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후배 선수를 폭행, 중상을 입힌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 77㎏급 금메달리스트 사재혁(31)에 대해 대한역도연맹이 10년간의 자격정지의 징계를 결정, 사실상 역도계에서 퇴출시킨 충격적인 사건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
지난 12일 대한카누연맹 등에 따르면, 한국체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카누 국가대표 A는 지난해 9월 학교 기숙사에서 같은 학교 1학년 선수를 선배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2시간 넘게 방 3곳에 끌고 다니며 폭행을 가했다. 또 피해 학생의 주장에 따르면, A는 피해 학생에게 노래를 시킨 뒤 노래가 틀리면 비비탄 총을 쏘는 등 상습적 폭행을 일삼았다.
기가 막히는 일은 가해 학생의 부모나 소속 학교인 한국체대가 스스로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체대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모르지 않았으며 학교 차원에서 가해 학생에 대해 특별한 징계를 내릴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가해학생과 가족, 한국체대에 대한 비난이 폭주했고, 대한카누연맹도 그와 같은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리고 피해 학생이 국가대표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고, 때문에 올림픽 파견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카누연맹은 "해당 선수가 국가대표지만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가 아니다"라며 "사건 발생 후 보고는 받았지만 상호합의가 된 것으로 알았다"면서 뒤늦게 사태 파악에 나섰다.
한국 스포츠는 세계 엘리트 스포츠 분야에서 꾸준히 ‘톱10’을 유지하고 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국가별 종합메달 집계에서 5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한국에게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이라는 타이틀이 과연 자랑스러운 타이틀인지에 대해 회의가 드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한국이 지니고 있는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이란 타이틀이 폭력과 부조리, 도덕적 해이가 빚은 기형적 산물이라는 지적에 대해 반박할 만한 논리도 근거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비인도적 행태다. 이와 같은 비인도적 행태가 학생 선수들이 기량과 학문을 연마하는 대학교에서 선후배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데 대해 정당성을 부여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후배 학생이 선배에 대해 예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려 2시간 동안 폭행한 것은 기본적으로 비인도적 처사이며 명백한 범죄행위다. 이를 불가피한 관행으로 치부해 버리고 쉬쉬하는 학교가 다른 학교도 아니 한국 스포츠의 요람으로 불리는 한국체대라는 사실에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한국체대는 지난 2014년 소속 교수들이 연구논문 표절, 교수 임용 비리 의혹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스스로 한국 스포츠 발전의 산실이자 요람임을 자부하는 한국체대가 사실은 한국 스포츠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학원스포츠 폭력을 비롯한 이런저런 비리가 한국체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세간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다른 대학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카누 국가대표 A의 폭력 사건은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와는 별개로 처리될 전망이다. ⓒ 연합뉴스
하지만 한국체대의 위치가 체육과 관련된 학과와 스포츠 팀을 운영하는 모든 대학들에게 단연 모범이 되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학교임을 감안한다면 명백한 폭력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한국체대가 지니고 있는 본분을 망각한 태도라고 아니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폭행을 저지른 선수나 지도자에 대해 강력한 징계를 내릴 것임을 예고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폭력을 사용할 경우 자격정지 1년 이상의 중징계를 내리는 이른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다.
10년의 자격정지로 사실상 선수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치게 된 사재혁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영구제명과 같은 더욱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기존의 3심제에서 2심제로 절차를 간소화하고 국가대표 선수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실태 전수조사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카누 국가대표 A의 폭력 사건은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와는 별개로 처리될 전망이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통합 체육회가 출범하는 3월부터 도입되는 만큼 시기가 지난 사건의 소급적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A의 소속 학교인 한국체대가 후배에게 비열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A를 학교 차원에서 일벌백계에 처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국체대가 이와 같은 학교 스포츠 폭력 척결에 대한 의지를 증명할 수 있는 조치를 내린다면 정부에서 내세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사실상 실현하는 것이 된다. 한국체대의 책임 있는 조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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