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가결에도 촛불은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독해지자" "냄비 아닌 뚝배기 돼야" 불타오른 촛불
야권은 당원대회 열며 지지자 독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지만 국민들이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12월 중순으로 접어들며 찾아온 맹추위도 광화문으로 향하는 국민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국민들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외쳤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가결'이 아니라 '하야'였다.
10일 오후 4시를 기점으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국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오후 7시 기준, 주최 측 추산 60만명). 이들은 6시부터 시작된 '박근혜 즉각 퇴진 7차 범국민행동'(주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퇴진을 강하게 촉구했다. 이들의 분위기는 단호하면서도 차분했다.
이날 집회에는 고등학생을 포함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세대의 국민이 참석했고 이들 중 일부는 무대에 올라가 현 사태를 바라보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박 대통령을 과감하게 비판했다.
평택에서 왔다는 고등학생 이수진 양은 "우리들의 노력으로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이제 시작이다. 무엇보다도 박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해서 새누리당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촛불들이 필요하다"고 국민들을 독려했다.
이 양은 또 정치권을 향해 "밤 새우고 코피 흘려가며 노력해도 돈 많고 빽이 있는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다.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재벌이나 개인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갖고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믿어야할 것은 바로 우리이다.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국민들은 서로를 믿고 그 믿음으로 끝까지 가야 한다"며 "이번엔 독해지자, 독하게 끝까지 가보자,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국민의 삶을 파탄내는 자들이 제로가 될 때까지 독하게 끝까지 함께 가자"고 외쳐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재벌들을 구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셌다. 40대 김모 씨는 "삼성전자는 노동자의 목숨 값으로 500만원을 냈다. 그런데 박 대통령에게 바친 돈이 수백억원인데 (이재용 부회장이) 대가성이 아니라고 했던 게 과연 맞나"며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수백억원을 정권에 바치고 비정규직과 불법파견을 모조리 무시했다. 롯데는 골목상권을 침탈해서 수백만 자영업자를 벼랑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김 씨의 발언에 군중들은 "박근혜와 공범이다, 재벌총수 구속하라"라는 구호로 화답했다. 또한 "박근혜 정권 퇴진하라", "국민이 탄핵했다 지금 당장 내려와라", "즉각 퇴진하라", "새누리당 해체하라" 등 다양한 구호로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날 집회에는 가수 권진원 씨도 참석했다. 권 씨는 공연 전 "어제 국회에서 희망의 표결이 있었다. 우리 국민의 힘이 정말 위대하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 갈 길이 멀죠. 세월호 7시간, 세월호 아이들 어떻게 하나. 꼭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정경유착 등 해결해야 될 문제들 묻혀져 있는 진실들이 너무도 많다"고 강조했다. 유명 기타리스트 함춘호 씨도 이 자리에 참석해 권 씨와 함께 무대를 꾸몄다.
또한 가수 이은미 씨도 촛불대열에 동참했다. 이 씨는 애국가를 부르며 등장해 "어제 시민혁명의 첫 발을 내딪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낸 여러분들의 노력이다. 대한민국이여 새롭게 태어나라"고 외쳤고 박 대통령을 겨냥해 "국민의 명령이다. 지금 당장 내려와라"고 주장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상민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오늘은 쌍용 해고차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비정규직 철폐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경찰에 자진 출두한 지 딱 1년 되는 날이다. 이후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1년째 감옥에 갇혀 있다. 그 날은 경찰의 살인 물대포에 백남기 농민이 죽음 당한 날이기도 하다"며 "박 대통령의 퇴진과 구속이 코 앞인데 한 위원장은 당연히 석방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를 구속하고 한상균을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쳐 광장을 들끓게 했다.
이후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행사를 마무리했고 곧장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야권, 당원대회 열고 탄핵안 가결 자축
이날 본격적인 촛불집회가 시작되기 전 광화문 인근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정당연설회와 당원보고대회를 열고 국가 개혁을 강조했다.
특히 민주당의 연설회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시장은 이날 오후 3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행사에서 "(탄핵안 가결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위대한 국민의 시민혁명"이라며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에 이어 또다시 국민이 독재권력을 무너뜨린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시장은 이후 오후 4시 청계광장 인근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박홍근·윤후덕·홍익표 의원 등과 함께 '박원순의 국민권력시대'를 열어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과거의 낡은 경제, 낡은 정치, 낡은 사회가 아닌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야 한다"며 "그것이 우리 촛불이 이렇게 모여 함께 부르짖는 이유"라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이제 국정교과서에 대한 탄핵으로 가야 한다. 다음 촛불집회가 이뤄져야 한다면 국정교과서를 철폐하는 탄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각 청계광장 앞에서 펼쳐진 국민의당 행사에서 박지원 원내대표는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된 지 81일 만에 박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분노와 혼란 속에서 81일을 보냈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울분과 불안 속에서 지내야 한다"며 "국민들은 모두 함께 뭉쳐서 (헌재가) 올바른 판단을 해줄 것을 다 함께 함성으로 호소하자"고 주장했다.
김성식 정책위의장도 "청와대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청문회에서 동행명령장이 나왔음에도 도망 쳤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왔다. 그런 사람을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며 "헌재에도 탄핵의 길에 조속히 동참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들은 야당의 행사에 발길을 멈추고 박수를 치면서 야당에 힘을 실었다.
한편 오후 30분 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단체 소속 30여명은 탄핵안을 가결한 국회를 규탄하는 맞불 행진을 펼쳐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눈총을 샀다.
또한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윤상현·민경욱·이우현·김상훈·김종태·이장우·정갑윤 의원 등 친박계 인사들의 얼굴과 이름이 담긴 포스터가 광화문 광장 거리에 붙여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시민들은 이들을 조롱하듯 포스터를 밟고 지나갔고 일부는 친박계에 대한 분노가 담긴 듯 밟고 지나가다가 몇 차례 포스터를 발로 내려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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