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짐 벗은 '개헌론', 탄력 받을 수 있나?
국민의당-제3지대, 개헌 연대로 새판짜기 가능성
반기문 총장, 귀국 후 개헌 메시지도 중대 변수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개헌 논의가 얼마나 불붙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탄핵 국면 속에서 개헌론은 환영을 받지 못했던 터라 이제는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직전이었던 지난 10월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제는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2017년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라면서 "오늘부터 개헌을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국정 과제로 받아들이고, 개헌을 위한 실무적인 준비를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통령 단임제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국정과제의 추진과 결실이 어렵고, 대외적으로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며 중임제로의 개헌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국회도 빠른 시간 안에 헌법 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개헌의 범위와 내용을 논의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정치권은 즉각 화답했다. 특히 전부터 개헌을 주장해 온 새누리당은 친박계, 비박계 할 것 없이 대체로 환영의 뜻을 보였다. 2014년 대표 시절 상하이에서 돌연 개헌론을 꺼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놨던 김무성 전 대표는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분권형 개헌에 대해 대통령이 주도하고 나선 데 정말 크게 환영한다"며 "개헌 논의를 위한 여야와 행정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범국민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측에선 "정권비리 은폐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대통령 시정 연설이 있은 지 3일 뒤인 27일에는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함께 모여 국가운영체제와 개헌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실제로 국회 개헌특위 구성을 놓고 국회사무처와 여야 원내지도부 간 물밑 교류가 진행됐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개헌론이 불붙는 가 했다.
과도하게 1인에게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승자독식구조 등 현행 정치제도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게 개헌의 큰 명분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모든 이슈를 삼켰고 자연스레 개헌 이슈도 파묻히고 말았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 11월 16일 국회 개헌토론회를 열고 이후에는 국회 내 1인 개헌시위, 국회 본회의 5분 발언 등 '개헌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반짝' 관심에 그쳤을 뿐 불씨가 번지지 못했다. 특히 야당은 여당의 개헌론이 '탄핵 대오'를 흐뜨리려는 의도가 있던 것으로 판단하면서 개헌 움직임을 억눌렀다.
그럼에도 이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은 지속적으로 개헌을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9일 탄핵안 표결에 앞서 이 의원을 주도로 한 '국가변혁을 위한 개헌추진회의'를 출범시켰다. 이 자리에는 김무성, 심재철, 정병국, 나경원, 권성동, 강석호, 김성태 의원 등 비주류의 중량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후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여권은 외연 확장을 시도할 태세다. 야권으로서는 개헌의 걸림돌이었던 탄핵 문제가 본인들의 뜻대로 풀리면서 여권과 동조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개헌론, 정계개편 변수되나
향후 개헌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것이 대선을 앞두고 정계 개편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기존의 정치 세력을 넘어 새로운 판을 짜기 원하는 제3지대론과 개헌이 맞물려 새로운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 등 비박계는 여권의 중도 세력을 개헌 논의에 끌어들인 뒤 야당까지 포섭해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세력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개헌에 부정적인 야권 주류 대신 국민의당 등 제3지대 세력이 개헌 연대를 통한 새판짜기에 돌입할 거란 관측이 줄을 잇고 있다.
아직 출마가 확정되지 않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내년 초 귀국해서 개헌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따라서도 대선 지형은 크게 출렁일 수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개헌은 차기 권력을 염두에 둔 이들로부터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의 형태로 논의 될 수 있다"며 "여권 내 주도권 싸움과 내년으로 예정된 반 총장의 귀국 등과 맞물려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전 개헌을 반대하고 있고 극심한 계파 갈등을 겪고 있는 새누리당에서 얼마나 지속적으로 개헌 논의를 끌고 갈 수 있을지 아직은 쉽사리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단기간 내 개헌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또한 각론에 있어서도 의견이 제각각이라는 점도 실현이 쉽지 않은 요소로 꼽힌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11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개헌은 사실 여야 개별 의원들보다 대권주자들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문 전 대표의 영향권 내에 있다"며 "그런 면에서 민주당은 개헌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여당 역시 비박계에서는 움직이고 있지만 친박계에선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란 의미였다.
김 교수는 "개헌은 현재 원내 인사들보다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 등 제3지대나, 제4지대에서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의 목소리가 제도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우려스럽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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