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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으로 대한민국 존폐 위기 '남근석'을 조명하다


입력 2014.09.05 11:07 수정 2014.09.05 11:19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남근석을 찾아서>제천 성내리 동산 남근석

마을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성 심벌, 하늘이 준 신비"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라는 표어가 1970년대 초반, 전국 방방곡곡에 나붙은 시절이 있었다. 집집마다 작게는 5∼6명, 많게는 12명의 아이들이 복작거려 연필 한 다스란 유행어가 돌 정도로 대가족을 이뤘다.

초등학교 교실은 콩나물시루처럼 아이들이 넘쳐 2부제 수업을 해야만 했던 시절,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자는 국가시책이 탄력을 받았다. 인구증가를 우려한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본격화했다. 남성불임수술이 권장됐고 예비군훈련장에서는 정관수술을 받으면 훈련이 면제되기도 했다.

농경사회의 빈곤과 절박함에서 벗어나 산업입국을 위한 몸부림의 대가로 치룬 산아제한,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오늘의 농촌에는 아기울음소리조차 사라졌다. 저 출산과 이농현상 등 농촌지역은 초등학교 입학생이 없어 폐교가 속출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저 출산이 지속되면 120년 후에는 국가가 존립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전망도 나왔다.

불과 40년 사이, 우리나라는 인구감소를 우려할 정도로 세계적 저 출산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경제성장이 급속하게 이뤄졌지만 양육비와 교육비가 엄청나게 증가한데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자 최근 정부에서는 3명 낳기 장려가 펼쳐지고 있다. 출산비용, 자녀등록금, 주택자금, 각종세금해택까지 지원에 나섰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선조들의 종족번영을 기원하던 과거로 회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식을 바라는 기자(祈子)의 염원이 담겨 있는 성석(性石)들이 새삼 그리워진다. 이들 남여성석에는 우리민족의 건강한 성의식이 깃들어 있다.

우리선조들은 생산과 풍요의 신석(信石)인 여근석 또는 여근곡이 마을 뒷산 아니면 앞산에
있으면 그 일직선 아래에 남성의 힘을 상징인 남근석을 세웠다. 그래야만 마을 아낙네들의 음욕을 잠재운다는 생각에서다. 그것도 모자라 일 년에 한두 번 제를 올렸다.

이처럼 성석들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희망의 상징물이었으며 마을의 지킴이로서 우리의 정서, 우리의 삶이었다.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을 우리와 함께 한 남근석(선돌, 입석)들은 묘하게도 산아제한의 기치가 드높던 1970년대 초 이른바 미신과 무속타파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마저 어느 집 마당으로 옮겨졌으며, 마을주민들의 보살핌으로 현존하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기자는 다산을 원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배어있는 성석을 찾아보기로 했다.

국내서 가장 신비로운 남근석에 한 여인이 치성을 드리고 있다.ⓒ최진연 기자

천혜의 자연이 빚은 제천 성내리 ‘동산 남근석’.

내륙의 바다로 부르는 충주호의 긴 물자락 중류에 청풍문화재단지가 있다. 이곳에서 본 금수산의 자태는 참 아름답다. 등성이를 타고 뻗어 내린 산줄기 한 자락이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동산(896m)으로 이어져 천년고찰 무암사 앞 능선까지 내려 앉아있다.

성미가 급한 기자는 빠른 발품으로 오솔길을 한 10분가량 거슬러 오르자 산길은 거의 수직으로 변한다. 두발뿐 아니라 두 손도 산 바닥에 붙는다. 원숭이처럼 네발로 약 20분 정도 더 올랐다. 갑자기 산 건너편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색창연한 절집 뒤로 둥글둥글한 암봉이 한 폭의 동양화다.

“하늘이 준 신비입니다. 세상에 저렇게 잘 생긴 남성의 심벌이 우리 마을에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계 남근석대회에 나가면 대상감이라고 합디다.”

남근석 길잡이가 되어준 청풍문화단지 유수용 소장은 남근석 홍보대사가 되어 있었다. 기자는 괴이한 이 현장을 처음 본 순간 절묘한 자연의 조화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5년 정도입니다. 뒤편에 보이는 기암괴석의 금수산 때문이지요. 한적했던 이 계곡이 휴일에는 등산객들로 가득합니다.”

마을사람들이야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지냈지만, 금수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에 의해 자연이 빚은 이 남근석이 비로소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아들을 원하는 아낙네들의 숨겨놓은 신령의 장소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이날따라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한 부녀자가 성석 앞에서 두 손 모아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저 산 암봉 근처에 여근석이 있는데 여기서는 나무가 가려 안보이네요. 신기하게도 남녀근석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 경외감마저 듭니다.”

무암사에서 본 암봉위에 남근석 머리가 아련히 보인다.ⓒ최진연 기자

남근석을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오목조목한 바위와 잘 다듬은 듯 분재 같은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광은 과연 세인들을 유혹할 만큼 멋진 모습이다.

또한 가까이 가면 고개를 들고 쳐다봐야 할 만큼 웅장하다. 마치 솜씨 좋은 어느 조각가의 예술품을 보는 것 같다. 3m는 족한 높이에 아래 폭이 2m. 위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폭과 크기가 슬그머니 줄어들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고개를 돌려 남쪽으로 내려다보면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 충주호가 한눈에 조망된다. 겹겹이 둘러싸인 크고 작은 산들이 초록빛 물에 몸을 눕히고 거대한 산수화를 연출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이곳 무암사 앞산에는 큰 바위 두 개가 있다. 무암사 주지 스님의 말로는 이 안개바위는 날이 맑을 때는 희미하게 보이다가 안개만 끼면 뚜렷이 하나로 보이는 신비의 바위라고 했다. 또 절집 옆 계곡은 한여름 피서지로도 만점이다. 산 능선 곳곳에 장군바위, 애기바위 소뿔바위가 저마다 전설을 안고 있다.

동행한 유계장은 산악인 허영호 씨가 어릴 적부터 등산가로서 기초를 다지며 워밍업을 하던 산이라고 했다. 그와는 초등학교 친구라며 자랑이 대단했다.

동산 남근석을 보려면 무암골 입구에서 2km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치성을 드리면서 건강한 아기를 갖고 싶은 여인네들은 가파른 산행 길이 쉽지 않다. 혼자 산행은 피해야할 만큼 험하다.

고귀하면서도 소중한 성(性)은 오랜 기간 유교전통에 갇혀 왔다. 그 영향은 지금도 남아있다. 성에 대한 관심을 겉으로 드러내면 누구나 천박한 부류로 취급당한다.

하지만 지금 전국각지에 남아 있는 남여근석은 조상들이 성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토속의 상징물이다. 이들 앞에서만큼은 성에 대한 표현이 결코 천박해지지 않는다.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를 빠져나와 지방도 82번 지방도를 이용, 금성면 성내리까지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산행 길은 고찰 초입 200m 아래서 오른쪽으로 나있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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