총리를 구현할 수 있는 인물로 국민들의 큰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변호사를 하면서 고액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 스스로 낙마했다.
이어 문창극 서울대 초빙교수는 법조인 출신 총리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최초 언론인 총리라는 이름을 얻으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중앙일보 주필 시절에 썼던 칼럼과 교회 강연이 논란이 되면서 낙마했다.
이에 대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우리나라 대통령제에서는 책임총리의 구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러나 우리 정치 상황에서는 현재 총리보다는 좀 더 권한을 가진 총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총리가 이러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 것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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