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2020년 '현금 없는 사회' 공표..."관리비용 줄이겠다"
조폐공사, 지폐 발행 수익 대신 은행권 수출·보안기술 개발
지갑 대신 휴대폰을 찾는 시대가 찾아왔다. 현금 없이는 택시를 타거나 물건을 살 수도 없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대체수단을 통해 결제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 국민 6명 중 1명이 사용할 정도로 휴대폰과 신용카드가 결합된 ‘핀테크’가 사람들의 일상 속에 파고들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2020년 중장기 결제업무 추진전략 중 하나로 ‘현금 없는 사회’ 도입을 언급했다. ‘동전’이나 ‘지폐’를 현물거래가 아닌 계좌나 모바일 거래 등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스웨덴, 네덜란드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 현금 발행비용이나 관리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언젠간 동전과 지폐가 사라질지 모르는 사회, 이른바 ‘현금 없는 사회’가 현실화된다면 기존에 돈을 만들어내던 조폐공사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은행권·보안기술 개발 수출 박차...해외 홈쇼핑 방영 등 '영역 확장'에 주력
인도네시아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5만루피아(약 5000원) 지폐는 우리나라 충남 부여군에서 생산한 용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5만루피아 지폐를 살펴보면 마치 우리나라 1000원권처럼 일정 부분이 노출된 은색 선을 볼 수 있다. 조폐공사가 지난 2014년 2월 국제 입찰을 통해 1108톤 규모의 고액 은행권종을 수주하면서 이뤄진 결과다. 인도네시아 뿐 아니라 페루와 인도 등에도 국내 조폐기술이 적용된 화폐가 유통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화폐 생산이 당장 중단되더라도 조폐공사의 외국화폐 발행이나 은행권 용지 생산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위조화폐 방지기술을 접목한 보안기술 개발도 한창 진행 중이다. 복사하면 ‘COPY’ 표시가 뜨는 시험성적표나 졸업증명서 등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민원발급용 특수보안용지와 ID카드, 선거용 전자투표카드가 그 대상이다. 대표적인 ID카드인 전자여권의 경우 지난 2014년 310만 장에서 384만 장으로 1년 사이 발급량이 20% 가량 늘었다. 선거용 전자투표카드는 국내뿐만 아니라 키르기스스탄에 수출돼 실제 선거에 사용되는 등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이밖에도 국내와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한 골드바 판매와 국가적 주요 행사마다 발행되는 ‘한정판 화폐’ 상품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일반적인 유통구조를 넘어 해외 홈쇼핑까지 진출하는 등 다각도로 사업 기반을 넓히는 과정에 있다.
국내 화폐 발행 규모·비용 해마다 감소...조폐공사 "위기이자 기회...변화할 것"
국내 화폐 발행 규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현금 대신 신용·체크카드로 결제수단 중심이 옮겨진데다 스마트폰 앱을 통한 계좌이체와 앱카드만으로 생활하는 이용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지난해 국내 화폐 발행 규모는 환수율이 낮은 5만원권을 제외하고 전년도보다 모두 감소했다. 1만원권은 14조3885억원으로 12.3% 줄었고, 5000원권과 1000원권 역시 각각 5.9%, 3.7%의 감소세를 나타냈다.
화폐 발행이 줄어드는 만큼 화폐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제조비용 역시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2011년 1867억4000만원이 소요됐던 화폐 제조비용은 2012년 1368억9000만원, 2013년 1319억9000만원, 2014년 1286억6000만원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조폐공사 측은 이 같은 현금 발행 감소에 따른 수익률 저감과 급변하는 금융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사업 이외에도 새로운 사업 구상에 나서고 있다. 이를테면 ‘동전 없는 사회’가 현실화됐을 경우 적용 가능한 ‘낙전카드(잔돈카드)’나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한 ‘화폐 그레이딩’(화폐 등급 평가) 사업 등이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지금의 우리의 상황을 내부적으로는 위기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현재까지 새 사업에 대해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여러 아이디어를 토대로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곽현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000년대 카드사용이 활발해지면서 화폐는 주요결제 수단에서 비켜서게 됐다. 최근에는 모바일 결제수단까지 등장해 현금 사용은 더 줄었다”며 “'다음 세대 아이들은 돈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라는 애플 CEO 팀 쿡의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현금의 종말’을 예고한 그의 말대로라면 미래의 아이들은 ‘돈’을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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