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협치하랬더니 3당 모두 협량의 정치만...
새누리 명분 실리 모두 놓치고 더민주 책임정당 이미지 실종 "국민만 피해"
‘그들만의 성전(聖戰)’이 7일 만에 막을 내렸다.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곡기를 끊고 국정감사를 거부하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일 단식 중단 및 국감 복귀를 선언하면서다. 갑작스런 입장 선회에 정가에선 여야 간 물밑 협상으로 어떤 명분이 오갔는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다만 일주일째 실종됐던 ‘국민의 감시권’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5시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오는 4일부터 상임위원회별 국감에 복귀하자는 데 만장일치로 뜻을 모았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의 당파적·편파적 국회운영의 횡포를 바로잡으라는 것도 국민의 뜻이고, 동시에 집권여당으로서 국감에 복귀해 국정 책임을 다하라는 것도 국민의 뜻"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의 건강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김영우 국방위원장의 국감 진행 등 비주류를 중심으로 한 국감 정상화 요구가 높아지고, 국회 파행 장기화의 명분도 마땅치 않아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자, 결국 한발 물러나 출구를 모색한 셈이다. 또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 여권 잠룡들의 국감 복귀 주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 원내대표는 다만 정 의장에 대해선 "더 이상 이 분을 상대로 수습 방안을 논의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다다른 것"이라며 “의회주의 파괴에 대한 책임을 당 차원에서 물을 것이고, 형사고발에 대해서도 취하할 뜻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감을 마냥 보이콧 할 순 없으나, 정 의장 관련 협상에 방점을 찍어 투트랙 전략을 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상황 변화는 앞서 오전 4시 40분경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국회정상화 2상’이라는 글을 SNS에 게재하면서 감지됐다. 우선 △이 대표를 병원으로 즉각 옮기고 △정 의장에 대한 비방 현수막을 제거하며 △3당 합의 하에 새누리당이 요구하는 의장의 중립성 보장 방안을 법제화하고 △정 의장이 중립적 자세를 약속하는 한편 정 원내대표가 정 의장에 대한 막말을 사과, 오는 4일부터 국감을 정상화하자는 내용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움직였다. 추 대표가 오후 1시 50분 새누리당 대표회의실에서 단식 농성 중인 이 대표를 방문해 “단식을 그만하시고 정치 지도력을 발휘해주셔야 나라가 또 굴러간다”며 “국회에서 논의 못할 일이 없고, 오히려 꽉 막히고 불가능할 때 정치력을 보여주셔야 한다”고 단식 중단을 요청한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국감 복귀로 방향을 선회, 이 대표는 오후 긴급 의총에 자신의 의견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단식이 아니라 목숨까지 바치는 게 신념이지만, 민생과 국가를 위해 무조건 단식을 중단한다”며 “4일부터 국정감사에 전원 임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특히 정 의장을 향해 “월요일 해외 출장 다녀오시라. 국가를 대표해서 가기로 약속한 회의면 다녀와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신뢰와 신용은 국격”이라고 당부했다. 정 의장은 전날 국군의날 기념식 후, 국회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오는 3일 믹타(MIKTA) 회의 참석차 호주로 출국하려던 일정까지 포기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초강수를 뒀다. 새누리당 역시 외교적 결례에 대한 부담을 일정 부분 지게 된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새누리당이 국감 복귀를 선언하자, 정 의장도 유감 표명 형식으로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정 의장은 공식 성명을 내고 “나라가 매우 어려운 시기에 국회가 걱정을 끼쳐드린 데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새누리당의 국정감사 복귀결정을 환영하며 이정현 대표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야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7일 만에 정상궤도에 올랐지만, 20대 국회 첫 국감의 4분의 1을 날려버린 책임에선 양측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여야의 진흙탕 싸움 속에 정작 국감의 주인인 국민만 권리를 박탈당한 채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물론 3당 중 어느 정당도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당장 새누리당의 경우, 헌정 사상 최초로 정부여당이 국감을 보이콧하고 여당 대표가 단식 투쟁을 감행했으나 충분한 명분조차 제시하지 못했다는 오명을 씻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 복귀를 결정한 데는 이 같은 부담이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난 4.13 총선 민의로 제1당의 지위에 오르고 국회의장까지 배출했지만, 이번 해임안 정국에선 제1당다운 책임감을 전혀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능동적인 자세로 나서기보단, 단식 중인 여당 대표를 외면하고 야당 단독으로 국감을 진행한 데 이어 여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일부 상임위원회의 ‘사회권 이양’까지 강행하며 소통 창구를 닫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새누리당의 복귀 명분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법제화하자는 새누리당의 제안에 대해 의장 측과 야당이 어떻게 나올지도 더 지켜봐야한다”며 “국민들 입장에선 여당 대표가 도대체 왜 그렇게 단식까지 하면서 국감을 거부했는지, 국회의장은 뭘 어떻게 한 것이고 이제 어떻게 한다는 건지, 새누리당이 왜 갑자기 단식을 중단하고 복귀했는지 명분조차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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