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기량차에 주장 기성용 등 대표팀 선수들은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연합뉴스
최근 세계 축구의 트렌드는 압박과 탈압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상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압박하고, 마찬가지로 상대의 압박을 얼마나 잘 벗어나는가가 승리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스페인을 상대한 대표팀 선수들의 점수는 낙제점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1일(한국시각)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레드불아레나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1-6 대패했다.
실력 차가 확연하게 드러난 경기였다. 물론 세계적 수준의 스페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태극 전사들은 이른 바 ‘집단 멘붕’이 일어나며 너무도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치고 말았다.
경기 전 슈틸리케 감독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볼을 빼앗긴 시점부터 어떻게 압박하고 다시 볼을 소유하는지 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바로 압박과 탈압박 능력에 대해 진단을 내리겠다는 말이었다.
사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서 오랜 선수 생활을 한 영향으로 인해 독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선 굵은 축구 대신 점유율과 개인기에 치중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가 지향하는 축구의 정점이 바로 스페인 대표팀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세계 축구 트렌드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FC 바르셀로나의 점유율 축구가 세계를 지배했다. 그리고 이 능력치는 스페인 대표팀에 그대로 이식됐다. 이를 깨기 위해 여러 감독들이 머리를 싸맸고, 결국 재압박(게겐프레싱)이 하나의 해결책으로 대두됐다.
상대 숨통을 조이는 게겐프레싱의 효과는 대단했다. 게겐프레싱의 대표 주자는 역시나 위르겐 클롭 감독이다. 클롭은 게겐프레싱으로 도르트문트를 강자 반열에 올려놓았고, 리버풀로 이적한 뒤에도 크게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게겐프레싱에도 약점은 있다. 일단 엄청난 체력이 요구하고 있어 자칫 후반 이후 자멸할 수 있다는 점과 동료들 간의 호흡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상대와의 기량 차가 뚜렷하다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점 등이다.
스페인을 상대로 한 한국 대표팀은 후자에 가까웠다. 일단 전반 초반까지는 순조로웠다. 특히 최전방에서부터의 압박이 인상적이었다. 중원에서의 힘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미드필더들도 분주하게 움직였고 바짝 올라간 수비 라인도 상대 공격수 침투를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대표팀은 전반 30분 다비드 실바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환상적인 궤적으로 골문 구석을 정확히 찌른 실바의 슈팅은 김진현 골키퍼가 손 쓸 수 없는 부분이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2분 뒤였다.
대표팀은 수비 진영에서 우물쭈물했고, 어설픈 백패스를 김진현 골키퍼가 더듬는 사이 흘러나온 볼을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두 번째 골로 연결시켰다. 이때부터 태극 전사들의 멘붕이 시작됐다.
압박은 완벽히 실종됐고, 겁먹은 수비라인은 뒷걸음질 치기 바빴다. 최전방에 위치한 손흥민 등 공격수들은 경기장에서 실종됐고, 끊임없이 몰아치는 스페인의 공격과 김진현 골키퍼 외 수비수들의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만 카메라 앵글에 잡힐 뿐이었다.
바꿔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페인은 전반 초반 탐색전 위주로 한국 축구의 실력을 가늠했다. 그리고 모든 분석이 끝났다는 듯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실바의 프리킥 골이 나온 전반 30분이 기점이었다.
공격수부터 수비수까지 개인기가 모두 뛰어난 스페인 선수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무너진 한국 선수들에게 흡사 10명의 메시로 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오넬 메시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배경에는 역대급이라 평가 받는 개인기도 있지만,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춘 동료들과의 공간 지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페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수 1명마다 자유자재로 한국 수비수들을 농락했다. 좁은 공간에서도 틈을 만들어냈고, 스루패스가 향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선수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러자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상대 공격을 막아야할 한국의 포백 라인은 중구난방으로 흩어져있을 뿐이었다.
슈틸리케 감독도 이 부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전을 마친 뒤 "상대의 기술이 우위였다. 전반 초반까지는 괜찮았는데 이후부터 기술과 패스에서 차이가 났다"면서 "기술이 우수하면 다양한 전술을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많이 뛰고 희생하는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스페인을 상대로 게겐프레싱을 구사하기에는 실력 차가 분명 존재했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부분이 아쉬운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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