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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일 만의 불명예 퇴진, 누가 박영선 떠밀었나


입력 2014.10.02 15:45 수정 2014.10.02 15:57        김지영 기자

강경파의 퇴진운동, 유가족들 과도한 협상권 개입으로 정치적 리더십 잃어

입장발표문 통해 "직업적 당대표를 위해서라면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우윤근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29일 저녁 국회에서 열리는 비공개 의원총회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취임 148일 만에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박 원내대표는 2일 이메일을 통해 당내 의원들에게 원내대표직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문희상 위원장을 비롯한 비상대책위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박 원내대표의 사퇴를 만류키로 의견을 모았으나, 박 원내대표는 결심을 물리지 않았다.

유기홍 새정치연합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전한 뒤 정론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마지막 순간에 문 위원장이 통화했는데 (박 원내대표는) 특별한 말이 없었다”면서 “다만 (문 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박 원내대표는) 그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내려놓은 데 이어 이날 원내대표직까지 사퇴하면서 단 보름 만에 모든 직책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새정치연합은 조속히 원내대표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오는 9일까지 후임 원내대표를 선출할 계획이다. 이때까지는 김영록 원내수석부대표가 원내대표직을 대행한다.

등 떠밀린 사퇴, 누가 박영선을 사지로 내몰았나

박 전 원내대표 퇴진의 직접적인 계기는 후임 비대위원장 인선 파동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달 10일 전후로 새누리당 출신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에 대한 비대위원장 영입을 추진했다. 이에 당내 의원들은 비대위원장 인선 철회를 촉구했고, 이 사이에서 강경파 의원들은 박 전 원내대표 퇴진운동을 주도했다.

강경파 의원들은 당시 박 전 원내대표에 대해 세월호 특별법 협상 실패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박 전 원내대표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협상을 통해 두 차례 합의를 이끌었으나, 1차 합의는 의원총회에서 부결되고, 2차 합의는 유가족들의 반발에 추인이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었다.

전방위적 퇴진 요구에 박 전 원내대표가 칩거에 들어가자 김 수석부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는 박 전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해 의원들의 의견을 묻는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박 전 원내대표에게 맡겨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자 박 전 원내대표는 칩거 나흘 만에 당무에 복귀했다.

다만 비대위원장 인선 파동은 당내 강경파가 박 전 원내대표 퇴진운동이 벌어지게 된 계기이고 명분이지, 박 전 원내대표가 사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으로 보기는 어렵다.

박 전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보낸 거취 관련 이메일에서 원내대표로 있던 시간에 대해 “책임이란 단어에 묶여 소신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걸어온 힘든 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당을 행해서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협상이라는 씨름을 벌인 시간이었다. 직업적 당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한 지금 우리당이 겪고 있는 고통은 치유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발언으로 미루어 박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일찍이 원내대표직 사퇴를 결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전 원내대표는 2개월 넘게 당 원내대표로서 전권을 갖고 여당과 협상에 임했으나, 앞선 두 차례의 합의안은 의총에서 추인받지 못했고, 이번 3차 합의안은 희생자 유가족들로부터 거부당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원내대표는 ‘결제받는’ 원내대표로 전락하면서 협상력과 정치적 리더십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향후 협상 경과가 어떻게 되고, 어떤 합의가 도출되든 상관없이 박 전 원내대표는 이미 원내대표이자 정치인으로서 국민적 신뢰를 잃은 상황이었다.

이처럼 박 전 원내대표를 단순한 협상대리인으로 전락시킨 대표적인 세력은 유승희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당내 강경파와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였다. 당 강경파가 직접적으로 박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종용했다면, 유가족들은 야당의 협상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박 전 원내대표의 리더십을 무너뜨렸다.

특히 유가족들은 자신들이 동의한 사안에 대해서만 협상을 허가하고, 자신들의 양해를 거치지 않은 합의안을 거부하는 등 처음부터 박 전 원내대표의 협상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넘기면 사퇴할 명분도 사라져…스스로 사퇴 택했을 수도

당내외 상황과 별개로 박 전 원내대표 스스로 지금이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을 적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크다. 퇴진 요구 등으로 정치적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비롯한 입법 협상을 계속 이끌어봐야 3차 합의안 도출보다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박 전 원내대표의 원내대표직 유지 조건이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었던 만큼, 현 시점을 넘기면 원내대표직을 사퇴할 명분이 사실상 사라진다. 사퇴를 전제로 한다면 지금이 가장 아름다울 때라는 것이다. 향후 정치적 구상과 입지를 고려하면 사퇴의 명분과 시기에 따른 실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밖에 박 전 원내대표의 당내 입지와 정치적 성향이 스스로를 고립시켰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정치적 이해관계보다는 본인의 정치적 신념과 자존심에 따라 움직이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이 같은 성향이 자신과 당 강경파, 자신과 단원고 유가족들 사이에 벽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강경파의 고질병 중 하나인 지도부 흔들기를 박 전 원내대표가 극단적으로 해석해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도 있다. 박 전 원내대표는 법제사법위원장 시절부터 여당 국회의원의 발언이나 특정 언론 보도를 자신의 자존심, 체면 등과 연관 지어 받아들여 얼굴을 붉히거나 흥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한편, 후임 원내대표 선출과 관련해 당 일각에서는 추대설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이번 선거는 정상적인 원내대표선거와 달리 일정이 촉박하고, 선거운동기간도 보장되지 않는다. 가능한 추대 방식으로는 후보들간 합의로 단수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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