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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 와중에' 한일 군사협정 재개하는 속내는


입력 2016.10.29 06:44 수정 2016.10.29 06:44        이슬기 기자

"국면 전환과 보수층 결집을 위한 의도가 아니냐"

여당서도 "정국 혼란 틈타 졸속 추진 우려"

주한미군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대체 부지 선정 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9일 오전 국회를 방문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을 만난 뒤 새누리당 북핵·사드본부 간담회에 참석해 얼굴을 만지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부가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무산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협상을 재개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정국 혼란이 최고조에 달하고 대통령의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국면 전환과 보수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27일 “올해 북한이 4~5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등 향후 추가 도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일 간 정보공유를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양국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국가 간 군사기밀을 공유하기 위해 맺는 협정이다.

앞서 양국은 지난 2012년 6월 협정 체결 직전 단계까지 갔으나, 충분한 여론수렴이나 정치권의 협의 없이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비난에 부딪쳐 결국 백지화한 바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국민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현재 한국은 전방에서 수집한 현장정보와 탈북자 등으로부터 얻는 인적정보, 일본은 레이더와 위성 분야에서 각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될 경우, 한국은 일본의 정찰위성과 정찰기가 수집한 북한 전역의 핵·미사일 기지, 이동식발사차량(TEL)의 영상·신호정보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은 이지스함과 장거리 대공레이더를 통해 포착한 북한의 미사일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협정이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 재무장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거세다. 또한 미국과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문제 및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 등의 과제도 떠안게 된다. 만약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이번 협정이 체결될 경우, 이는 1945년 해방 이후 양국이 군사 분야에서 맺는 최초의 협정이 되는 셈이다.

“대통령 파문으로 국정 마비...왜 하필 이 시점에 군사협정?”

문제는 협정 체결의 시기와 논의 과정이다. 당장 정치권에선 대통령의 비선실세 파문으로 ‘거국중립내각 구성’ 요구까지 나오는 시점에 정부가 외교적·군사적 체결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에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양국이 4년 전 체결 직전까지 갔던 최종 문안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만큼, 혼란한 정국을 틈타 졸속으로 처리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미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에선 “박 대통령이 오는 12월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를 위해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정부가 11월 중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논의 재개를 10월 중에 발표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도 양국 정부가 연내 협정 체결을 목표로 삼고 이번 협의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이번 결정을 ‘국면전환용 꼼수’로 규정하고, 협정 체결 저지를 위해 야권 공조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돼있지 않은데, 군사적으로 일본과 손을 잡겠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이미 2012년 밀실추진으로 부결된 사안을 이 시점에 공론의 장으로 가져오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또 "야권공조를 통해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저지하겠다“고 경고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도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한일군사정보협정마저 체결되면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동북아 대결구도를 심화시키고 신냉전을 초래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화'에 우리가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25일 오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의혹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최순실씨는 제가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연설문이나 홍보물 등에서 도움을 받은적이 있다"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여권서도 “정치적 목적에 쫓겨 졸속 추진 우려...실익도 따져야”

시기 및 실익에 대한 지적은 여당에서도 나온다. 지난달 국정감사 당시만 해도 “협정을 체결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던 국방부가 갑작스레 입장을 바꾼 것은 곧 정치적 의도로 인한 졸속 추진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인적정보 부문에서 일본보다 우월한 한국이 반드시 일본과 군사기밀 관련 협정을 체결해야 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실제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을 향해 "최순실 사건이나 미국과의 안보협의회의에서 미국의 등에 떠밀린 것 아닌가. 왜 지난 25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이 내용을 보고 하지 않았느냐“고 질타했다. 같은 당 이철규 의원도 "정찰위성 등 장비는 일본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지만, 인적 정보 등은 우리가 월등하다. 미국과도 정보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한국이 굳이 일본과 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학계에선 일본 정부의 태도 자체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협정을 체결하는 상대 국가가 현재 여론 수렴은커녕 국가원수의 국정운영 자체가 마비된 상황에서, 군사 협약에 대해 ‘신속한 체결’을 추진한다는 것은 결례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북·미 간 대화가 이뤄지면 자연스레 우리가 배제될 수 있고, 국제정세도 계속 바뀌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충분한 토론은 필수 사항”이라며 “벼랑 끝에 선 정부가 지지층 강화를 위한 용도로 이 카드를 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한미일 동맹 부분에서도 우리가 충분히 시간을 벌어야하는데 내부 토론도 없이 그냥 가버린 것은 굉장히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설사 토론이 됐다고 하더라도, 이미 2012년에 근본적으로 재검토가 됐던 사안인데, 이렇게 국정이 마비된 비상시국에선 상대국을 기다려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라며 “당장 대통령 코가 석자이고 사실상 온 나라가 초상집이다. 협상 상대로서 그런 상황을 좀 기다려 주는 것이 예의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양국 간 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시기가 좋지 않다. 물론 정부도 정국이 이렇게 될지 몰랐겠지만, 시기가 문제인 것은 맞다"며 같은 목소리는 냈다.

이와는 달리 긍정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이미 체결했어야 하는데 시기가 많이 늦었다. 북핵을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당연히 일본과 협력해야한다”며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정보에 대한 양국 간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자는 취지이고, 이미 많은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체결하는 협상이다. 국민들이 반일감정, 반미감정만 갖고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국이 불안한 상황에서 졸속 협상을 체결한다는 비판에 대해선 “일부 세력들의 의견을 침소봉대 하면 안된다. 언론도 그쪽의 목소리만 실어서야 되겠느냐”면서 “일본과 대단한 조약이라도 맺는 것이라면 당연히 막아야겠지만, 비밀취급에서 신뢰를 주고받는 여건을 만들자는 협정에 시비만 거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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