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공학과 졸업 작품, 전파사 아저씨가 만들어준다고?
전파사 기사 "특별히 복잡한 작품 아닌 이상 60만~70만원대"
14일 오전, 찾아간 서울 모처의 전자상가에는 ‘학생작품제작지원’, ‘아이디어 상품 제작업무’ 등 실험실을 연상케 하는 흥미로운 입간판들이 내걸려있었다. 전파사 내부로 들어가니 손님은 없었지만 작업실 안은 분주했다. 작업실에는 흡사 '발명품'으로 보이는 작품 두세 개가 진열돼 있었다. "뭘 만드느냐"는 질문에 "oo대학교 전자과 학생이 의뢰한 졸업 작품"이라는 다소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전자공학도들의 대학 교육과정이 이 곳에서 마무리 되고 있었다.
최근 극심한 취업난과 함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자기소개서 대필이나 자격증 대여에 이어 졸업을 위해 졸업 작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풍조까지 덩달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데일리안'이 한 전자상가를 찾아가 돌아보니 상가건물에 즐비한 전파사 곳곳에 ‘학생상품제작지원’이라는 입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상가로 통하는 입구에 위치한 전파사들에 "졸업 작품을 만들어 주는 곳이 어디냐"고 묻자 “건물 위층으로 학생들이 많이 올라간다. 거기로 가면 될 것”이라는 답변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상당수의 학생들이 졸업 작품 의뢰를 위해 전자상가를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학생작품'을 취급하는 한 전파사에 들어가 "졸업 작품 되느냐"고 묻자 "어디 학교 학생이냐"라는 답변과 함께 "어떤 걸 만들려고 하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선풍기에 인체를 감지하는 센서를 달아 가까이 가면 바람의 세기가 약해지고 멀어지면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을 구상 중"이라고 요구하자, 망설임 없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전파사 기사는 “비슷한 아이디어로 oo대학 학생도 했었다”며 “선풍기에 센서를 3개 정도 달아 인체 방향에 맞춰 선풍기도 함께 돌아가는 아이디어는 어떻느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전파사 기사는 제작기간 보름과 제작비용 70만원을 요구했다.
"너무 비싸다"고 푸념을 늘어놓자, "원래 100만원 넘어갔던 건데 예전에 나왔던 작품이기도 하고 싸게 할인해 준 것"이라며 “60만원 까지 해줄 수 있다”고 응했다.
그는 “부속품이나 인건비 외에도 전문지식이나 창의력 등 여러 가지가 가미된 일이라 일반적으로 이 정도 받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파사 기사 역시 동일한 금액을 요구했다.
이 기사는 동일한 아이디어 작품을 요구하며 "가격 좀 낮춰달라"고 흥정하는 기자에게 “한 번쯤 나왔던 작품이니 40만원 까지 해줄 수 있다. 원래는 6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전파사 기사들에 따르면 졸업작품을 대신 제작해주는 가격은 △아이디어 △적용되는 프로그램 등 정교한 기술 적용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100만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한 전파가 기사는 “지금 작업 중인 다른 학생 작품으로 내·외부 이상신호(기체나 액체 등)를 감지해 자동으로 문이 닫히게 하는 것도 60만원대에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자공학도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 군(4학년)은 “전공 특성상 졸업 작품뿐만 아니라 과제를 받았을 때에도 전파상을 찾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전파상을 찾는 이유는 실습에 필요한 부품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종종 시간을 많이 뺏기는 과제나 졸업 작품이 고민될 때 전파상이 생각날 때가 있다”며 “직접 맡겨본 적은 없지만 전자공학도들 사이에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라고 고백했다.
이 군의 경우 ‘전자회로설계 및 실험’이라는 과목을 수강중인데, 해당 과목을 수강하는 일부 학생들이 회로를 짜고 납땜을 하는 등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돈을 주고 전자상에 부탁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학교에서 회로, 납땜 등을 가르쳐주긴 하지만 마치 더하기 빼기 알려주고 미적분 문제를 풀어오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며 “이 때문에 전파사를 찾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전자공학도 역시 “전부가 이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학생들 사이 과제나 졸업 작품을 위해 전파사에 의뢰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면서 “인터넷 커뮤니티만 봐도 ‘졸업 작품 맡겨야 하는데 전파사 가는 방법 아시는 분’, ‘전파사 졸업 작품 얼마’ 등 관련 질문들이 만연해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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