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공 택한 문재인, 여당 제치고 청와대와 전면전
'외부의 적' 설정으로 당내 결속 다지고 정국 주도권 확보 노림수
취임 일성으로 박근혜정부와 조건부 전면전을 선포했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연일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야가 2월 임시국회를 계기로 협상국면에 돌입한 상황에서 문 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외부의 적’을 설정함으로써 당내 결속을 다지고,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정부 여당의 정책기조와 상관없이 청와대를 상대로 한 문 대표의 전면전은 이미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문 대표의 발언에 즉각 반응하면서 올 초까지 이어졌던 여야 대치국면은 야당 대표와 대통령의 대결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에서 최근 증세, 복지 재검토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해 지난 9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을 배신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오히려 ‘정당 중심의 당정관계’ 적립을 강조했던 새누리당 지도부가 10일 박 대통령과 회동에서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당청갈등설이 진화되는 분위기이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조세·복지정책에 대립각을 세웠던 종전 상황이라면 야당과 청와대가 대결하는 것이 여야 협상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정부 여당이 하나로 묶이면 새정치연합의 입장에서는 청와대를 공략하는 편이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에 용이해진다.
한 새정치연합 의원은 “청와대의 입장이 강고해 야당이 여당을 상대로 싸워서는 실질적인 이익을 얻기 어렵다. 지금은 상대를 청와대로 삼는 게 맞다”며 “오히려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는 우리와 타협하고 논의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쪽은 대화상대로 열어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은 청와대의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하니 여당보단 청와대와 싸울 수밖에 없다”며 “여당의 역할에 따라 상대가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는 문 대표의 청와대 공략은 ‘서민 증세’ 논란 등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한 상황을 활용, ‘여론전’으로 새누리당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면, 새누리당이 새정치연합과 협상 과정에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문 대표가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박 대통령과 대결구도를 유도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와 함께 자리매김을 하려고 하지만, 야당 대표는 현실적으로 이를 받아들으면서도 정권교체,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화상대로 정책 총책임자인 대통령을 두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 교수는 “야당이 강할 땐 대통령 대 야당 구도로 가는 경우가 많고, 야당이 약할 땐 여당 대표와 야당 대표가 맞붙는 경우가 많다”며 “문 대표의 경우, 야당 대표로서 기존의 새정치연합 대표와 비교해 강하다, 파워풀하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에 스스로도 이를 과시하고, 알리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정부 여당과 대결구도를 유도하는 것 자체가 내부 결집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룰 변경’ 논란 등으로 당내 분열이 가시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만큼 효과적인 통합 수단은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문 대표가 막강한 대선 후보로서 2년간 조용히 있다가 이제 부상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큰 문제점들이 많이 드러났다”며 “무엇보다도 당 재정립을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박근혜정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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